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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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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처음인 것처럼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나는 된장찌개 끓이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 만들 때마다 결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매번 달라져도 항상 맛있으면 괜찮은데,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다. 정말 맛이 없을 때도 많다. 최소한 백번은 넘게 끓여봤는데도 이러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된장찌개를 끓일 때마다 무척 긴장하게 된다. 마치 된장찌개를 처음 끓이는 사람처럼, 두렵기까지 하다.


영상 제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제작의 초반 과정인 기획과 대본 작업을 할 때마다 이런 기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몇십 년간 수백 편을 제작했는데도, 마치 처음 하는 일처럼 어렵다. 매번 바짝 긴장하고, 그 결과를 두려워한다. 2012년 공무원노조와 함께한 2편의 작품, <우리 진짜 노동조합을 하자>와 <나와 1020>을 만들 때는 긴장감과 두려움이 너무 심해서 작업 초반에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2012년 10월 20일로 예고됐던 14만 공무원노조의 총회 투쟁은 매우 중요했다. 이보다 10년 전인 2002년 3월,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추방’을 화두로 내걸고 공무원노조가 출범했다. 노조 설립 직후부터 정부의 탄압은 노골적이었다. 지도부 수배·체포는 물론이고, 조합원 4천 명이 징계를 받았으며 400여 명은 파면·해고당했다. 상황이 이러니 공무원노조는 곧바로 온갖 투쟁에 내몰렸고, 이 투쟁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탄압은 대단했다. 툭하면 용역 깡패를 동원했고, 급기야는 노조 사무실을 폭력적으로 폐쇄하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는 ‘해직공무원과 6급 업무총괄자가 조합원으로 있다’는 이유로 노조설립 신고를 반려했다.


2012년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공무원노조는 해고자 원직복직과 노조 합법성 쟁취에 쐐기를 박고 공무원노동자 노동조건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총력투쟁에 나섰다. 그 방법으로 택한 것이 14만 조합원 총회 투쟁이었고, 이 총회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조합원 교육용 영상을 기획하게 됐다. 공무원노조에 이 총회 투쟁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우리에게 제작을 의뢰한 시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교육 영상은 아무리 빨라도 3개월 전쯤에야 맡기는데, 이때 공무원노조는 무려 6개월 전에 제작을 의뢰했다. 총회 투쟁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영상을 통한 조합원 교육도 처음이었던 공무원노조는 영상에 큰 기대를 걸었다. 교육도 교육이지만, 영상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싶어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우리대로 긴장했다. 마치 큰 잔치에 메인 요리를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기분이랄까. 더군다나 ‘조합원들이 영상을 보고 감동해서 총회 투쟁에 나오게 해 달라’라는 공무원노조의 주문은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이 중압감을 가볍게 하는 게 관건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분산을 택했다. 애초에 1편으로 기획했던 작업을 두 편으로 나눴다. 결국 중요한 건 ‘왜 총회 투쟁을 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일인데, 운반하는 도구를 달리한 것이다. 한편이 노골적이면 다른 한편은 우회적이고, 한편이 역사면 다른 한편은 지금의 삶이고, 한편이 이성에 호소한다면 또 한편은 감정에 호소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같은 시기에 2팀으로 나뉘어 각자 1편씩 맡아 <우리 진짜 노동조합을 시작하자>와 <나와 1020>을 제작했다. 형식에서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하나다. 바로 풍부한 인터뷰 촬영과 생생한 사례 취재였다.


상당히 버거웠던 이 작업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무리를 했다. 광역시별로 한군데씩은 빠지지 않고 공무원노조 지부를 찾아 수십 명의 집행부와 조합원들을 취재했다. 당시 영상 1건에 2팀으로 나뉘어 작업할 만큼 인력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한번 고정된 제작비가 다시 조정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작업의 중압감을 한 방에 보상해줄 좋은 결과물만 얻는다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덤볐다. 진정성이 통했는지 전략이 통했는지, 결과는 괜찮았다. 두 편의 작품이 각자 쓰임새에 따라 활용도가 높았다. 당시 조합원 교육 시간이 단체협약에 없던 공무원노조는 이 영상을 극장이나 문화센터 상영장을 빌려서 조합원과 가족들이 함께 관람하거나, 이 영상을 보기 위해 지부에서 대형 TV를 구입하기도 했다.


마치 처음처럼 긴장과 중압감에 시달리던 우리의 무거운 마음은, 결과가 좋으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그리고 기억상실에 걸린 것처럼 바로 잊는다. 공무원노조와 함께한 이 두 작품은 우리에게 이런 행복한 기억상실을 맛보게 해줬다. 이후 집행부가 바뀌고 다시 공무원노조와 교육 영상을 만들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피하고 싶을 정도로 두렵고 막막했던 출발이 행복한 결말로 끝난, 상당히 강렬한 작업으로 남아있다.




* <우리 진짜 노동조합을 시작하자> / 2012년 8월 / 24분 / 제작 공무원노동조합, 노동자뉴스제작단

* <나와 1020> / 2012년 8월 / 28분 / 제작 공무원노동조합, 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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