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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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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과 레닌주의 당에 관해

레닌주의는

스탈린주의를 낳았는가

 

백종성정책선전위원장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관계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특히, 러시아 혁명 전후 볼셰비키의 정치는 물론, 그들이 결성한 당의 구조 자체가 뒷날 스탈린주의의 기원이 된다는 비판은 널리 퍼져 있다. 과연 그러한가? 흔히 레닌주의적 정당은 군사적 규율에 복종하는 직업적 혁명가들만으로 구성된 비합법 정당이라고 여겨진다. 이것이 이른바 전위정당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다. 이런 인식은, 어떤 당내 비판도 금지하며 혁명 동지들을 모조리 숙청하여 당은 물론 러시아 전체를 질식시킨 스탈린주의의 기원이 레닌 자신에게 있다는 비판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스탈린주의 유일당 사상의 근원이 레닌 자신에게 있다는 비판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반대파도 허용하지 않는 관료적 정치집단으로서의 볼셰비키라는 인상은 스탈린주의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이 만든 신화일 뿐이다. 러시아 혁명은 각 당파 사이는 물론 당파 내부의 논쟁으로 가득하며, 레닌은 자신의 당에서조차 소수파인 경우가 허다하다. 볼셰비키는 상명하복의 관료적 정치집단이 아니었다. 이 글은 레닌주의 당 모델과 그 역사적 기원인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 2차 당 대회를 살피며 이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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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의 볼셰비키 지도부

 


레닌주의 당

전위정당론의 역사적 기원은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 2차 당 대회에서 벌어진 당원 자격 논쟁에 근거한다. 당 규약 1즉 당원 자격을 둘러싼 논쟁은 양자의 당에 대한 관점을 집약했다. 먼저, 레닌이 제출한 당 규약 1조는 다음과 같다. “당원은 당 강령을 승인하고, 재정적으로뿐만 아니라 당 조직 중 하나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당을 지지하는 자이다.” 마르토프가 제출하고 대회가 채택한 당 규약 1조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당원은, 당 강령을 승인하고 당을 재정적으로 지지하며, 당 조직 중 하나의 지도 하에 당을 정규적이고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자이다.” 마르토프가 제시한 당원 자격이 강령을 승인하고, 당비를 납부하며, 당을 지지하는 자라면, 레닌이 제시한 당원 자격은 강령을 승인하고, 당비를 납부하며, 당이 설치한 기구에서 직접 활동하는 자이다. , 볼셰비키는 당원을 당 조직에 속해 활동하는 자로 규정했고, 멘셰비키는 당을 지지하는 자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규약 1조를 둘러싼 논쟁이 우리에게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당원 자격을 제한하자는 주장에는 어떤 문제의식이 있는가? 그 핵심은 계급과 당의 관계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레닌의 요지는 명확하다. 당과 계급은 다르다. 당은 노동계급의 당이지만, 노동계급 그 자체와는 다르다. 당은 계급의 전체를 망라할 수 없으며, 그러려고 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당을 구성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의식적선진적 일부여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주장이었다. 레닌은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아직 분열하기 전 자신의 주장, 무엇을 할 것인가의 논지를 1903년 당원 자격 논쟁을 거치며 더욱 구체화 한다.

 

당 조직이 강고할수록, 또 당내 동요와 불안정성이 적을수록, 당을 둘러싸고 있으며 당이 지도하는 노동자 대중에 대한 당의 영향력은 더 넓어질 것이며, 더 다면적으로, 더 풍부하게, 더 성공적으로 될 것이다. 요컨대 노동계급의 전위로서의 당은 계급 전체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전위와 전위에 이끌리는 모든 대중의 차이를 망각하고, 광범한 층을 점차 선진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전위의 항상적 임무를 망각하는 것은 단지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고, 우리 임무의 위대함을 외면하는 것이며, 임무를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에 동조하는 자와 소속하는 자의 차이, 자각한 적극적인 자와 원조하는 자의 차이를 말살하는 것이야말로 이와 같은 외면이고 망각이다.

- 레닌, 일보전진 이보후퇴

 

누가 당을 구성하는가

이는 대중과 전위를 구분한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인가? 아니다. 계급과 계급조직은 다르다는 것, 당을 구성하는 주체는 계급의 일부여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상식적이다. 사회주의 정당보다 훨씬 대중적인 민주노조조차 전체 노동계급을 포괄하지 않으며, 그것이 바로 어용노조와 민주노조의 차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는 계급투쟁의 부침을 낳으며,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당은 그 부침 속에서도 끝없이 정치투쟁을 펼쳐내야 하는 조직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당이 노동계급의 선진적 일부라면, 당은 그야말로 직업적 활동가들의 조직인가? 오직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들만이 당원이 될 수 있는가? 전위는 대중과 애초부터 다른 그 무엇인가? 애초 레닌 자신이 이런 생각을 부정한다.

