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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9.15 08:12

아빠를 도와주고 싶어

<안녕 히어로> (한영희 | 108| 다큐멘터리 | 2017)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대공연장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때 가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적이 있다. 대사를 하는 배우를 보아야 하나, 노래를 부르는 배우 앞의 상대 얼굴을 봐야 하나? 시선을 왔다갔다, 때로는 주연 배우 앞에 선 조연들의 표정과 몸짓에 사로잡히곤 해서다.

 

<안녕 히어로>는 그런 고민을 하도록 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해고노동자의 아들이지만, 주연인 듯 조연인 듯 쌍용차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와 그 아들의 삶으로 해고투쟁을 말한다. 치열한 투쟁의 과정을 그리거나 싸움의 고뇌를 깊게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적합하지 않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치열한 싸움이나 2012년부터 서울 대한문 분향소를 중심으로 벌어진 처절한 해고자 복직투쟁을 담고 있지 않다. 해고노동자의 아들이 해고와 투쟁을 어떻게 경험하고 느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담은 영화다.

 

어쩌면 이 영화는 <화려한 휴가>가 아니라 <택시운전사>라 할 수 있다. <화려한 휴가>가 학살에 맞서 싸운 광주시민들의 삶이 주가 된 영화라면, <택시운전사>는 광주시민들에 연대한 서울택시운전사와 기자의 얘기이므로. 싸움의 주체가 아니더라도 저항하는 광주시민들에게 공감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역사적 사건을 동시대인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통해 우리는 사건을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다.

 

아들의 눈으로 본 해고투쟁

<안녕 히어로>의 미덕은 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왜 싸우는지, 그의 옆에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같이 그 싸움을 겪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이 영화는 광장의 대규모 집회에서 하는 투쟁연설이 아니라 골목길 평상에서 나누는 대화와 닮았다. 그래서 극적이거나 웅장하지 않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쌍용차 해고자의 아들 현우의 삶에 해고 싸움은 어떤 영향을 미쳤고 현우는 이 싸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이다.

 

김정운은 2009년 회사의 정리해고가 부당하기에 정리해고 대상자들인 동료들과 함께 싸우다 징계해고 됐다. 그때 현우는 초등학생이다. 현우는 아빠가 왜 싸우는지 몰랐지만 엄마와 함께 집회에 함께 간다. 첫 집회에서 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한국의 노조로 조직된 (남성)노동자들의 싸움을 처음 본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남성노동자들의 동일한 몸짓과 구호 속에서 느끼는 낯섦, 그것은 뭔가 무섭고 멋있어 보이기도 하다. 긴 해고투쟁 과정에서 현우도 함께 해고싸움을 겪는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뉴스를 통해, 아빠와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통해, 집안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것을 통해 해고를 함께 겪는다.

 

이른바 산자(정리해고 되지 않은 노동자)와 죽은자(정리해고자)의 자녀가 함께 다니는 학교에서 현우는 친구도 잃어버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동안 친구가 없다. 대공장 인근의 학교생활은 대공장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규직인지 아닌지, 관리직인지 생산직인지, 해고자인지 아닌지, 투쟁 중인지 아닌지 등. 게다가 현우는 아빠의 해고로 엄마가 돈을 벌어야 하니 학원을 옮기는 것도, 교복을 새로 사 입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게 많다. 학원에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우가 걱정돼 엄마는 학원을 옮기려 하지만, 현우는 돈이 더 많이 들까 옮기기 싫다고 말한다. 중학교에 들어가 사야 할 교복을 받기 위해 검찰과 경찰이 주최하는 자선행사에 참석해 교복을 받는다. 자선활동이 그렇듯 자선을 베푸는 자들의 전시물이 돼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담은 사진촬영은 필수다. 그 행사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을 현우의 마음이 짐작되나 그 마음이 말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아빠의 해고와 구속에 영향을 준 경찰과 검찰이 준 교복이 내키지는 않겠지만, 엄마 혼자 돈을 버니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받아야 할 것이다.

 

경영상의 어려움이 없는데도 정리해고한 회사, 그 해고된 동료들과 함께 싸우다 징계해고된 아빠, 그 아빠가 싸우느라 집에도 늦게 들어오고, 매일 선전물을 쓰고 기고문을 쓰지만 왜 해결되지 않는지, 왜 언론에 잘 안 나오는지 현우는 궁금하다. “아빠를 도와주고 싶어서 현우는 이유 없이 아빠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쌍용차 뉴스를 빼먹지 않고 보고 아빠의 연설을 듣는다.

 

현우는 아빠의 싸움에 응원을 보내지만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감옥 하면 물건 훔치고 사람 죽이고 그런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왜 아빠를 가뒀는지이해가 안 된다. 학교에서 써오라는 생활기록부, 아빠의 직업을 무어라 쓸 것인가. 무직이라고 쓰지도 못하고 해고자라고 쓰지도 못한다. 아빠는 해고됐지만 분명 열심히 일하니까. 자녀들과 놀아줄 시간이 줄어들 정도로 열심히 사니까. 기업의 말이 먹히고 성공한 자만이 입을 열 수 있는 자본의 시대에 무직’, ‘해고자는 실패의 상징이다.

 

직업을 노동운동가라고 칭하기에 머뭇거리는 아빠 김정운의 모습에서 (해고)당사자들의 어려움을 엿본다. 우리는 왜 당사자들의 싸움에 인색한가. 당사자들이 싸워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문제는 당사자들의 싸움이 끝나고 그들이 다른 사업장의 투쟁에 무감한 것이 아닌가. 김정운의 머뭇거림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10대가 바라본 우리 시대

10대 소년들이 보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아이들의 대화 속에 드러난다. 쌍용차 김득중 지부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지만 친구들에게 말하기 어렵다. 친구들은 선거 포스터를 보며 말한다. 아무래도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 능력이 있고 국회의원이 되지 않겠냐고.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되고 정치를 한다는 건 꿈도 못 꾼다. 능력은 학벌에서 나오고 권력은 그들이 가져야 한다는 상식은 편견이라기보다 현실이다.

 

대법원이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했지만 아빠는 계속 싸운다. 굴뚝 농성 후 회사와 교섭이 재개되고 아빠의 동료들이 복직된다. 전원복직 되지 않아 싸움을 더해야 하니 아빠는 언제 복직할지 고민한다. 결국 아빠는 복직된다. 그들의 꿈은 이루어진 것인가. 아빠와 현우는 각각 공장으로 학교로 간다. 그것은 끝이 아니다. 끝이 아니기에 김정운과 김현우의 걸음을 쫓아가는 카메라가 흔들리는 게 아닐까. 걸음에 따라 진동하는 카메라 워킹은 아직 진행 중인 싸움을 상징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싸움도, 그 싸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내는 것도 진행형이다.

 

끝으로 이 영화는 대공장 정규직 남성의 가족이야기라는 소재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한다. 10대 소년의 생각을 중심으로 하기에 해고자 남성의 뒤를 이은 여성(아내)의 노동과 투쟁을 담지 않았으며, 최저임금으로 생활하기도 빠듯한 비정규직노동자가 겪는 가난과 차별은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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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히어로>의 공동체 상영은 언제든지 열려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배급사 시네마 달(02-337-2135)로 문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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