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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유연화·저임금 고착화에 맞설 

공동의 대응을 조직하자

 

선지현충북

 


임금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데 현재 임금체계를 고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견해는 그 자체로는 타당하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논리로 내세우는 직무급제로의 개편 주장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기업별 교섭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직무급 제도를 현실화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백 퍼센트 사기다. 이는 직무급 제도를 실시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볼트를 박는 노동자와 포장을 하는 노동자, 사무를 보는 노동자들에게 직무 가치를 평가해서 임금을 별도로 지급한다는 것은 결국 노무비용을 줄이기 위해 호봉제를 없애버리고 임금유연화를 전면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은 현재의 기업별 교섭구조를 산별교섭 제도로 개선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일부 대공장노조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남는 것은 결국 임금 억제라는 자본의 의도다. 이미 박근혜 정부 시절 자본은 이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저성장 고착화에 따른 자본(특히 재벌)의 이윤 축적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는 구조조정과도 연결되는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가 임금 양극화 운운하며 그럴 듯한 논리를 내세우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얘기다. 그렇기에 현재의 조건에서 대안적 임금체계는 투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재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임금구조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별, 고용형태, 사업장규모, 원·하청만이 아니라 이제는 세대 간 격차로 왜곡된 갈등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저임금 구조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임금유연화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단순히 우리 사업장 임금수준만 고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저임금 구조 무너뜨리기부터 시작하자

노동(조합)운동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는 고임금이 아니라 저임금 문제다. 저임금 구조에 균열을 내고 이를 바꿔내기 위한 정책과 총노동의 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의 고임금 억제프레임에 갇혀 고임금은 내리고, 저임금은 올리는방안을 생각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현대차노동자들이 우리 임금인상 줄일 테니, 부품사와 하청노동자 임금 올려라해도, 부품사로 가면 현대차도 임금 인상 억제했다. 우리는 더 못 준다가 돌아오는 답이다. 최저임금 1만 원 투쟁을 넘어 저임금 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묶어내고, 임금인상 투쟁을 조직할 기획이 더 절실하고 중요하다. 이와 함께 재벌 축적이윤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해 전체 임금 비중을 확대하고, ·하청 불공정 거래 근절과 같이 아웃소싱 착취구조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해냄으로써 독점적인 이윤구조에 대한 사회적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노동조합들이 우리 사업장 임금수준을 지키려는 정책과 투쟁이 아니라 성별, 고용형태, ·하청, 사업장 규모를 넘어서는 공동의 요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예컨대,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월급제를,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임금(최저임금 인상의 형태로 표현될 수밖에 없겠지만), 공공·사무직의 직무급 도입 저지 등을 걸고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는 공동의 요구와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임금유연화·저임금 고착화에 맞선 공동의 대응을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임금 투쟁이 현재와 같이 각자의 사업장 안으로 고립된다면 직무급제라는 이름하에 펼쳐지는 유연화 공세를 막을 수 없다.

 

직업의 귀천을 없애는 임금체계가 필요하다

정부가 제출했던 공공부문의 표준임금체계, 보건의료노조가 노사정 TF에 참여해 만들었던 공공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에 대한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저임금을 받아도 되는 직업을 사실상 제도로 만드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임금체계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임금문제에 대한 올바른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노동시간이다. 여기에 노동강도를 비롯한 작업환경을 고려해 임금체계를 구성한다면 차별해도 되는 일이라는 자본의 통념을 지워내는 시작이 될 것이다. 물론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대안적 임금체계를 고민한다면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해진 파이를 나누는 것으로 가두는 고임금 억제-저임금 상승 논리, 지불능력에 갇힌 논리로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게 되고, 그 희생은 결국 노조 없는 노동자들, 저임금군에 속하는 업종·부문의 노동자들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먼 얘기다라고 얘기할 지도 모르겠다. 맞다. 먼 얘기다. 기업별 임금 결정구조, 산업별,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에 따라 상이한 노동자들의 이해라는 조건에서 단기적으로 단일한 대안적 임금체계와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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