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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유가조작 후폭풍으로 

초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베네수엘라

 

정용경사회운동국장

 



텅 빈 청과물점, 엎어진 바구니 위에 토마토 여섯 알과 쌀포대만한 지폐더미만 놓여 있다. 5,000,000볼리바르, 미화 1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만큼의 지폐더미이자, 토마토 여섯 알을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이다. 일명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보여주는 각종 사진들은 이처럼 더없이 절망적인 풍경들을 담고 있다. 줄지어 피난하는 인파, 앙상한 어린아이가 몇 달 만의 빵 한 덩이를 손에 쥐는 모습, 국경의 담장 밑에 파놓은 구덩이를 숨죽여 통과하는 베네수엘라인 수백 명...

이런 모습은, 베네수엘라의 연간 인플레이션율이 올 7월 한 달에만 83,000% 가량 올랐다는 연구 결과가 결코 베네수엘라 국회를 장악한 반동세력의 조작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IMF도 올해 안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인플레이션율이 1,000,000%는 찍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20171월부터 18개월간, 국경이 맞닿은 콜롬비아와 브라질에만 각 900,000여 명, 7~800여 명의 베네수엘라인이 기근을 피해 난민으로 유입되고 있다. 여건이 되는 이들은 스페인, 미국, 캐나다 등지로 떠난다. 비행기 표는커녕 옥수수 전분 이외의 그 무엇조차 사먹을 수 없었던, 외화를 소유하지 못한 베네수엘라 민중은, 질병 및 인신매매와 범죄에의 노출을 무릅쓰고서라도 당장 아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마약 밀수 루트를 피난 루트로 이용해 인근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브라질 등 국가들로 생명을 위한 탈주를 이어가고 있다. 20171년간, 정말로 쓰레기를 뒤져도 먹을 것이 없어서 베네수엘라인의 74%가 평균 8.7kg의 체중감량을 겪었다. 이후, 상황은 악화되었다.

마두로 정부는 처음에는 반동세력의 악선전, 제국주의 세력의 흑색비방이라는 등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인 수백만 명이 굶어죽기 싫어서 피난하는데, 지폐가 휴지조각인 상태를 넘어 휴지가 지폐보다 더 비싸게 거래될 지경인데, 마두로 정부가 초인플레이션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국 내에서는 비민주적으로 일관하면서 미국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불안하다. 마두로 정부는 20189월 말 초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목적으로 95%의 평가절하를 수반한 화폐개혁과, 유가에 연동된 암호화폐 페트로의 출시 등, 뒤늦은 실험들을 지푸라기 잡듯 펼쳐보이는 중이지만, 손에 잡히는 결과는 없다.

927, 궁지에 몰린 마두로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만나달라며 악수를 청했다. 과거 유엔 연단에서 미 부시 대통령을 악마의 하수인이라며 통렬하게 비판하던 차베스와는 달랐다.


2014OPEC발 유가폭락 과정에서 치명타를 입은 베네수엘라

우파 언론이 떠들어대는 것과 달리, 사태의 원인은 무상복지사회주의가 아니다. 마두로 정권도 문제가 많지만, 단순히 마두로 정권 행정의 무능과 부정부패만을 이 사태의 원인으로 꼽을 수도 없다.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석유를 무기화한 OPEC에 있다.

사우디 정부는 1973, 1986, 1990년대에도 그러했듯이 2014, 외교적 비책으로 유가 변동을 써먹는 기존의 방식대로, 미국 정부의 중동정책에 맞추어 러시아, 이란 등 석유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지닌 국가들을 압박하려 OPEC발 유가조작이라는 결과를 빚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언뜻 보면, 사우디가 자국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왜 유가를 내리려고 담합하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오일쇼크의 패턴과는 다를지라도, 유가급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우디 입장에서 유리할 때가 있다. 일단은, 점유율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유가를 매우 낮게 잡아버리게 되면 배럴당 70$ 이하의 가격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석유공급자들은 경쟁에서 도태되고, OPEC은 가격조작에 더욱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뿐 아니라, 20149, 당시 미 국무장관 존 케리와 사우디 압둘라 왕이 유가를 기존 시장가보다 낮게 잡기로 담합한 정황이 있었다. 그래서 이때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가 분쟁상황을 지속시키는 상황에서 오름세였어야 할 유가가 오히려 급락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사우디는 사담 후세인을 견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배럴당 10$ 이하로 유가를 잡아내리면서 이란에도 압박을 가하고 러시아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것도 견제해낸 바 있었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90%는 석유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201410월부터, 사우디와 미국 정부의 결탁 하에, 20개월간 유가가 70%나 폭락했다. 배럴당 70$ 이하의 가격으로는 경쟁이 불가했던 베네수엘라도 그 과정에서 치명타를 입었다. 20152, 마두라 정권은 이 충격파를 흡수하기 위해 정부지정 환율의 등급을 황급히 개정했지만, 실물경제와 화폐제도의 괴리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막장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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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베네수엘라인들


신자유주의 언론매체들의 퍼주기식 사회주의욕하기

한편, CNN, Fox News 등 미국 주요 언론사들은 사회주의 혁명은 어떤 나라든 망가뜨릴 수 있는 것... 베네수엘라의 교훈”, “트럼프, 베네수엘라를 청소해야 한다고 입장 밝혀등의 제목을 뽑으며, 이라크 전쟁 직전 개입주의를 정당화하던 군산복합체로서의 본모습을 드러내던 당시와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기사들을 연일 쏟아냈다. 그러면서, 난민혐오를 부추기는 분열책동과 사회주의에 대한 이념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한국 언론도 거기에 편승해서, “무상복지 사회주의의 퍼주기식 정책으로 석유부국 베네수엘라가 망했다라는 서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의 서사를 갈무리하자면, ‘무상복지 때문에 베네수엘라가 망했고,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로 베네수엘라를 벗어난 난민들이 정작 자본주의 국가에 도착해서는 적응을 못하고 범죄만 발생시킨다는 프레임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종착지로 많이 택하는 볼리비아의 경우는 버젓한 사회주의 국가이고 연간 평균 3.8%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사회주의가 싫어서 떠난 것이라면 굳이 사회주의 국가를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문제는, OPEC, 군산복합체의 도구로 전락한 언론에 있다.

 

근본적인 개혁 부재가 맹점

아직까지도 베네수엘라에서는 정부 지정 환율(2017년 기준 1USD=10VEF, 20188월 기준 1USD=250,000VEF)과 암시장에서의 실물거래 환율(2017년 기준 1USD=3000VEF, 20188월 기준 1USD=6,000,000VEF)이 수십 배씩 차이가 난다. 원자재 수출의 산업구조는 차베스 정권에서도 바뀐 바가 없었다. 산업구조의 기형성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 형태만 국유화한 채로 해외자금에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유지한 탓에 유가폭락에 대안이 없었고, 포퓰리즘이라는 누명(?)을 써가면서까지 이행계획이 부재했던 맹점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초인플레이션으로 국가가 아예 부도나고 말았다. 이는 핑크타이드’, ‘21세기 사회주의의 앞날이 어떠할지 전망하기 위한 척도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실체 없는 선언, 불완전한 혁명이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호된 교훈을 주는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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