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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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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8.15 07:57

지난 728,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박종필 동지를 기억합니다. 저는 한 번도 그를 박종필 감독님, 혹은 박감독으로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제게 종필형이거나 박종필!”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도 박종필 동지를 그렇게 호칭하겠습니다.


세연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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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7년 가을. 홍익대학교.

2회 인권영화제였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검열을 거부한 인권영화제를 무산시키려는 경찰의 학교 봉쇄와 침탈로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고 우리는 그 상황을 촬영했다. 그런 어느 날, 종필형은 경찰로 가득한 학교 정문에서 계속 같은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 가자” “세연아, 이런 상황에서 설정샷은 굉장히 중요해구도가 어떻고, 수평이 어떻고... “. 그래. 그래. 이제 들어가자형은 영화제 내내 학교에서 살면서 새벽에 경찰이 침탈해 화장실에 숨겨둔 장비를 빼앗아가는 현장을 촬영했다. 이후 내 촬영 실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촬영교육을 할 때마다 형이 해줬던 이야기를 유용하게 써먹었다.


#2. 2008년 여름.

광우병 촛불 집회 후 뒤풀이 자리였다. “, 나는 정말 이 나라에서 살기가 싫어. 동남아 어디쯤 가서 살면 좋겠지?” “진심이야? 니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니? 활동가가, 여기서, 이 세상을 바꿔야지!” “,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가 지금 당장 나간대?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래!” 내가 도리어 형한테 화를 냈다. 근데 돌이켜보면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문제를 피하거나 에둘러 가지 않는 사람. 그런 생각도 못하는 사람.


#3. 2016413. 시청근처

21대 총선이었다. 한광호열사 추모문화제 후 지인들과 총선 결과를 보면서 술을 마시던 중 문득 내가 물었다. “, 왜 형은 당에 가입 안해?” “, 그러게. 나는 한 번도 조직을 나간 적이 없는데 당원이 아니더라고.” 종필형은 에바다 투쟁을 계기로 노동자의 힘에 가입했고, 이어진 조직에서도 계속 성원이라고 믿고 있었다. 듣고 있던 다른 지인이 말했다. “, 너 짤렸구나. 푸하하하” “맞네. 형 짤린 거 맞아. 그럼 언제 가입할건데?” “. 지금 할께나는 재깍 당원가입을 담당하는 동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형은 당원 자리를 찾았다.


#4. 2016년 가을. 망원동

지인들 몇 명이 모였다. 웃고 떠들던 중 한명이 물었다. “종필아, 근데 너는 입신은 언제 할 꺼니?” 그랬다. 이십년도 더 전에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형은 영상작업으로 입신을 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활동가가 그래서 쓰겠냐, 불순한 거 아니냐 하며 형을 놀려댔다. 이십년 후 그 질문을 받은 형은 해맑게 웃으며 , 이정도면 나, 입신한 거 아니냐?” 일동 외쳤다. “뭐라? 입신을 했다고? 지금?” “아이고, 형의 입신은 소박하기도 하구나” “아냐. 아냐. 그건 아닌 거 같애. 좀 더 노력해봐


#5. 2017729일 새벽. 박종필당원 장례식장

형이 떠난 날, 강릉엘 가서 형이 가기 전 마지막 모습을 봤다. 고마웠다. 다음날 새벽, 장례식장에서 입신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우리는 형이 입신했다는 걸 인정했다. 입신 뿐만 아니라 양명까지 했다는 것도. 종필형, 참 잘 살았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너무 짧아서 속상하지만, 고단했을 그 길.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뚜벅 뚜벅 걸어오느라 애 많이 썼어요. . 살면서 힘들 때 형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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