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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과 65년 체제의 균열, 

그 향방은?


장혜경┃정책선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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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 국방부.]



9월 들어서도 한일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8월 들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했고, 한국 정부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선언과 독도수호 훈련으로 맞대응에 나섰다. 한일 갈등의 직접적 계기는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이하 ‘대법원 판결’)이다. 따라서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왜 양국 간 갈등의 불씨가 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문제의 뿌리, 샌프란시스코 조약


대법원 판결은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이에 직결된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피해자의 청구권 문제는 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한일청구권협정이 어떻게 탄생했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한일청구권협정의 뿌리는 “샌프란시소코 조약”에 있다. 1951년 체결된 이 조약은 미국 등 2차 세계대전 연합국과 일본 간에 체결한 조약으로, 일본에 태평양 전쟁의 책임만 묻고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준 조약이다. "일본은 전쟁 중 일본에 의해 발생한 피해와 고통에 대해 연합국에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국가의 범위를 ‘2차 대전 중’ 일본이 침략한 나라로 제한하면서, 한국을 배상 대상국에서 제외했다. 또한, 한국 정부를 강화회담 조인국에 참여시키지 않음으로써(대일전의 전승국 지위 갖지 못함으로써), 한국은 일본에 ‘합법적으로 병합됐다가 다시 분리해 독립한’ 꼴이 됐다. 그 결과 한국은 일본 식민지배 책임과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결과, 식민지배 배상 문제는 청구권 문제(두 나라가 분리됨으로써 생긴 ‘재정적, 민사적 채무-채권 관계’)로 전환됐다.



식민지배를 인정받지 못한 1965년 한일협정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분명히 규정하지 않았다. 한일협정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의 무효냐’를 둘러싼 한일 간 입장 차이(한국은 1910년 한일병합 때부터 무효라고 주장하고,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를 무효 시점이라고 주장)는 봉합됐다. 그 결과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인정을 받아내지 못했다. 부속조약인 청구권협정(한일재산 및 청구권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역시, 샌프란시스코 조약대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의 성격을 갖지 못하고, 두 나라가 분리되면서 생긴 ‘재정적, 민사적 채무-채권 관계 정리’라는 성격을 띠게 됐다.


따라서 한일 갈등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문제점에 근거한 1965년 한일협정 체제(이하 ‘65체제’)의 모순이 폭발한 것이다. 65체제의 전제(일본 식민지배 불인정)가 대법원 판결의 전제(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이에 직결된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와 정면충돌한 것이다.



65체제의 다른 이름, 한미일 동맹


이는 우리에게 한일 갈등을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넘어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라는 더 큰 시야에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하고 한일협정 체결을 적극 종용함으로써, 동북아에서 소련 봉쇄를 위한 한미일 동맹을 구축했다. 한미일 동맹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그 목표를 달리해 유지되고 있다. 21세기 미국 세계전략의 초점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북핵 위기를 빌미로 한 ‘중국 봉쇄’의 성격을 지닌 한미일 동맹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주한미군을 동북아 분쟁 곳곳에 참여하는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 사드 배치 추진 등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점은 미국의 중국 봉쇄를 위한 한미일 동맹 유지․강화 전략이 일본 우익의 ‘전쟁 가능한 국가화’와 함께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은 해외미군 주둔비용 절감을 위해 일본의 전쟁 가능한 국가화를 추인하면서 한·미·일의 위계화된 동맹질서를 강화하고자 한다. 한미일 동맹의 한 축인 한일동맹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사 문제 해결이 중요했고, 결국 미국의 종용 하에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된 바 있다. 아베 정부 역시 전쟁 가능한 국가화를 지향하면서, 65체제로 형성된 한미일의 위계화된 질서를 재확인하고 강제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나서고 있다.



한미일 동맹, 한반도 긴장 고조시켜


최근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과 일본의 ‘전쟁 가능한 국가화’ 용인 전략은 유엔군사령부의 역할 강화 시도로도 나타나고 있다. 2019년 1월, 유엔군사령부는 ‘전력 제공국’의 법적 자격에 관해 “유엔 회원국이라면 전력 제공국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하면서, 일본을 유엔사에 정식으로 포괄하려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군사비용 절감을 위한 것이자, 유엔사라는 다자 체제를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동아시아판 나토NATO로 성장시키는 포석이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유엔군 깃발을 들고 한반도에 진출하는 것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지난 8월 미국 정부가 이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한·일에 요청한 것 역시, 한·일을 자신의 패권전략에 동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은 올 8월 중거리핵전력조약INF 공식 탈퇴 하루 만에 미 국방장관이 ‘아시아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겠다’는 발언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배치 때보다 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할 경우 중거리라는 성격상 이는 대북용이 아니라 대중국용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강화, 한·일과 중·러 간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강화의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다. 실제로 올 들어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는 한미일동맹을 주축으로 한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에 대한 중·러의 맞대응이다.


동북아에서 신냉전질서의 형성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동북아 각국의 군비경쟁을 가속할 것이며, 미·중 패권경쟁 구도에서 한반도가 희생양이 될 것임을 말해준다. 즉, 65체제=한미일동맹체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 격화를 막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 65체제를 끝낼 의지가 있는가?


최근 한일 갈등은 일본의 식민지배 불인정이라는 65체제의 전제에 균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이제 이 균열을 완전한 해체로까지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문재인 정부에게 기대하기는 힘들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일 동맹 자체의 폐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선언까지 했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을 철회시키는 카드로 사용하고 있는 정도다. 대법원 판결 이행에 대해서도,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전에 이미 ‘1+1’이라는 타협안을 제출한 바 있다. ‘1+1’안이란 한일 양국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확정판결 피해자에게 위자료 해당금을 지급하자는 안이다. 이는 ‘가해 일본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대법원 판결 내용에서 후퇴한 것이자, 일본의 식민지배 인정과 사과를 전제하지 않고, 대법원 판결의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즉 전임 정부가 그러했듯이, 문재인 정부도 65체제의 근본적 모순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


이뿐인가.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을 빌미로 ‘극일’과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시간 연장과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 친자본·반노동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적폐세력인 재벌총수는 ‘슈퍼 애국자’로 화려하게 귀환하고 있다. “일본수출규제대책 민··정 협의체”를 구성해 노동운동을 압박하고, 애국주의 프레임으로 정권의 지지율 상승을 꾀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65체제를 청산할 의지도 없고, 한일 갈등을 계기로 반노동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



65체제를 끝낼 이는 바로 우리!


따라서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친자본·반노동정책에 맞서 싸우는 한편, 65체제=한미일동맹체제의 청산을 위해 싸워야 한다. 노동자민중이 나서야 한다는 것은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은 1990년대 이후 ‘위안부’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등 피해당사자들의 지난한 투쟁이 이끌어 낸 결과다. 일본 법정 패소, 미국 법정 패소를 거쳐 결국 한국 대법원에 와서 이들은 승리를 쟁취했다. 즉 65체제에 균열을 낸 것은 투쟁하는 당사자들과 이에 연대한 사람들이었다.


65체제는 식민지배 불인정이라는 부정의를 지속시키는 체제다. 한미일 동맹은 한반도·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키는 반평화적·반민중적 동맹이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이 직접 나서야 한다. ‘일본 경제보복 철회, 식민지배 인정과 사과, 대법원 판결 이행, 지소미아 완전 폐기, 한미일 동맹 폐기’를 내걸고, 동시에 정부의 친자본·반노동정책에 맞서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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