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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전태일의 다른 이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입만 열면 청년> 기획팀

 

 

 

지난해는 청년노동자 전태일 산화 50주년이었다. 하지만 신년에 들어서도 국회 앞에서는 일하다 죽은 노동자 유가족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여야 했다. 일하다 죽거나 일이 없어 죽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 <변혁정치>는 청년들을 만나 2021년의 청년노동을 이야기해봤다.

 

 

 

형우 :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병열 : 노무사 공부하면서 편의점 알바를 병행 중인 서울시당 당원 김병열입니다.

 

소연 : 서강대 대학원 여성학협동과정 석사과정생이자 변혁당 후원당원인 이소연입니다.

 

동민 :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부산시당 당원 정동민입니다.

 

 

 

형우 : ‘세대론’이 대세입니다. 특히 청년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는데요. ‘청년노동자’라고 하면 드는 인상, 특징, 성격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소연 : 저는 ‘청년노동자’라고 하면 알바하면서 취업 준비하는 모습이 떠올라요. 지원은 많이 하지만 막상 뽑아주는 곳이 없으니까, 불러주면 무조건 가겠다는 청년이 많아요. 저도 구직활동하다가, 전혀 관심 없는 분야의 인턴으로 가게 됐어요. 최저시급만 주고 이것저것 다 떼면 150만 원 정도 받았는데, 다닐수록 직원 대우가 안 좋은 걸 느끼겠더라고요. 코로나 시국인데도 워크숍이나 회식이 강요되고, 노동자 건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직장이었어요. 그럼에도 ‘나를 뽑아줬으니까’ 하고 무작정 들어간 거죠. 절박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게 지금의 청년 아닌가 싶어요.

 

동민 : 제 주변 청년들은 열악한 대기업 하청업체 들어가서 ‘언젠가 직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티고 있어요. 최저시급이라서 사람처럼 살려면 무조건 연장근무를 해야만 하는 구조예요. 계약직이다 보니 쉬는 시간에도 회사에서 눈치를 많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노동자’라고 하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 많이 떠오릅니다.

 

병열 : 질문지 받고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봤어요. 여러 얘기를 듣고 나서 든 생각은, 결국 ‘청년 노동자’라는 건 ‘노동자’ 앞에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노동자일 뿐이잖아요. 근데 ‘청년’이 붙으면서 사회에 막 첫발을 디뎌 새로 시작하는 단계고, 기성세대 노동자와 구분되는 그런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드는 거죠. 좋게 말하면 젊은 인재, 젊은 패기라고 포장되곤 하지만, 이름만 청년이란 단어가 붙었을 뿐, 착취당하는 대상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봐요. 착취를 본격적으로 당하기 위한 시작단계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형우 : 착취를 당하기 위한 시작단계라는 말이 와닿네요.

 

병열 : 네, 본격적인 단계의 시작이죠.

 

 

 

형우 : 구의역 김 군, 김용균, 김태규, 이한빛 등 여전히 우리는 청년노동자들의 죽음을 접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관련해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본 경험이 있다면 나눠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동민 : 저도 현장에서 위험한 환경에 있다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일하기 전에는 뉴스에서만 보니까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내 앞의 상황이 아니라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직접 일을 해보니까 다르더라고요. 저도 자질구레한 사고도 있었고 크게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사고는 나와 멀지 않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이걸 막으려면 사회에서 회사에 제재를 걸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열 : 제가 하는 편의점 알바는 생명에 대한 위협과 직접 맞닥뜨릴 일은 없어요. 그러다 보니 다들 산재 소식을 접하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하지만, 내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 거죠. ‘나는 그런 일 안 할 거니까’, ‘나에겐 닥쳐오지 않을 테니까’. 어쩌다 우리 사회가 너랑 나, 우리와 그들로 이분화해서 생각하게 됐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많이 들어요.

 

소연 : 저는 우선 청년 노동자들 죽음에 책임지지 않는 기업에 분노합니다. 병열님 말씀처럼 제 주변 사람들도 ‘나는 그런 일 안 할 거니까’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현장에서 위협받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우리가 일상의 편리함을 느끼고 사는 건데 사람들이 그걸 너무 쉽게 간과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대부분의 중대재해가 하청노동자들에게 많이 일어나다 보니, 원청-하청관계에서 책임을 누가 져야 마땅한가 하는 고민이 많이 들었습니다.

