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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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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임금인상 투쟁과 

전국 총파업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 마창노련 사업장 단체행동으로 화장실 한 줄 서기, 밥 같이 먹기 투쟁을 벌이는 여성노동자들 모습. 

[출처 : 마창노련기록물전산화추진위원회]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투쟁은 이기적이고 의례적인 것으로 질타를 받은 지 오래다. 민주노조운동 30년을 실리를 추구하는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사회적 임금 상승을 제기하지 못한 채 임금체계 왜곡과 기업별 임금만 올려놓은 투쟁을 한 시기라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영향을 받은 평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전노협이 초기 임금인상 투쟁을 준비하고 실행했던 과정을 정리해보면서 질문을 던져본다. 임금인상 투쟁 자체가 문제였을까. 당시 정세와 주체들의 의식 형성 과정에 임금인상 투쟁은 어떻게 자리매김했을까.

 

전지역업종 노동자들의 공동임투

전노협은 1990년 임금인상 투쟁을 준비하면서 노동운동 탄압 저지를 위한 투쟁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방향을 잡고 생활조건 개선과 민주노조 역량 강화, 민주노조 세력의 연대와 정치의식 강화, 민족민주운동진영과의 연대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1989년 말 미리 지역업종별 공동투쟁체계를 구성하였고, 연초에는 노조마다 총회를 열어 요구안을 확정했으며, 교섭시기와 쟁의발생신고 시기를 집중하고 계획대로 총력투쟁을 벌여 상반기 내 투쟁을 마무리했다. 전노협 임금인상 투쟁에서 시기집중은 기업별노조 체계 극복과 전국 단일전선 형성을 꾀하는 것이었다.

지역에서는 연초 노동운동단체와 단위노조 간부들이 참여하는 수련회를 열고 조합원 교육, 간부학교, 문화교실, 체육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했고, 노동자들은 이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임금인상 투쟁 결의를 높였다. 단위노조들은 조끼 입고 일하기, 작업장에 현수막 걸기 등은 기본이고, 화장실 줄서기, 5분 전 밥 먹기, 봄맞이 대청소, 밥 같이 먹기 등 참신한 프로그램으로 준법투쟁을 벌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조합원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고 전국 회의를 통해 사례가 공유되었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투쟁 준비과정부터 함께했다.

이 해 임금인상 투쟁은 510~25일 사이 쟁의가 집중되었고 타결 시기까지 맞추지는 못했으나 높은 타결률과 타결액으로 마무리되었다. 정권의 전노협 집중 탄압을 노동자들은 공동투쟁을 통해 돌파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의 중요성을 확인했으며 전노협의 공동임투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KBS·현대중공업 노동자 투쟁에 연대한 전국총파업

전국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이 서서히 불을 지필 때 318KBS 서기원 사장 임명에 반대하며 방송 민주화를 요구하는 KBS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420일에는 현대중공업노조 간부 구속에 항의하며 노동자들이 투쟁에 돌입했고, 428일 병력이 투입되자 50여 명이 골리앗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다. 현대그룹사 노조들의 연대투쟁과 만세대 민주광장을 중심으로 연일 가두투쟁이 이어졌다.

전노협은 51일 총파업을 결정했다. KBS와 현대중공업노조 투쟁은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진퇴를 결정하는 투쟁전선이라는 판단에 전국 연대투쟁을 결의한 것이다. 마산창원과 부산에서 시작된 투쟁이 힘이 되어 방송사 노조들의 제작거부 연대투쟁으로 확산되고, 53일 수도권 지역 노조가 총파업 대열에 합세하고 54일에는 전국적으로 12만 명이 파업을 벌였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같은 소속 사업장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았고 사업장 규모도 묻지 않았으며 지역과 업종이 따로 없었다.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59일 민자당 창당일에 맞춰 해체! 민자당퇴진! 노태우 투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골리앗 농성이 510일 마무리되고, 이어 18KBS노조도 제작에 복귀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급속하게 가라앉았다.

투쟁전선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지만 1990년 임금인상 투쟁은 전국 총파업으로 확산된 전노협 조직사수 투쟁이었다. 1990년 전노협의 총파업은 노태우 퇴진 투쟁으로 이어진 정치투쟁이었다. 전노협의 총파업 투쟁을 탄압을 부른 투쟁이라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는 무리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전노협은 자본과 정권과의 투쟁에서 물러서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이 총파업을 계기로 민주노조운동뿐 아니라 민중운동의 구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노동자들은 전노협이라는 전국조직이 있었기에 공동투쟁이 가능했음을 알게 되었고, 연대를 통한 총파업의 중요성을 경험을 통해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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