 

당 조직은 오직 직업적 혁명가로만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극히 제한되고 비밀스런 조직으로부터 매우 광범하고 자유로운 느슨한 조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 모든 등급, 모든 색채의 다양한 조직이 필요하다. 대략 다음과 같은 범주로 구별된다. 1)혁명가의 조직, 2)가능한 한 다양하고 광범한 노동자 조직. 이 두 범주가 당을 구성한다.

- 레닌, 일보전진 이보후퇴

 

레닌은 모든 종류, 모든 등급, 모든 색채의 다양한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전위정당=직업적 혁명가정당이라고 사고하는 것은 그야말로 잘못된 관념일 뿐이다. 레닌이 말하는 당 조직론의 핵심은 계급과 정당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요지는 극히 상식적이기까지 하다. 레닌은 심지어 매우 광범하고 자유로운 느슨한 조직까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를 당 정치 속에 통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 2차 대회의 역사적 맥락을 보아야 한다.

 

위로부터의 당 건설은 무엇을 뜻했는가

1890년 러시아 대기근은 마르크스주의를 일종의 유행으로 만들었고, 이 유행은 자유주의자들까지 마르크스주의로 이끌리게 할 정도였다. 대중생존의 파탄을 설명할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다. 당시 사회주의 운동은 각양각색의 노선과 활동기풍을 가진 지역 써클로 분열된 상태였고, 러시아 사회민주노동자당 2차 대회의 화두는 어떻게 그 운동을 통합할 것인가에 있었다. 써클로 남을 것인가, 당으로 전진할 것인가? 볼셰비키의 핵심 주장은 당 정치는 써클 정치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른바 위로부터의 당 건설이 제기된다.

 

이미 1조에 관한 논쟁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 그들은 강고하게 결합된 당 조직이 아니라 분산된 조직을 옹호했으며, 당 대회와 이에 의해 결성된 기구로부터 출발해 위로부터 아래로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사상을 관료주의적 사상이라 하여 적대시하고, 당원은 당이 인정하는 조직 중 하나에 소속할 것을 요구하는 형식주의를 적대시하여 조직 관계를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이려고하는 부르주아 지식인의 심성에 경도되었고, 기회주의적 심오함과 무정부주의적인 수다를 즐기고 중앙집권주의에 반대하여 자치주의로 기울었다.

- 레닌, 일보전진 이보후퇴

 

레닌이 말하는, ‘위로부터라는 명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다. 먼저, 당 대회와 대회가 결성한 기구가 당 조직을 관할해야 한다는 것이고, 당의 기구에 결합해 활동할 때 당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당 대회 결정과 당 대회가 구성한 기구로 중앙-지역-영역을 통합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이었고, 심지어 일부는 모든 조직의 일반 운영원리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레닌은 당 기관조직은 난립해서는 안되고, 당 대회 결정에 근거해 중앙집중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당원 행동을 통일해야 함을 주장했다. 이는 2차 당 대회 당시 러시아 사회주의운동 전반의 분산성과 개별성을 당으로 통일하기 위한 시도였다. 어찌되었건 중앙집중적 행동 통일은 당내 민주주의를 억압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결국 민주집중제 자체가 실현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위에서부터 아래로라는 당 조직 사상과 당내 민주주의는 충돌하는가?

그렇지 않다. 당의 결정과 규율을 준수하는 기구와 당원들로 이루어진 당에서야 비로소 당내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당의 한 기구에서 활동하지 않는, 페이퍼 당원의 다발로 이루어진 당에서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논쟁도, 그를 통한 의사결정도 불가능하다. 당의 기관에 속하지 않으니 자신을 책임질 필요가 없고, 책임질 필요가 없는 당원의 적극성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당비를 납부하고 선거 때 투표를 하는 것이 전부인 수동적 당원들이 구성하는 당에서 가능한 것은, 오직 동원뿐이다. 러시아 혁명기, 볼셰비키의 역동성은 바로 이에 근거했다. 4년 간 지속된 독일과의 전쟁, 3년간 지속된 적백내전으로 국가기구는 비대해지고, 아래로부터의 통제기구는 수축해가는 현실 속에 스탈린 체제는 등장했으나 그 등장이 필연은 아니었다.

 

나가며

10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가 행한 조치들을 모두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내전이 낳은 노동계급의 소진, 고대하던 유럽혁명의 패배라는 조건에서의 조치와 스탈린 체제 그 자체를 등치하는 것은 오류다. 다음과 같은 그람시의 말은, 러시아 혁명의 교훈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좌표가 될 것이다.

 

1. 혁명이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는 데 착수하고 그러한 전복에 성공한다고 해서 반드시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은 아니다. 2. 또한, 혁명이 중앙정부가 부르주아 정치권력을 집행하는 수단인 대의제도와 행정조직을 제거하는데 착수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 혁명이 반드시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3. 민중봉기가 자신을 공산주의자라 부르는 자들(또한, 실제로 신실한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권력을 쥐여준다고 해서, 그것이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인 것도 아니다. 혁명은, 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의 깊은 곳에서 발전하는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의 생산적 힘을 해방하는 정도만큼만 프롤레타리아적이고 공산주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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