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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세상에서 지금 필요한 건

피해자들에 대한 한없는 연대

 

백승연경기

 


[사진 : 정택용]   


며칠 전 책 읽기 모임을 하고 뒤풀이에서 자연스럽게 최근 뜨거운 이슈인 미투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년의 남녀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는 모임인데, 지난 2월 모임 때까지만 해도 이윤택 성폭력 가해 사건이 터진 직후여서 서로 악수하기조차 꺼리고 이야기하기도 힘든 분위기였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미투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난 이달 모임에서는 이런저런 소회를 나눠볼 수 있었다.


연대의 목소리가 커졌을 때 미투도 확산 가능해

A 난 이렇게 빨리 여성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회자될 줄은 몰랐다니까.”

여B 맞아. 그때 당시에는 부조리한 문화 정도로만 인식했던 사건들이 지금 기준에서는 명백한 성희롱으로 판단되는 사건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방증이겠지. 그동안 이런 행태들을 관행처럼 묵인해오던 문화예술계 등에선 아무래도 당혹감이 큰 모양이야.”

A 과거에는 관습처럼 여겼을지 모르지만, 그 문화가 현재의 시각으로 잘못됐다면 일단 청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

A 그러니까 그 청산이란 게 일단 말하는 것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지. ‘나는 보았다.’, ‘나는 당했다고 말하는 것 말이야.”

B 미투 운동이 특히 연극계에서 활발한 것은 손숙 말마따나 그들은 잃을 것이 없고, 한편으로는 각자가 이름을 갖고 있다는 이유도 큰 것 같아. 일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호명될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고스란히 피해만 입는 경우가 많을테고...”

A 유독 진보진영 쪽에서만 미투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보수 쪽은 언급조차 전혀 안 되던데..”

A ┃ 두말할 것도 없이 보수 쪽에서도 그런 일들이 흔할텐데, 용기내서 폭로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건 결국 보수진영의 앙갚음이 두렵기 때문일 거야.”

B 동의해. 미투 운동에 나선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함께 싸워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잖아.”

B 주변에서 나를 지지해 주어야 하는데, 말하고 나서 여전히 나는 뒷감당 못하고 모든 책임이 나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한다면 말을 못하게 되겠지. 사실 평범한 개개인들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엄청나게 많을텐데 용기 내기 어려울 거야. 가족이나 친족 간의 성폭력도 마찬가지고..”.

A 기존 권력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정책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할당제잖아. 의무 할당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여성이 과반으로 선출되는 시기가 되려면 한 50년 정도는 지나야 할 것 같아. 요즘 국무회의를 보면 여성이 두 명 정도 밖에 안 되더라고. 모든 관직에 여성할당제, 소수자할당제가 정착이 돼야 약자들의 권력도 향상되고 문화도 바뀔 것 같아.”

B 일단 잘 모르면 배워야 해. 관성대로 살아가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됐잖아. 일단 성추행이 무엇이고, 성폭력이 무엇인지, 자기결정권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배워야지.”

 

주저 없이 피해자의 편에 서야겠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고발 건과 이윤택 성폭력 사건을 접하고 며칠간 마음도 심란해지고 어둡고 칙칙한 꿈만 꾸었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지금껏 사회운동을 계속하며 살아왔기에 서지현 검사가 당한 일을 숱하게 겪어봤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인정받으려 한때는 스스로를 남자처럼 행세하며 지낸 적도 있었다.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집회에도 나가는 최근까지도 내 생각의 근원에 뿌리박혀 있는 어떤 것 때문에 피해자들, 약자들을 탓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심지어 가해자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침묵해왔던 피해자들이 목소리 내 성폭력 가해자들을 고발하는 용기 있는 행동들을 접하면서 다시금 내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는 양비론이 아니라 편파적으로,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

그렇게 결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 피해생존자 지지모임에서 작성한 정진후 전교조 전 위원장의 민주진보경기교육감 후보 반대 글을 경기혁신연대 내부게시판에 퍼날랐다. 이후 정진후 쪽은 피해생존자 지지모임 네 사람과 나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나는 솔직히 민주노총 김00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쟁 지점을 아주 세세하게 알진 못한다. 다만 2차 가해자들은 조합원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피해생존자는 조직을 떠나고 지금까지도 힘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며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글을 한 번 읽어보라고 했을 뿐이다. 명실상부한 민주진보경기교육감 후보라면 약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함에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하면서까지 사건 공론화에 함께했던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행태에 더욱 분노가 치민다.

요즘 내 일상을 지배하는 한마디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기이다. 기울어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다소 불편하더라도 내 생각을 제대로 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나답게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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