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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린 입이라고 말해본 

민주노총 선거

_청년들의 앞북치기


<입만 열면 청년>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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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형: 이제 민주노총 직선 3기 집행부 선거를 하고 있는데, 지난 3년 청년활동가로서 바라본 민주노총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인하: 저는 조합원 생활을 2기 집행부부터 경험해서 이전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현장에서 민주노총의 존재감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예전의 최저임금 투쟁같이 민주노총이 의제를 가지고 사회적 투쟁을 하는 게 없어서 학교 현장에서 할 얘기가 없었어요. 오히려 올해 사회적 합의 관련한 파국이 역설적으로 조합 내 논의를 활성화시킨 것 같아요.


길남: 현장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건 민주노총의 사업이 집행부와 간부 중심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국노동자대회나 여러 사회적 의제에 민주노총이 목소리를 낼 때 아래로부터 투쟁을 만들기보다 떠밀리듯 나서는 태도였던 것 같아요.


지완: 제가 운동을 시작한 시기가 2016~17년 정도니까, 박근혜 퇴진 정국에서 민주노총을 처음 알게 된 거죠. 그때는 투쟁을 지도하는 사회적 영향력이 있어서 엄청 크고 결집력 있는 단체라고 느꼈어요. 의제도 ‘대선을 갈아엎자’는 걸 보고 멋있게 생각하고 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퇴진 정국 이후에는 별 기억이 없어요. 그만큼 한 게 없는 것 같고…. 직선 2기 집행부와 관련된 장면 중에 그나마 기억나는 건 기업가랑 한국노총 위원장과 같이 만찬을 즐기는 사진인데요. 그 사진이 상당히 상징적인 것 같아요. ‘저기서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누구를 대변하겠다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에겐 사회적 합의주의를 학습하기 딱 좋은 예시였어요(웃음).



근형: 새로운 집행부가 중점을 둬야 할 사업이나 가치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길남: 대학원생노조 조합원으로서 입법투쟁의 목표가 대학원생(조교)의 노동자성, 그리고 산업재해를 인정하라는 것인데요. 대학원생노조가 공공운수노조 소속이긴 하지만, 민주노총 내에서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에 대한 인식이 미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에 대한 인식이 좀 더 확산됐으면 해요. 나아가 5인 미만 사업장이나 플랫폼 노동 등 노동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하: 현장에서 느낀 걸 중심으로 말씀드리면, 민주노총이 의제를 제기하고 전선을 형성하면 그게 현장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교사의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려고 일반 노조법이 아닌 교원노조법이 따로 존재하는데, 전교조 내에서 그 폐기를 주장하는 쪽과 ‘고쳐 쓰자’고 주장하는 쪽이 부딪힌 일이 있었어요. 당시에 저희가 ‘고쳐 쓰자’는 주장에 반대하면서 ‘노동개악 저지가 민주노총 방침이고 전교조도 사업 계획에서 그 투쟁에 동참하겠다고 하면서, 어떻게 고쳐 쓰자는 정부 입법안에 동의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는데, 그게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단이 됐어요. 민주노총 차원에서 정권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고 투쟁을 조직해나가는 게 실제 현장에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죠.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저희 학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직 노조에 가입을 많이 안 했어요. 그래서 조합 가입을 권유하고 싶은데, 접점이 많지 않다 보니 뜬금없이 노조 가입을 권유하면 이상하잖아요(웃음). 그러던 중에 민주노총이 전태일 3법 투쟁하면서 전태일 50주기와 관련한 홍보를 계속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전태일 평전>을 같이 읽고 소감 나누면서 학교 얘기도 하는 모임을 다음 주에 하기로 했어요. 이처럼 민주노총이 현장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투쟁을 계속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완: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고요(웃음). 요새 대학생들은 (운동에) 관심이 크지 않아요.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 학생들이 민주노총에 관심 갖는지 생각해보면, 노동 의제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인 투쟁을 할 때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던 노조랑은 다르네. 경제적인 투쟁만 하는 게 아니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건 적극적으로 투쟁을 넓히는 과정에서만 가능하기에,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닌 확장되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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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형: 이번 선거에 민주노총 25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위원장 후보가 등장했습니다. 여성 후보의 등장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일단 전례가 없었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고요. 이 조직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굉장히 단편적인 예시죠. 페미니즘 운동을 민주노총과 같이하면 ‘왜 민주노총이랑 같이해? 거기 남성중심적이잖아?’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거기에 반박할 수 있는 대답이 과거에 어떻게 투쟁에 연대해왔는지 정도인 거예요. 위원장이 여성인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 의제에 적극적으로 먼저 나선 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이영주 동지가 당선된다고 그게 페미니즘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여성이 위원장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거기서부터 시작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사회적 소수자의 당사자성이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고요. 또 한편으로는 형식적 평등이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했듯이 이게 말이 되나 싶어서요(웃음). 이제는 페미니즘 집회나 3.8 여성의 날 집회에서 ‘민주노총 국장 누구’가 아니라, 위원장 동지가 오셨으면 좋겠어요.


