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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잃은 노동자들의 

운동장이 되도록”

1,750만이 모이는 그날을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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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히 있던 노조마저 깡패들을 동원해 때려 부수고, 공문 한 장으로 ‘노조 아님’ 통보를 날리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선 노동3권을 박탈하는 나라. 한국에서 노조는 정말 

‘언감생심’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1,750만의 노동자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 강요된 침묵을 깨뜨릴 때, 다수자가 당사자가 될 때, 그 힘은 상상을 넘어설 수 있다. 

‘그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 분노를 모을 수 있다면.’ 

감옥에서 나온 지 1년,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가능성을 권유하고자 한다. 

이제는 “권리찾기 유니온 권유하다” 준비모임 대표로 활동하는 한상균 동지를 <변혁정치>가 만났다.



Q 먼저 “권유하다”가 무엇인지 처음 듣는 독자를 위해, 모임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부탁드린다.


A “권유하다”는 “권리찾기 유니온”이라는 이름에서 앞글자인 “권”과 “유”를 따서 지은 명칭이다. “유니온”은 노동조합을 뜻하는 단어로 쓰고 있는데, 우리는 ‘권리를 찾는 유니온’이다. 현재 준비모임을 가동 중이고, 올 10월 9일에 발기인들이 처음 모이는 자리를 갖는다.


“권유하다”는 노조를 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을 모으고자 한다. 그 노동자들이 맘 편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모여서 스스로 분노도 모으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도 결정하고, 나아가 지역을 중심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더 모으려는 거다. “권유하다”는 그렇게 지금의 불평등한 세상에 맞서는 운동을 지향하는 단체다. 스마트 폰 터치로 희망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온 지 1년여 만에 새로운 사업에 나섰다. 옥중에서부터 고민한 일이고,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도 영향을 끼쳤다고 들었는데. 그중에서 마음을 사로잡았던 메시지가 있다면?


A 처음 감옥에 간 건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옥쇄파업을 끝냈을 때였다. 그때는 많은 동지들이 잇따라 죽어가는 상황이었기에, 다른 것을 돌아볼 수 없었다.


몇 년 후, 예상치 못했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걸고 싸웠고,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감옥에선 일주일에 하루씩 종교 활동 시간을 준다. 저는 독방에 격리돼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 없었는데, 이 시간만은 예외였다. 거기서 젊은 청년들을 만났다. 대부분 노동자 출신이었다. 제가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걸 알다 보니, 자신들이 밖에서 얼마나 절망적인 노동에 내몰렸는지 얘기하더라. ‘당신들이 머리띠 매고 조끼 입고 파업하는 게 너무 부러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못 하는 걸 하는 당신들이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로 보였고, 그래서 때로는 많이 미웠다’고.


이런 말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1년에 수십 번씩 계약 해지를 밥 먹듯 당한다. 하지만 억울하다는 얘기도 못 하고, 그저 소주병 놓고 혼자 신세타령하는 게 전부였다’고. 그래서 ‘당신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철폐, 노동자 권리 얘기하면서 싸우는 걸 보면서도 와 닿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노동운동한다고 했는데, 우리 마음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훨씬 더 크다는 걸 깨달았고 부끄러웠다. ‘직접 그들과 한편이 되려면 뭘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그들이 지금 당장 조끼를 입고 머리띠를 매지 않더라도 분노를 모을 수 있는 경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는 계급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새로운 희망


Q “권유하다”를 알리기 위해 직접 쓴 글에 “계급 없는 노동자들의 계급 전쟁에 나서며”라는 제목을 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계급’이나 ‘계급투쟁’이 ‘낡았다’고 한다. 특히 지금처럼 노동자 사이의 간극이 벌어진 상황을 두고 ‘과연 하나의 계급인지’ 회의를 품기도 한다. 권리 없는 노동자 조직화에 나선 지금, ‘계급’과 ‘계급전쟁’을 제기한 의미는?


A “계급전쟁”이라고 하니까 먼 나라 얘기, 과거의 일처럼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나라 근대사에서 한 번이라도 계급으로 나눠서 싸워본 적이 있는가’라고. 돌아보면 이 나라에서는 늘 남북관계를 상수로 정치적 성향이 갈렸고, 그중에 ‘덜 미운 놈’ ‘차악’을 찍는 데 길들여진 아픈 역사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가령 작년에 국회가 최저임금 삭감법을 통과시켰는데, 제가 알기로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0명 남짓만 반대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본과 보수언론의 요구에 따르는 집단은 국회였다.


저는 분명하게 ‘노동자 편에 서는 계급과 아닌 계급을 구분하는 것이 정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급투쟁”도 아니고 “계급전쟁”이라고 내가 썼는데, 지금처럼 한국 사회가 계급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한 적도 드물 거다. 우리는 지금 가장 뜨거운 계급전쟁 시대에 들어왔다.


물론 보수 정치권과 자본은 노동자의 단결을 무너뜨리기 위해 분할 정책을 쓰면서 노동자계급을 해체하려는 노력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결과 현장에 심각한 불평등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우리조차 자본의 주장에 동조해 계급의 해체를 받아들여선 안 된다. 저들보다 더 절박하게 우리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지금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무엇보다 1,750만 무권리 노동자와 진정으로 한편이 되기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 “계급적 단결”에 왕도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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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권리찾기 유니온 "권유하다" 홈페이지www.unioncraft.kr]



Q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는 오랜 과제였다. 민주노총이 전략 조직화 사업을 벌이기도 하고, 각 지역에서 활동가들이 끊임없이 미조직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권유하다”라는 새로운 틀이 기존에 노동조합에서 전개한 사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A 그동안 전국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벌였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그 동지들이야말로 정말 독립운동 하던 우리 선열만큼이나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다. “권유하다”가 하려는 것은 그 동지들과 다른 무엇이 아니다. 저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신념 하나로 그 일을 이어가시는 헌신적인 모든 활동가 동지들에게 뭔가 조금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어쩌면 전부일 거다.


