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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은 재벌 특혜가 아니라 

재벌 사회화!


장혜경┃정책선전위원장



재벌 문제가 또다시 화두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를 맞이한 지금, 재벌이 ‘국정을 농단한 적폐세력’에서 ‘한국경제의 성장을 책임질 세력’으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양면적이다. 황제경영, 탈법과 편법을 통한 천문학적 부의 증식, 정경유착 등을 보며 대중은 공분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 친화적(용인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재벌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산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데, 재벌이 한국경제의 핵심 산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 노동자나 미취업 노동자에게 재벌 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2년은 이런 양면적 태도 사이의 동요를 보여준다. 정부는 출범 초 재벌개혁을 말했지만, 한국경제가 침체하자 집권 2년 차부터 노골적인 친재벌 정책으로 돌아섰다. 재벌을 인정해야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재벌 타협론으로 급속히 기운 것이다.



재벌이 살아야 우리 삶이 나아진다?


‘재벌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살고 우리 삶도 나아진다’는 생각은 신화다. ‘낙수효과’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 일반적인 상태가 되었고, 새롭게 창출된 고용도 비정규직이 대다수다. 즉 (재벌)기업이 성장해도 가계소득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재벌의 부는 날로 늘어나지만, 이 부가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구성원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다. 가계 부채는 1,500조 원을 돌파했지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30대 재벌 사내유보금 규모가 단적인 예다.*


재벌총수가 없거나 구속되면 당장 기업위기가 발생할 것처럼 아우성치는 재벌과 보수언론의 거짓말도 대중의 눈을 가린다. 그러나 촛불항쟁 이후 삼성 이재용이 구속되어 있던 기간에 삼성의 기업 경영엔 별 문제가 없었다. 기업은 재벌총수(경영자)의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 경영자가 없으면 기업은 망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뿌리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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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타파]



재벌적폐 청산의 두 가지 길


재벌친화적 입장과 다른 입장이 있다. 바로 재벌체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중 한 갈래가 시민운동진영에서 제기하는 ‘재벌개혁론’이다. 이 입장은 재벌의 핵심적 문제를 총수 일족의 기업지배(황제경영)와 경제력 집중으로 본다. 따라서 재벌총수의 탈·편법을 막고 불공정거래를 개선해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재벌은 총수 일족이 지배하는 기업집단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재벌이 갖는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으로 인해 역대 정부의 산업․노동정책은 재벌의 이익에 봉사해왔다. 저임금-장시간 과로노동-비정규노동-노조파괴를 낳는 현재의 반노동체제는 재벌체제의 결과물이다. 국민수탈(국가의 각종 지원과 특혜)과 노동자 착취로 만든 초과이윤 축적체제 역시 재벌체제의 핵심 요소다. 한국의 재벌은 반노동체제이자 초과이윤 축적체제라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독점자본의 특성을 공유한다. 여기에 총수 일족의 지배라는 한국적 특성이 결합한 것뿐이다. 즉, 재벌은 한국판 독점자본이다. 재벌총수가 없는 포스코나 KT가 재벌기업 못지않은 노조탄압을 자행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독점적 초과이윤**을 얻고 있는 점에서 드러나듯이 말이다.


따라서 재벌 적폐 청산은 재벌총수 일족의 기업지배 해소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반노동체제를 해소하는 것이자 초과이윤 축적체제를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 즉 재벌개혁이 아닌 재벌체제 청산이 대안이다.



국가의 귀환


재벌체제 청산은 재벌 ‘사회화’를 통해 가능하다. 재벌 사회화란 무엇인가? 사회적 생산력을 활용하여 만든 막대한 이윤을 기업과 주주만이 사적으로 독식하는 현재의 재벌을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기업집단’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재벌기업을 국유기업(공기업)으로 바꾸고, 기업에 대한 노동자․사회적 통제를 결합해, 기업경영의 성과를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사회구성원이 골고루 누리는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재벌 용인론이라는 프레임을 재벌 사회화론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재벌 사회화가 필요한 이유는 특히 한국을 포함해 세계자본주의가 2008년 말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구조적 침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국면에 있다면 기업의 생산적 투자 확대가 고용 창출과 가계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의 구조적 침체기에는 이 구조가 무너진다. 고용 없는 성장과 심화하는 빈부격차가 그 결과다. 재벌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놓은 것도 세계 경제의 장기적·구조적 침체에 대한 대응책이다. 경기침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신규투자를 하기보다는 현금성 자산을 쌓아놓고 위기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신규투자를 해도 비정규·저임금 일자리를 확대하고 규제 완화를 요구하면서, 의료산업 규제 완화와 같은 반생명적·반사회적 시도에 나선다.


