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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이제 대중적 선택지가 돼야 한다


이**┃정치캠프 참가자



저는 비당원입니다. 변혁당 부산시당의 맑스주의 철학 공부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사회주의를 알아가고 있고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정치캠프도 사회주의에 대한 궁금증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캠프 후기 작성 요청을 받고 ‘비당원으로 할 말이 있을까’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비당원이기에’ 할 수 있는 말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정치캠프의 주제가 “내 삶을 바꾸는 사회주의”였던 만큼, 내 삶에서 사회주의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사회주의 대중화에 대한 의견을 내보고자 합니다.


저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사회주의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당위적으로만 사회주의를 접하다 보니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동지”라는 말이 어색해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집회와 투쟁 현장, 지역의 여러 현안에 연대하는 주변의 투사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 사람처럼 활동해야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투사들처럼 되지 못해 지쳐가기도 했습니다. 이전의 저에게는 ‘사회주의’나 ‘사민주의’라는 개념보다는, ‘진보’와 ‘보수’라는 양극화된 개념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삶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보수’가 아니면 무조건 ‘진보’였고 찬성이었습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말하는 책의 첫 소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9년 전에는 나의 인생에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개인의 인생이고, 개인의 행운과 불행으로만 치부했습니다. 지금 저는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외부도 야만의 시대이지만, 제 내부에서도 야만의 시대와 타협하지 않으려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야만의 시대에 사는 것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야만의 시대에 편승하는 것이 괴로움을 덜어내는 손쉬운 방법이기에 숨고,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야속해서 숨고, 겁이 나서 숨고, 비겁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자꾸 야만의 시대 속으로 들어가 숨으려 합니다. 이 모순된 행동에 반기를 드는 것은 제 몫이기에 계속 싸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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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당신을 ‘사회주의자’로 만드는가


이번 정치캠프에서는 사회주의 정당등록과 대선후보 전술에 대한 변혁당 당원들의 우려와 기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려는 우려대로, 기대는 기대대로 정말 진지한 고민인 것 같아서 보기 좋았습니다. 강령의 후퇴와 우경화에 대한 우려, 대선 출마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거론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다가 변혁당이 변질될까 고민하는 지점에 공감이 됩니다.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문제이기에, 강령과 원칙에 대한 부분을 조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자유주의자, 사민주의자,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중 나는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은 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회주의자와 사민주의자, 자유주의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사회주의에 관심이 있고 그 가치에 동의하지만, 사회주의자의 삶은 살지 못한다면 사회주의자일까요, 자유주의자일까요? 자유주의의 가치에 반대하면서도 자유주의자의 삶을 산다면, 그건 자유주의자일까요, 사회주의자일까요? 자유주의의 환경 속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또는 고민이 되더라도 너무 고통스러워 두 눈과 귀를 닫고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산다면, 자유주의자라고 비판받아야 할까요? 자유주의의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삶을 고민하며 투쟁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투쟁하는 현안에만 집중하고 자본이 만들어 내는 다른 문제들은 등한시한다면, 그 사람은 우선 현안에 대해 투쟁하고 있으니 사회주의자의 영웅이 되어야 할까요? 집회에서 열심히 투쟁을 외치고 돌아와 일상의 삶에서 생태위기를 가속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자유주의자일까요, 사회주의자일까요. 진보에 대해 논하는 것에 관심도 없지만, 동물권에 관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그럼 사회주의자일까요, 자유주의자일까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환경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매달 당비를 내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 당원은 사회주의자인가요, 자유주의자인가요.


이런 딜레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고민 끝에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내용, 즉 사회주의가 정확히 무엇이며 그것이 내 삶과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내 삶과 연결되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면 ‘수정주의자’나 ‘개량주의자’라고 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투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는 서로 연대하며 손을 잡아야 합니다. 강령과 그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것에만 몰입하다 그 안의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결과가 생기면 안 될 것입니다. 해방되고 사람을 끌어안자고 만든 강령이 사람을 구속하고 밀어내는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하고 깨어있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거 전술: 사회주의를 더 분명히 제시하는 길


사회주의 대선후보 전술을 제기한 분들은 ‘제도정치를 활용해 조직력을 높이고 선전선동을 펼칠 효과적인 계기’라고 하셨습니다. 정당등록과 대선 후보를 내놓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선 후보를 내기도 전에, 정당등록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싸우느라 제대로 된 사회주의는 이야기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론화하는 데 선거만 한 전술은 없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최근 조국 논란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조국 대전’이라고 부를 만큼 큰 이슈 중 하나입니다. 제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주당과 현 정부, 그리고 조국을 ‘사회주의’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우파가 아닌’ 다른 쪽은 그저 좌파로 불릴 뿐입니다. 민주당, 정의당, 녹색당, 민중당, 변혁당을 모두 뭉뚱그려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자유주의적인 정책과 조국의 이중적인 태도를 합리화하려는 모습이 또다시 사회주의를 곡해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서 분명히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재정립하고, 진정한 사회주의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대중적 선택지가 돼야 한다


사회주의 대중화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고, 성공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주의를 대중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공공연하게, 거침없이 사회주의를 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다고 사회주의가 실현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구체적 상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그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구체적 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거부감부터 없애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 정치캠프에서는 사회주의 대중화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한국의 노동자 민중은 사회주의적 대안의 선택지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 정치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삶의 차별과 배제의 극단에 다다른 시점에서 대안적 선택지를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차별과 배제의 끝까지 가지 않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에 공감하고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에게도 사회주의적 대안이 공공연하게 제시되었으면 합니다. 사회주의적 대안은 해고되고, 차별받고, 고통받는 사람들만을 위한 선택지가 아니라, 불행에서 조금은 비켜 갔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이 체제에서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선택지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드러내놓고 투쟁 현장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선거라는 권리를 행사할 때만이라도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대안적 선택지가 필요합니다.


물론 사회주의라는 대안적 선택지를 제시한다고 해도, 2022년 대선이나 그다음 선거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승리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속에 ‘이제 공공연하게 사회주의를 논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만 퍼뜨려도 우리는 진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진보는 천천히 이루어졌습니다. 내 시대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하면서도,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과정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 시대는 야만의 시대겠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가는 그 과정만큼은 야만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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