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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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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싶다, 혼자서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2005년에 이르러 노동자뉴스제작단 내 구성원의 변화가 좀 있었다. 이미 일 이 년 전에 변화가 시작됐었다. 초기부터 오랫동안 함께 활동한 주요 활동가들이 새로운 일터로 옮겨갔고, 오랜 시간 활동한 친구는 몸이 안 좋아졌다. 몇 년 전부터 젊은 친구들이 새로 들어와 이제 막 주요 제작 역량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제작 역량이 취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그 몇 년간 어느 때보다도 제작을 많이 했다. 새해 벽두에 박일수 열사에 관한 장편 영상을 내놓았고, 공공노동자의 산별 건설에 관한 교육영상을 내놓았고, 무엇보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함께 5분에서 10분짜리 짧은 방송물 10편과 40여 분짜리 장편 조합원 교육물을 상하반기에 걸쳐 2편 완성했다. 투쟁기 1편과 방송물 단편 10, 3편의 장편 교육물을 내부의 손으로만 모두 했으니, 한 해 동안 해낸 분량으로는 대단히 많았다. 제작을 많이 하면 작품 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약해져가는 제작 역량을 새롭게 갖추는 데에도 좋았다. 현실 제작활동은 가장 좋은 학습체험일 수밖에 없으니까. 제작 양이 많아지면 그만큼 매너리즘에 빠질 함정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생긴다. 똑같은 것에 지긋지긋해 하는 것은 제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가장 예민하게 느낀다. <문화, 우리가 아는 몇 가지, 우리가 아는 수십 가지>*는 우리의 이런 자의식 속에서 나온 작업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노동자의 일상

당시 우리는 현대자동차 4만여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의무교육용 장편 영상을 2년에 걸쳐 상·하반기로 4편을 제작했다. <문화>는 그 마지막 4번째 작품이었다. 앞의 교육영상들 3편은 주로 현대자동차노조의 당면 투쟁사업과 관련한 테마였다. 현대자동차의 해외공장 이전 문제나 야간노동 문제도 전부 그 당시 당면 투쟁과제였다. 단위사업장과의 교육영상 제작은 대상과 목적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해서, ‘투쟁전선에 조합원을 세운다라는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는 기차와도 같다. 앞의 제작물 3편은 그런 기차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이런 기차를 보며 당시에도 지적인 활동가나 의식 있는 예술가들의 반응은 극히 냉소적이었다. 그 이유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통찰하게 하지 않고, 상호 소통하지 않고 주입식으로 때려박는다는 것이다. 빈정은 좀 상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여하간 이런 평가와 더불어, 3편을 비슷한 위상의 소재와 비슷한 형식으로 작업했으니 4번째 영상은 조금 다른 내용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소재는 노동자 문화였고, 형식은 해설적 방식이 아니라 조합원 몇 명을 주인공 삼아 그들의 일상을 추적하는 방식이었다. 일터에서의 노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가족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 2명의 노동자를 통해 며칠간 묻어 살다시피 하며 촬영했다. 작품은 크게 3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노동현장에서의 삶이다. 무겁게 짓누르는 공기 속에서, 소외된 채, 장시간 노동을 하다가 일을 마치면 삼산동의 술집과 노래방을 들렀다가 고된 몸을 이끌고 귀가한다. 평상시 집에서의 생활은 다음날의 노동을 위해 먹고 졸거나 잔다. 휴일엔 가족이 장보기를 할 때 카트를 밀거나 짐 나르는 일을 하면서 보낸다. 이런 식으로 일상이 반복된다. 마지막에 영상 속의 주인공들이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물어본다. “소원이 뭐냐?”.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여행하고 싶다. 혼자서.”

 

노동자의 문화는 어때야 할까

마지막 단락에서는 자본주의 문화라는 것이 무언지 간략히 들여다봤다. 돈을 벌지만 그 돈은 도둑맞듯이 써야만 하는 구조이고, 이 구조의 핵심을 경쟁문화로 보고 그것에 대한 문제를 다뤘다. ‘노동자의 문화는 자본주의 문화에 물들어 있지만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어떤 것이지 않을까?’ 혹은 다른 어떤 것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가지고 이 작업을 시작했으나, 작업이 끝나고 지금까지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떤 현실적인 대안들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당시 우리는 좀 덜 일하고, 좀 덜 벌고, 좀 덜 쓰고, 좀 덜 경쟁하는 그런 문화가 만들어질 때, 자본주의 문화가 아닌 어떤 것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다.

 

* <문화, 우리가 아는 몇 가지, 우리가 아는 수십 가지>: 46/20058/현대자동차노동조합-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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