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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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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6.15 15:41

폐결핵이라는 몹쓸 병

 

박석준한의사(흙살림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폐병이라고 하면 보통 폐결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폐결핵은 한국전쟁 이후 많이 앓았던 병이면서 당시로서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서 치명적인 병이기도 했다. 그래서 폐병쟁이라는 낮잡아 보는 말도 나왔다. 그렇지만 6, 70년대를 통해 폐결핵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창백한 낯빛의 가녀린 여성이 기침을 해대다가 새하얀 수건에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으로 자주 연출되었었다(이 여성의 반드시 가난해야 하고 그 애인은 반드시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잘 나가는 남자여야 한다). 병이 선망의 대상이라고 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이런 예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한 예로 일제시대에는 신경쇠약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처음 들어보는 신경이라는 어휘가 주는 이국적 풍취와 그런 병에 걸리는 사람이 주로 인텔리이면서 일정한 부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양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머리를 짚고 있는 모습은 누구나 나도 그런 병에 걸려봤으면 하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로도 안경을 쓰는 것이 왠지 지적으로 보여 사람들은 도수 없는 안경이라도 써보고 싶어 하던 때도 있었다.

 

이광수 문학에 나타난 결핵의 표상

폐결핵이라는 말은 일제시대에 들어온 말인데, 193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문인들은 결핵을 소재로 한 많은 글을 남겼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하나가 이광수(李光洙, 1892-1950)였다. 이광수는 그 자신이 결핵환자였는데,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환자가 대부분 결핵환자였다. 이광수의 소설에서 결핵은 애정결핍, 불안, 고독을 상징하고, 이상과 현실의 갈등 혹은 육체적 쾌락의 요구에 대한 자기 처벌적 성격을 가졌다(신규환, <질병의 사회사>).” 이광수에게서 결핵은 근대와 전근대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 소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앞에 언급한 드라마에서의 결핵은 전근대적 빈곤과 무지를 근대적인 부와 이성이 구제한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이광수에게서 결핵이 몸을 통해 근대와 전근대의 갈등을 드러내는 소재였다고 한다면 그가 괴로워했던 육체적 쾌락은 정신을 통해 갈등을 드러내는 소재였다. 그의 육체적 쾌락은 전근대를 상징하고 이를 처벌하려는 것은 근대의 이성, 곧 기독교였다.

그런데 이광수가 괴로워했던 육체적 쾌락은 결핵을 앓는 이에게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육체적 쾌락은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의 본성이다. 그런데 결핵에 걸리게 되면 대부분 이 육체적 욕망이 커진다.

한의학에서는 폐결핵을 노채勞瘵라고 하는데, 노곤하고 피로하다, 매우 수척하고 시들었다는 뜻이다. 노채의 원인은 기본적으로는 음허화동陰虛火動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음기가 모자라 화가 들끓게 된 것이다. 비유하자면 가뭄으로 물이 말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는 단순히 뜨거운 것이 아니라 상화相火라고 하는 욕망을 일으키는 화를 말한다. 음허화동이 되면 이 화가 제멋대로 움직이게 되어 폐결핵에 걸리면 대개 성적인 욕망이 강해진다. 몸은 이미 쇠약해졌는데도 욕망이 솟아올라 자꾸 음기를 써버리니 몸이 더욱 쇠약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광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하니 근본적인 문제, 곧 결핵을 치료하지 않고 육체적 쾌락의 문제를 도덕이나 이성의 문제로 풀려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문제가 되어, 결국 이광수는 현실의 초월이나 좌절, 죄의식, 때론 현실의 쾌락에 몸을 맡기는 사이를 방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질병의 사회학

과거에는 폐병이라고 하면 잘 먹어야 한다고 하여 개고기를 많이 먹었다. 어떤 사람은 소위 과학적근거가 없다고도 하지만 한의학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폐결핵은 근본적으로 음기가 부족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오행의 수에 해당하는 콩팥의 기를 불려주는 개고기는 좋은 치료 음식이 된다.

병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그 치료 역시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예를 들어 한의학에서는 요통의 원인 중 하나로 콩팥의 기능이 약해진 것을 든다. 그러므로 치료는 콩팥의 기를 늘려주는 것이 된다. 반면에 요통의 원인을 척추관협착으로 보면 눌러 붙은 것을 없애는 수술을 하게 된다.

요즈음 사람들은 요통보다는 척추관협착증을 앓기 좋아하고 중풍보다는 뇌경색이나 뇌출혈을 앓기 좋아한다. 애가 좀 나대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게 된다(그러면서도 자기 아이가 엣지Edge하기[튀기]를 바란다). 사회가 변하는 것처럼 병도 변하고 치료도 변한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가 자연과 몸에 지속적으로 적응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결핵균은 항생제로 죽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몸에 오는 피해와 더불어 내성이 생겼을 때 몸과 자연에 어떤 피해가 올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편적 연관 속에 있지 않은 것은 하늘에도 땅에도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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