 

 

 

형우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앞 단식농성이 연말연초에 벌어졌는데, 현장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주변에선 청년노동에 대한 현 정부의 법안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요? 투쟁에 대한 반응들은 어떠한가요?

 

 

동민 : 제 주변은 미조직 사업장이라 이런 사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비정규직 현장에서 아직 많고요. 위험한 현장이고 까딱하면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료 노동자들은 많이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소연 : 제 주변에는 신체적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곳에서 일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많이들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중요한 법인데도 관심이 적은 것 같아요.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누구에게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요. 사회에 첫발을 떼는 대다수는 비정규직, 계약직이겠죠. 노동현장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삶을 살 때 우리에게 노동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발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병열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해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일단은 긍정적인 반응이에요.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있던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 다들 ‘그렇게 해야지’ 하는 반응을 보여요. 기저에 깔린 인식이 ‘나는 아니니까’인 것 같아요. 법의 취지와 내용에 동의는 하는데, 지지를 어떻게 할 거고 당장 본인과 가족에게 중대재해라는 사고가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는 친구는 없었어요.

 

 

 

형우 : 코로나 이후 비정규 노동의 양태는 더욱더 불안정한 상태로 청년들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경험이나 일화를 들어주셔도 좋습니다.

 

소연 : 저는 지난 12월 거리두기 2.5단계 이후로 알바를 못 하고 쉬고 있어요. 제 주변을 보더라도 취업이 안 되고 알바도 못 구해서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사람도 많아요. 제 오빠도 내년 말에 계약 만료 전에 정규직으로 이직을 원하는데, 잘 안 되고 있어요. 참 힘든 상황인 것 같습니다.

 

병열 : 코로나 때문에 사회가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불안함이 가중되는 거예요.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급격히 줄었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고 보입니다. 애초에도 정규직이 되기 힘든 사회였는데, 그 정규직마저 불안정하게 된 거죠. 제 주변에서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하루 알바 같은 다른 직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애초에 비정규직이나 파견직이 적었다면, 코로나로 이렇게까지 힘들었겠냐 하는 분들도 있어요.

 

동민 : 제 나이 또래는 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아서 알바를 못 구하거나 잘린 친구도 많아요. 청년이 전체적으로 불안정해졌다는 느낌이 많이 들죠.

 

 

 

형우 : 조금 추상적일 수 있지만, 청년노동자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법안 입법이나 광범위한 대중투쟁 등 다양할 것 같은데.

 

소연 : 제일 시급한 건 대중투쟁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나는 그런 상황 아니니까’, ‘난 괜찮아’ 이런 게 내면화돼서 ‘알아서들 하겠지’ 하는 게 전반적으로 퍼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노동의 불안정성을 누구나 겪고 느끼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안정적인 생계를 마련할 수 있을지 얘기하는 자리가 많아져야 합니다. 특히 우리 또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병열 : 당장의 정세에 맞춰 생각하면, 코로나 영향을 말씀 안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사람이 모이는 대부분의 활동이 정지돼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지금 당장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대중투쟁이지 않나 싶어요. 그중에서도 미디어를 통한 대중투쟁이 제일 시급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 시국에 맞춘 투쟁인 거죠. 대면 활동에 타격을 입었지만, 역으로 그걸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민 :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겐 노동조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 제조업 분야는 재택근무가 불가능해서 현장에 모여 있거든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노동조합이 가장 필요하죠. 그렇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대중투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걸 활발히 해서 해당 의제를 청년들에게 충분히 인식시킬 힘도 필요할 것 같고요.

 

 

 

형우 :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 나누신 소감 부탁드립니다.

 

병열 : 당에서 뭔가 하는 것에 참여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웃음) 오늘 대화를 통해서 한동안 멈춰있던 고민이 다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대를 함께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고를 다시 활발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답변 준비과정이 어려웠는데, 그만큼 즐거웠습니다. (웃음)

 

소연 : 오늘 이 시간 통해서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나 목소리가 나왔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른 분들과 얘기하면서 앞으로 청년노동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고민하고 대화해야 할지 고민하는 자리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동민 : 한동안 당과 관련한 활동을 못 하다가 오랜만에 이 자리를 계기로 저나 제 주위의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얘기해봤어요. 다른 산업 종사자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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