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김용균의 죽음 

전과 후는 달라야 한다

 

이백윤충남

 _BBS8863.jpg

[사진: 민주노총]  


태안화력 고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산안법 개정안 통과, 청와대의 유가족 만남 제안과 거부 과정을 거치면서 얼핏 이 투쟁의 남은 목표가 사라진 것 아니냐는 사회적 인식이 우려되었지만, 여전히 투쟁은 이어지고 있고 언론의 취재, 대중적 관심도 역시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꾸준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힘의 근원은 고인이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했던 생전의 실천에서 비롯되었다. 태안화력 내 1~8호기 발전기를 둘러본 후 내 자식은 죽었지만 다른 이들까지 죽을 수는 없다며 사인규명과 함께 근본적 해결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유가족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김용균의 죽음으로 드러난 발전소 내 실상은 명색이 공기업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열악했고 6~70년대 탄광을 연상케 하는 노동환경이었다. 또한 그 원인이 기업의 비용절감과 이윤추구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이 죽음을 묵과할 수 없다는 대중적 공감대를 불러일으켰고 지금껏 싸워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높은 사회적 관심도와 달리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은 채 한 달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최근에는 태안지역을 중심으로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유가족이 거액에 합의를 했는데 돈 더 받으려고 싸우고 있다”, “촛불집회 때문에 지역 상권이 망해가고 있다”, “·하교길에 서부발전 앞 추모현수막을 본 학생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태안군수까지 나서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경제를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흡사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퍼부어졌던 입에 담지 못할 괴담과 보수언론의 가해 행위가 김용균 동지의 죽음을 둘러싼 투쟁에도 재현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 또한 생기게 된다.

111일 태안화력 사측은 사내 전산망을 통해 의혹에 대한 사실 확인이라는 제목으로 사실관계 14가지에 대해 반박했다. 논란에 대한 해명이라는 포장을 씌웠지만 그 속내는 현장 노동자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하겠다,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팩트싸움으로 변질시키겠다는 의도의 노골적 표출이며 사측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한 달 우리는 어떻게 싸워왔고 앞으로 투쟁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변화의 양상이 복잡다단하게 전개되는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질문과 고민 지점은 이러하다.

 

여론의 관심이 이 투쟁을 이어가는 데 고정불변의 상수일까?

아직 취재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실체적 진실에 근접하려는 노력이 심층취재 형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언론 환경이 불과 몇 년 새 상당히 호전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발전5개사 사장에 대한 임명권이 정부에 있고 정규직화 문제 해결의 키 역시 정부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한 투쟁 대상은 정부이기 때문에 여론의 향배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언론보도와 국민의 높은 관심도는 고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그 자체로 취약한 지반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오히려 한 젊은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이 불러온 분노를 넘어서, ‘죽음의 외주화 중단으로 표현되는 사회적 과제에 대해 투쟁을 통해 제기하고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의제를 던지는 주체가 필요하다. 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 요구를 전면에 걸고 싸움의 중심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국민적 관심도 변화, 발전할 수 있다.

 

일관된 정부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김용균 동지의 죽음에 온 국민이 애도하고 연일 기사화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갖는 압박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핵심 쟁점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 정부는 변화된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그동안 유지해왔던 정책기조 - 3단계로 표현되고 자회사로 귀결되었던 - 를 유지·고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발전사 주도로 전환협의체를 다시 제안하고 있는 상황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규직화 요구의 명확한 상을 제시하고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투쟁계획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대책위는 119일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하였고 이후 고강도 투쟁을 예고하였다. 이 과정에서 요구와 주체의 명확성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진상 규명은 누가 무엇을 규명하는 것일까?

김용균 동지 사망의 직접적 원인에 대해 초기에는 ‘21운영의 문제로 회자되었지만 사실 이는 절반만 맞는 얘기였다. 언제든 사람이 다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컨베이어벨트가 가동되고 있고, 벨트를 받치고 가동하는 회전체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산안법상 규정되어 있는 개구부 덮개와 방호울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더 본질적으로는 이상이 발생한 컨베이어벨트를 조치 후 재가동하기 전까지 가동중단을 시키는 것이 하청업체 노동자가 하기에는 불가능한 분위기와 운영구조 때문이었다. 21조 운영은 매우 중요한 요구이지만 그 자체로 사후처리를 신속하게 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사고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사측은 부랴부랴 21조 운영지침을 하달했지만 조합원들은 작업범위를 그대로 둔 채 21조로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진상조사는 현장의 구체적 현실이 드러나는 과정이어야 하고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작업자들이 조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은 노동자들의 부분적 참여만을 보장했고 이마저도 의견청취 수준에 그쳤다.

그래서 우리는 확인해야 한다. 현 시점은 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책위의 사고조사보고서를 통해 밝혀진 원인을 드러내고 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 태안화력 뿐만 아니라 전체 화력발전소가 동일하게 안고 있는 문제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든지 또 다른 중대재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현장노동자들이 태안을 포함한 전국 화력발전소의 문제를 직접 제기하고 요구를 확대하는 투쟁을 통해 전시성 개선에 들러리가 되라는 정부의 제안을 거부하고 실질적인 현장개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high-3w.png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서부발전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는 346건이었다. 이 가운데 97%가 하청노동자의 재해였고 12명이 사망했다. 3년 동안 28번의 현장개선 요구는 번번이 묵살되었고 거기에는 비용절감이라는 이유가 감춰져 있었다. 김용균 동지의 죽음은 발전소라는 공기업의 운영원리가 이윤과 효율에 있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발전 민영화 이후 공공성의 해체는 발전소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죽음의 일터를 가져다주었다. 발전소가 이윤추구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발전자본의 이익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놓고 선택할 수도 있는 상황을 조성했고, 때로는 서슴없이 스스로의 이익을 챙길 수도 있도록 진화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도쿄전력처럼.

, 이 투쟁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던지는 말들에는 무서운 논리가 숨어있다. 1~8호기 가동 중단 요구에 전력대란을 운운하고, 문재인 정부 탓만은 아니라며 현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언급 이면에는, 강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대항하여 싸우는 어려운 길보다 약자를 탓하거나 약자의 희생과 체념을 요구하는 쉬운 길을 선택하는 패턴이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과감하게 말해야 한다.

김용균의 죽음 전과 후, 우리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