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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21.01.18 15:08

민주노총 직선 3기 선거가

노동운동에 남긴 숙제

 

 

이승철┃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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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세계(송승현)]

 

 

막상 치르고 나면 당락에 상관없이 후회가 남는 것이 선거다. 선거운동 기간이 일주일만 더 있었다면, 바빠서 놓쳤던 걸 좀 더 신경 썼다면, 좀 무리해서라도 일정을 하나 더 잡았다면 …. 매번 그렇다. 민주노총 직선 3기 임원선거가 끝난 지도 한 달 가까이 지나가지만, 여전히 그렇다. 그러나 개표 종료와 함께 탁탁 손 털고 뒤돌아설 수 없는 것이 또 선거다. 찾아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세력별 현황

 

살펴볼 여러 지점이 있지만 결과만 두고 보자면, 이번 선거의 특징은 △민주노동자 전국회의(노동운동 내에서 자주‧민주‧통일을 강조하는 한편 과거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기치로 온건한 노선을 형성한 세력의 일부. 이하 ‘전국회의’)의 약진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의 세력화 △변혁적 민주노조운동 현장기반의 위기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전국회의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 도입(2015년) 이후 타 세력과의 연합 없이 독자적으로 치른 첫 번째 선거이며, 간선제 시절까지 더하더라도 두 번째다. 첫 도전이었던 2013년 채규정-김용욱 후보가 3개 후보조 중 3위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이번 선거에서 전국회의는 괄목할만한 득표력 상승을 보였다(1차 투표에서 31.26%로 1위, 결선투표에서 55.68%로 당선). 전국회의는 민주노총 16개 지역본부 선거에서도 독자 혹은 연합을 통해 11개 지역에서 출마, 7개 지역에서 당선됐다. 전국회의가 출마하지 않은 울산-경남의 경우 세력의 축소라기보다는 조직 내부의 사정에 따른 것이었고, 최근 몇 년간 대응하지 못했던 충북-인천-전북지역본부 선거에서도 후보를 출마시키는 등, 그야말로 선전했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전면에 내건 세력이 유의미한 득표진영으로 등장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물론 사회적 합의주의는 민주노총 내에 오랜 기간 존재해온 세력이지만, 정파 구성의 차원에서 보면 부차적인 고리였다. 즉 ‘국민파-중앙파-현장파’라는 고전적 구도 속에 교집합으로 존재하던 경향이었지만, 이번에는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노골적인 지향-노선이 오히려 고전적 정파 구도를 압도하며 독립적인 하나의 정파로 등장한 셈이다. 실제로 (표면적으로는) 전국회의가 사회적 합의주의를 전면 비판하는 선거 기조를 채택했으며, 중앙파는 지역-사업장 별로 지지 후보가 갈렸다. 과거 ‘좌파’로 분류됐던 사회진보연대 등 일부 단체도 실용적 노선으로 경도되며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변혁적 노동운동 진영의 현장기반이 약화하고 있는 점은 크게 경각심을 가져야 할 현상이다. 기호 2번 좌파 선본(이영주-박상욱-이태의 후보조)의 결선 진출 실패는 경기-전북-제주지역 등의 득표에서 크게 뒤진 결과다. 지역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으나, 공통적으로 좌파의 현장기반이 무너지거나 약화한 지역들이며, 좌파 내부의 이견과 반목도 깊다. 정국을 주도하는 투쟁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선본을 꾸리고 움직일 활동가 군을 확보하는 것조차 버거워지고 있다. 현장파가 현장을 잃고 있으니, 이보다 큰 위기가 있겠는가.

 

 

 

무거운 과제

 

그렇기에 이번 선거가 변혁적 노동운동 진영에 남긴 과제는 예년에 비해 더 무겁다.

 

먼저 현장기반을 확대-강화하는 것은 몇 번을 반복해 강조해도 부족한 지점이다. 현장 없이 투쟁 없으며, 현장 없이 혁신도 없다. 선거를 거치며 의미 있는 활동가 규합이 이뤄진 지역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 단지 득표력뿐만이 아니다. 현장기반의 유실은 지역연대의 유실로 이어지며, 이 후과는 선거운동 준비 과정에서부터 나타났다. 선거의 기초가 되는 후보조 조차 등록 기간이 시작된 뒤에야 최종 확정됐다. 아울러 선거운동 돌입 이전에 후보조-중앙선본-지역선본이 함께 워크숍 등을 통해 기조와 슬로건, 공약 등을 공유하고 이해를 통일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으나, 이것이 지연되거나 생략된 점도 문제였다. 반면 전국회의의 경우 오랜 기간 펼쳐온 ‘현장 활동’이 빛을 발했다.

 

둘째로, ‘변혁적 노동조합운동’ 혹은 ‘좌파의 노동조합운동’의 실체와 내용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민주노총 직선 3기 선거를 전후해 기존 전통적 정파 구도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주-민주-통일’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진영의 독자 세력화와 함께, 사회적 합의주의를 전면적 기치로 내건 세력이 출마했다. 하지만 좌파 선본은 여전히 ‘경향성’과 ‘투쟁 역사의 공유’ 수준의 정체성으로 선거에 임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단지 노동의 문제를 넘어 한국사회 구조변혁과 연동된 노동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투쟁의제와 사회적 쟁점을 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는 ‘3년에 걸친 준비’다. 선거 준비를 3년 동안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투쟁과 저항 속에 구축되고 인정받는 리더십의 정립이 필요하다. ‘투쟁’은 좌파진영의 강점이자 상징이었으나, (이번 선거에서 드러나듯) 모두가 ‘투쟁’을 강조하고 앞세우는 구도 속에서는 ‘대중적 각인’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더구나 투쟁은 지도력을 수립하고 형성하는 가장 올바르고 대중적인 방식이다. 늘 그렇듯, 답은 현장과 투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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