이따금 ‘“권유하다”의 길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당사자 운동으로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 노동자의 근육을 키우는 헬스장’이라고.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감을 찾는 길은 무엇일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가 강해질 수 있겠다, 당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다’고 기대할 수 있다. “권유하다”는 그들이 모여서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운동장이 되고 싶다. 뛰어놀다 보면 강해질 거라 믿는다. 지금 당장은 각자의 이름을 드러내기 어려우니 익명으로, 편한 시간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 권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그 속에서 ‘나와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우리가 함께 나선다면 한 번 해볼 만하겠다’라는 생각을 발효시켜주고 싶다.



“이게 나라냐”에서,

“우리가 나라다”라고 외칠 수 있는 공간


Q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온라인에서 모여 목소리를 내는 사례들이 있다. 예컨대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오픈채팅방 “하청다함께”의 경우, 그간 얼굴을 드러내고 노조활동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하청 노동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발판이 됐다.

현재 “권유하다”는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 누구나 모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유니온 크래프트”를 준비 중이다. 앞서 거론한 사례가 대규모 사업장이라 그대로 대비시킬 수는 없지만, “유니온 크래프트”를 구상하면서 이런 사례가 주는 의미나 과제가 있다면?


A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미조직 노동자들이 마음의 문턱만 넘는다면 현장을 바꿔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가령 조선소에 있는 수천수만의 동지들이 마음먹고 하나가 된다면, 조선소의 주인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의 문턱을 넘어도, 노동조합으로 자기 삶을 바꿔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아주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개별 노사관계로는 변화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착취구조의 고착화가 만들어낸 거다.


그런 점에서 저희가 만들려는 플랫폼은 좀 다를 수 있다. 가령, 제가 질문 하나 하겠다. 궁금한 게 생기면 어디에 물어보시나? 네이버, 다음, 구글에서 찾아본다. 새로 만들 플랫폼은 1,750만 무권리 노동자들에게 그런 장이 됐으면 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자신의 고통을 상담하면서 해결 방법까지 찾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더 나가보자면, 우리는 촛불 항쟁에서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이제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라다”라고 외쳐야 한다. 우리 플랫폼이 바로 그렇게 외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현재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560만 명인데 이들은 노동3권을 박탈당한다. 그들의 불이익이 이 나라에서는 ‘합법’인 기막힌 상황이다. 그런데 그 당사자 560만 명에다 우리 민주노총 조합원 100만을 합하면 660만 명이고, 그 가족까지 더하면 숫자는 훨씬 불어난다. 그들이 함께 외친다면, 정치적으로 ‘요구’를 넘는 아주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우리 플랫폼은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장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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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워지기도 한다. 노동자 내부의 심각한 분열을 극복하려면, 불안정 노동자의 힘을 모으는 데 정규직도 직접 나서야 할 때 아닐까 한다. 완성차 공장 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했던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A 제가 10년 반 만에 내년 1월 1일부로 복직한다. 복직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민주노조 복원은 당연한 당면 과제다. 또한, 결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바로 우리 공장 안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문제다. 복직하면 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다. 쌍용차도 하청업체, 부품사 등으로 이어지는 착취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부품사 노조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을 때가 됐다.


이번에 현장을 순회하면서 느낀 게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이 회사 정규직 노동자는 500명이다. 그런데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그 인원이 기존 정규직의 3배에 달한다.


이제 민주노조로 뭉친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텐데, 당연히 사측과 정면충돌할 거다. 바로 그때, 500명의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그 결과에 따라 대단한 충격이 될 수도 있고, 희망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 문제를 결과가 드러난 이후에야 평가하는 것은 의미 없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자본이 갈라놓은 노동자들을 하나로, 계급으로 묶는 우리 자신의 실천, 그게 바로 2019년 지금 민주노조운동의 소명 아닐까. 그 결과를 어떻게 축적하느냐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도 달라질 것이다.



Q 마지막으로 <변혁정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이 나라 역사를 돌아보면 저항의 DNA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이 굳어진 사회에 살고 있다. 그 분노의 DNA를 발동할 때가 가까이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100만 민주노총이 한국 노동자계급을 대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지역에서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는 활동가 동지들이 신념을 갖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전히 무권리 노동자의 수는 늘어가고, 플랫폼 노동자는 앞으로 100만, 200만까지 증가한다고 한다. 이들의 분노를 모으는 것은 더 미룰 수 없는 노동운동의 숙명이다.


“권유하다”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운동장이다. 권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그 운동장에서 단련하고 근육을 기르는 과정에 조직 노동자들이, 활동가 동지들이, 노동자 정치에 뛰어든 많은 동지들이 지지자와 안내자가 된다면 그 힘은 상상 이상으로 커질 거라 믿는다.


저 역시 그동안 받았던 분에 넘치는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권리찾기 유니온”이라는 단체가 희망을 만들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10월 9일 발기인대회가 있으니 많은 분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을 동지들과 계급적 단결을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 모두에게, 권리 없는 노동자들과 함께 한국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동참해주실 것을 “권유”하며 동지애를 전합니다.



■ 인터뷰 = 이주용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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