세계경제의 구조적 침체로 말미암아 실제 2008년 말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국가의 적극적인 경제개입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에서 겉으로 문제 삼았던 국가가 귀환해 경제의 최종 구원자로 나섰다. 부도기업에 대한 공적자금 투하를 통한 기업 살리기, 양적완화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 자본을 위한 규제 완화 등이 그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역대 한국 정부는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해 기업을 살린 후 이를 다시 재벌이나 초국적 자본에게 매각해왔다. 이른바 ‘손실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다. 또 기업 살리기를 위한 정부의 지원은 기업에 엄청난 이윤만을 쌓게 했을 뿐, 사회의 이익으로 환원되지 않았다. 재벌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대안은 재벌 사회화


사적 자본이 생산적인 신규투자를 회피하고, 고용 창출을 회피하고, 이윤을 독식한다면, 경제를 사적 자본에 맡겨둘 순 없다. 국가의 역할을 대전환해야 한다. 국가가 사적 자본의 이윤축적을 위한 구원자가 아니라, 재벌 사회화를 토대로 사회구성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반노동 체제를 없애고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며, 노동자의 고용을 책임져야 한다. 필요한 산업이 무엇이고, 어떤 산업을 육성할 것인가 판단하고 사회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이를 집행해야 한다. 기업을 위해 노동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기업이 존재하는 경제체제로 바꿔야 한다.


재벌 사회화는 국가 책임 아래 전면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거대한 기업집단을 사기업 상태로 두면 기업 이윤을 주주가 사적으로 독점하는 구조를 깨뜨릴 수 없다. 전문경영인이 경영한다는 미국의 경우, 주주행동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고 구조조정을 하면서 높은 배당금 잔치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인 것처럼 말이다. 재벌 사회화는 기업 경영의 성과로 국가가 적극적 복지정책을 펼침으로써, 기업의 이익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즉 재벌 사회화를 통해 친노동적·친사회적 산업-노동-복지정책을 효과적으로 펼칠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사회화의 전망 아래


재벌 사회화에 대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낙하산 인사나 부정부패처럼 기존 공기업에서 나타난 문제점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업의 부패가 사기업보다 더하다는 근거는 없다. 편법과 탈법을 일삼는 재벌, 가습기 살균제나 코오롱 인보사 사태에서 드러난 반인간적 이윤축적 행태를 볼 때, 사기업이 공기업보다 투명하고 윤리적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더욱이 사회화는 단순히 소유구조를 공기업(국유기업) 형태로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운영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통제를 결합했을 때 사회화는 완성된다.


재벌을 국유화하고 노동자민중이 기업을 통제할 힘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광범한 대중투쟁과 정치적 힘관계의 변화가 있을 때 가능하다. 국유화의 방식과 통제의 경로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화라는 방향을 회피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은 임금인상투쟁과 같은 경제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당장은 노동조합의 힘을 키우고, 노동현장에서부터 사측의 반노동적․반사회적 경영에 맞선 투쟁을 조직해 나가면서, 통제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사내유보금 환수 투쟁을 통해 독점이윤의 문제와 이윤의 사회적 공유를 제기해야 한다. 재벌의 범죄수익 환수와 범죄 총수의 경영권 박탈을 외쳐야 한다. 전형적인 재벌 특혜인 대우조선의 현대중공업 매각에 맞서 대우조선을 비롯한 공적자금 투입 조선소의 공기업화 투쟁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이런 투쟁이 축적되고 이 투쟁에서 노동자가 주체로 설 때, 재벌 사회화의 전망을 열어갈 수 있다.



*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2017년 45조 8천억 원 증가 → 2018년 76조 6천억 원 증가 → 2019년 66조 5천억 원 증가’라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결과 2019년 사내유보금 규모는 950조 원이 되었다.

** 2018년 기준, 총수가 없는 포스코는 대기업집단 서열 6위이고, 사내유보금은 53조 5천억 원이다. KT는 서열 11위로 사내유보금은 16조 3천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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