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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4.01 15:25

전노협 와해 작전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전노협중앙위원회 침탈 항의 농성  


전노협 건설 전후 자본과 정권은 노동운동 지도부를 고립시켜 민주노조 조직력을 와해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 ‘고립유형은 노조 간부를 구속해 격리하거나 수배로 활동을 못하게 만들거나 해고로 사업장에서 쫓아내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구속수배해고로 민주노조 지도부를 고립시켜 조직을 와해하라

지노협이 만들어지고 전노협 건설을 향한 투쟁을 전개하던 1989년 구속노동자는 611명에 달했는데, 이는 198880명에 비해 확연히 늘어난 숫자다. 구속노동자 수는 1990492, 1991515명이었다가 1992274, 199346명으로 줄어든다. 산업별로 보면 금속산업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전노협 지도부나 상근자가 43명이었다. 지역별로는 경남, 서울, 경기 순으로 구속자가 많았는데, 경남에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통일중공업 등 대규모 사업장이 포진해 있고 병영적 통제로 파업 투쟁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구속사유는 업무방해가 35%에 달했고 다음으로 폭력이 22% 정도였다. 이 시기 제조업 해고자는 19892,653, 1990904, 1991733명이었고, 지역별로는 인천, 서울, 부천, 경기, 울산, 마창, 부산, 광주 순이었다. 비제조업부문 해고자로는 1989년 전교조에서 대량 해고자가 발생했고 다음으로 병원 해고자가 많았다(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 <전노협백서 9>, 2003).

이 시기 구속, 해고는 노동조합 활동 관련한 것으로 민주노조 지도부와 선진활동가를 축출하기 위한 탄압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준다. 노태우는 19881228일 특별담화문을 발표해 체제수호, 민생치안 확보를 위한 민생치안에 관한 특별지시를 내렸다. 그러더니 891월부터 풍산금속, 현대중공업,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경찰 병력으로 짓밟았다. 특히 마창노련 지도부에 대한 탄압에 집중했는데, 이는 마창노련이 전노협 핵심 지역조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부천·인천·마창지역 총파업, 서노협 시한부 동맹파업 등을 전개하고, 전교조 사수 투쟁을 전 민중의 힘으로 전개하면서 전노협 결성을 이뤄냈다. 노태우 정권은 전노협을 깨기 위해 악성 노사분규에 대한 경찰력 투입대책을 세우고 파업 사업장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경찰병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전노협은 조직 사수를 위한 지역적전국적 연대총파업으로 돌파했고 노태우 정권은 급기야 19901013일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로 인해 사회 분위기는 위축되었고 공안기관은 힘을 얻었다. 노동부는 곧바로 ‘91년 노사관계 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범죄와의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속내를 드러냈다. 정권은 1221일 전노협 중앙위원회 회의장을 침탈해 31명을 연행구속했고 19912월에는 대기업연대회의 소속 노조 위원장들을 대거 구속시켰다.

 

구속 해고자의 몸과 발이 된 노동자들

민주노조의 간부와 전국조직의 지도부를 분리시키면 조합원들은 투쟁하지 못할 것이며 민주노조를 선택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것이라는 게 자본과 정권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의도대로 구속된 지도부는 감옥에 고립되었는가? 지도부 구속은 노동자들에게는 또 다른 투쟁이었다. 동지가 경찰서에 잡혀가면 경찰서를 타격하고 그 앞에 앉아 농성을 벌이고, 법정을 가득 메워 현수막을 펼쳐들며 재판 투쟁을 벌였다. 감옥에 가두면 가족 면회 기회가 없을 정도로 조합원들이 돌아가며 면회 투쟁을 벌였다. 감옥에 간 이들은 더 강한 활동가로 거듭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에서 동지를 만나 토론하고 공부하고 바깥 노동자 투쟁 일정에 맞춰 농성하고 단식하며 단단해졌다.

수배자들은 발이 묶였는가? 전노협 창립대회를 마치고 유유히 빠져나간 단병호 위원장이 (누가 봐도 단병호임에도) 오랫동안 수배생활을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듯 지도부 보위는 곧 조직 사수의 출발이라는 의식이 노동자들에게 있었다. 전노협 중앙위원회 침탈 항의 농성이 시작되자 간부들은 물론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가득 메웠다. “저들은 왜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노동조합을 지키는 걸까?” 이런 의문이 노동자들을 민주노조 곁으로 모았던 것이다. 자본과 정권은 지도부와 선진활동가를 감옥에 가두고 발을 묶었지만 그들의 몸과 발이 된 이들은 노동자들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지도부 보위가 민주노조 사수라는 것을 알고 실천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적들의 탄압? 열악한 처지? 지도부의 헌신? 민주적 노조 활동 때문이었을까? 1990년대 초를 돌아보면서 답을 찾아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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