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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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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는 게 아니다

쌓아놓고 있을 뿐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책선전위원회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지난 2016년부터 매년 국내 30대 재벌(공정거래위원회 지정 기준) 사내유보금 현황을 추산해 발표했다. 이제 사내유보금은 재벌이 얼마나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자본은 언제나 ‘경제가 어렵다’며 한편으로는 규제 완화와 기업 특혜를, 다른 한편으로는 최저임금과 쉬운 해고를 비롯해 노동개악을 요구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무려 95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적 자원과 희생을 갉아먹으면서, 재벌은 천문학적 이윤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사내유보금? 그게 뭔데?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 임금과 재료비, 이자 등 각종 비용을 지출하고 남은 이익금을 동산이나 부동산 형태로 쌓아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금융자산이나 현금성 자산이다. 특히 거대한 재벌그룹이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관계기업에 출자한 이른바 ‘투자자산’도 포함한다.


지난 수년간 사내유보금 현황 발표를 통해 재벌이 누리는 막대한 이윤의 정체가 드러나자, 재벌 단체들은 대중적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사내유보금은 이미 투자된 자산’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회계용어로 “투자자산”은 “기업이 타 기업을 지배하거나 장기 시세차익 및 배당을 위해 보유하는 자산”을 의미하며, 주로 금융상품과 투자 부동산(비업무용 부동산)으로 구성된다. 즉, “투자자산”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실물투자(기계나 설비, 업무용 토지나 건물 등)를 뜻하는 게 아니다.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매년 수십조 원씩 늘어났지만(2017년 말 → 2018년 말 66조 6천억 원 증가, 2016년 말 → 2017년 말 75조 6천억 원 증가), 오히려 실물투자 비중은 줄어들었다. 회계상 실물투자는 “유형자산”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는데, 1990년 기업 자산의 47%를 차지하던 유형자산은 2017년에는 33%로 쪼그라들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8년~2017년) 대기업 자산 중 금융자산은 3배로 증가했지만, 유형자산은 2배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사내유보금은 증가하는데 실물투자는 줄고 금융자산이 늘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태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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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체감하는 사람이 있을지


재벌의 사내유보금 축적은 이 사회의 부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가령,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게 사실이라면, 3인 가구를 기준으로 해도 월 소득이 1억 원에 달해야 한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자. 억대 월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우리가 체감하기 힘든 것은 이 소득 추계가 ‘기업 몫’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소득에서 기업 몫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1998년 총국민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73%에 달했지만, 20년이 지난 2017년에는 61.3%로 줄어들었다. 반면 기업소득 비중은 같은 기간 14%에서 24.5%로 늘었다. 경제발전의 과실을 누가 가져가고 있는지는 명확하다.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2017년 말에는 9.3%, 2018년 말 기준으로는 7.5%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각각 3.1%와 2.7%였다. 재벌이 축적하는 이윤은 한국경제 성장률보다 3배 정도씩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다. 재벌의 이윤축적 이면에는 대중의 빈곤이 자리하고 있다. 가령 재벌이 만들었다는 일자리의 4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이 가운데서도 간접고용 비중이 2/3를 차지한다. 재벌 대기업이 고용 책임은 회피하면서도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고 쉽게 해고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쌓는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늘어나는 사내유보금, 그들의 배당잔치


사회의 자원을 빨아먹으면서 재벌이 축적한 이윤은 총수 일가와 대주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근래 총수 일가 경영 세습과 맞물려 재벌 경영진은 다른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주주 친화’ 혹은 ‘주주 환원’이라는 명목으로 배당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 사내유보금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배당을 늘리면 총수 일가 역시 막대한 이득을 얻는다. 총수 일가 자신들도 지분을 보유한 주주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의 배당 규모는 사내유보금이 늘어나는 만큼이나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2014년 연간 배당금은 16.5조 원이었지만, 2018년에는 31.8조 원에 달해 2배로 불어났다. 그만큼 총수 일가도 배를 불린다. 지난해 가장 많은 배당금을 지급한 곳은 삼성전자로, 1년 전보다 무려 4조 원 가까이 늘어난 9조 6천억 원을 뿌렸다. 최대 수혜자는 현재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건희 회장으로, 2017년 3천억 원에 이어 2018년 한 해에만 4천 7백억 원이 넘는 금액을 수령했다. 이재용 역시 1천 4백억 원의 배당을 챙기며 배당 순위 2위에 올랐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928억 원), 구조조정을 한창 밀어붙인 현대중공업 정몽준-정기선 부자(836억 원)도 고액배당을 누렸다.


노동자의 피 땀 눈물이 스며든 재벌의 이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저 금액들은 실감조차 나지 않는다. 최저임금이 1만 원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최저임금 노동자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적게는 4천 년(!)에서 길게는 2만 년(!!)가량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이들 총수들은 단 1년 만에 쓸어 담는다.



노동자의 피 땀 눈물, 총수 일가 경영권 확보에 사용


재벌 총수 일가는 배당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내유보금이라는 ‘공금’을 활용해 자신들의 경영권을 방어하고 확대한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총수 일가가 거대한 대기업집단을 거느릴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자신들의 지분이 아니라 바로 계열사들이 보유한 ‘관계기업 지분’ 덕분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앞서 거론했던 “투자자산”이라는 명목으로 사내유보금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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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제시한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서 드러나듯, 재벌 총수와 그 일가 지분은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다. 상위 4대 재벌의 총수 평균 지분은 0.8%에 불과하고, 일가 친족 지분도 1.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48.7%로 절반에 달하는 지분을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다. 총수 일가 지배권의 기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범위를 10대 재벌, 30대 재벌로 확대하더라도 약간의 편차가 있을 뿐 절대다수 지분을 계열사가 쥐고 있는 점은 변함이 없다.


계열사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지분을 보유하는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달라질까? 일찌감치 지주회사체제로 개편한 SK 그룹을 보자.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 그룹 총수인 최태원이 보유한 지분은 겨우 0.03%에 불과하다. 친족 지분을 다 합해도 0.32% 수준이다. SK는 자산 기준 국내 3위 재벌 그룹인데, 공정위가 내놓은 위의 표를 보면 상위 4대 재벌의 평균 총수 보유 지분율에도 한참 못 미친다. 반면 SK 그룹 내 계열사들이 보유한 지분은 59%에 달한다. 즉, 지주회사로 전환하더라도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은 똑같다. 오히려 지주사만 장악하면 거대 기업집단을 통째로 거느릴 수 있기 때문에, 손쉽게 경영권 확보가 가능하다.


사내유보금은 다른 방식으로도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위해 낭비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주식 소각’이다. 회사가 자신의 주식을 사들여 소각하면,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은 지분율이 올라간다. 이렇게 되면 지분이 적은 총수 일가는 자신의 돈 한 푼 안 쓰고도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않지만, 여기에 막대한 사내유보금이 투입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재작년 12조 원, 작년 7조 원 등 지난 2년간 무려 20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주식 소각에 썼다.



사내유보금을 축적하고 총수 일가를 위해 전용하는 현실은, 국가의 자원을 동원해 총수 일가의 배를 불리는 재벌체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치권력과 한 몸이 되어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체제를 강요하면서, 그 이익은 고스란히 자신들의 곳간에 쌓아둔 재벌. 이 사회에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단지 소수의 특정한 집단이 독점적으로 그 이득을 누리고 있을 따름이다. 사내유보금 950조 원 시대, 이 거대한 사회적 부를 언제까지 총수 일가 몇 명을 위해 낭비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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