길남: 이영주 동지 본인은 ‘여성 후보’라는 것보다 민주노총의 투쟁성과 변혁성을 더 강조하시는 것 같은 인터뷰를 많이 본 것 같아요. 저는 여성위원회가 실질적 성평등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성폭력 대책 기구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요. 이런 부분을 잘 해결해서 민주노총 최초의 여성 위원장으로서 실질적 성평등을 만들어나가는 계기를 열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하: 노동조합의 남성중심성을 현실적으로 느꼈던 적이 있는데요. 과거에 저희 지회에서 2030 조합원 모임을 하려고 스무 명 정도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그중 서너 명 빼고는 여성 조합원이었어요. 그런데 다들 ‘아이 때문에 학교 끝나고 모임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육아휴직을 하시는 분도 꽤 계셨고요. 그 나이대에 남성 조합원들은 분명 아이가 있는데도 그런 말씀을 안 하세요. 뭔가 현재의 가부장적 문화가 여성 조합원들의 활동을 가로막는 구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여성 의제나 페미니즘 사업을 해나가는 게 중요한데, 개별 조합원의 활동과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여담인데, 이영주 선생님을 그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에 따르면, 페미니즘 관점에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근형: 한편 2030 세대가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현실입니다. 민주노총이 청년들의 선택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인하: 전교조도 지금 선거 중인데, 다들 ‘2030 조합원들이 이런 걸 원하니, 이런 걸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사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내가 만나본 2030 조합원은 이렇더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건데 저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고요(웃음). 정말 2030 조합원이 모두 고민하는 사회적 담론이 뭘까 생각해보면, 저는 ‘페미니즘’과 ‘공정’ 같아요. 페미니즘 관련해선 앞서 말씀해주셨듯 민주노총이 진짜로 페미니즘적 조직이 되는 길밖에 없을 것이고, 공정과 관련해서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부딪히는 부분이에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관계가 전교조 안에서도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데, 결국 그 근원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 같아요. 전교조 선거에서도 공정성 담론에 대해 돌파하려 하지 않고 묻어가려는 것 같아요. ‘조합원의 요구인데 무시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요. 저는 2030 조합원들이 공정성 담론에 영향을 많이 받더라도, 꼭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정성에 기인한 요구들은 더 커질 테니, 앞으로 민주노총의 청년 사업이 이 부분을 돌파하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완: 제 주변의 2030은 대학을 다니거나 일을 하는 두 부류인데요. 일하는 친구들은 돌봄 노동 중심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 친구들은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재생산 노동에 빨려 들어가면서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지만, 선택지에 민주노총은 없어요. 왜 그런지 보면 일단은 조합을 만들기 힘들고, 열심히는 싸우는데 바뀌는 모습이 별로 없어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기존 의회정치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고요. 그러지 않으려면 민주노총이 진짜 되는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청년들이 포진한 비정규운동에 실질적 성과를 거두며 민주노총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운동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길남: 그동안 민주노총이 청년 세대와 2030 조합원에 공감하는 태도가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요. 사실 민주노총은 투쟁적 성격의 조직이니 여러 의제와 요구를 제기하지만, 과연 얼만큼 청년의 목소리와 상호작용해서 표출되는지 아직까지 조금 의문이에요.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민주노총이 2030의 편이 될 수 있다고 확실히 자리매김하면 좋겠네요.



근형: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 나눈 소감 부탁드립니다.


인하: 처음으로 선거 과정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건데, 확실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전교조 활동은 일상적으로 고민하게 되는데, 민주노총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고민해보게 되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길남: 선거라는 계기가 민주노총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최근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배제 없는 노동에 대해 후보자들의 답변을 요구했는데, 그에 대한 답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완: 이번엔 꼭 여성 위원장이 나왔으면 해요(웃음). 직접적인 영향력이 없는 비조합원인 제가 무슨 말을 할까도 싶었지만, 사실 민주노총의 운동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잖아요. 김명환 집행부 3년 동안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웃음) 나중엔 정말로 민주노총이 긍정적 영향력을 여러 운동단위에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근형: 제가 생각해도 정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제가 새내기였던 때가 직선 1기 첫해인 2015년이었어요. 그때 연초부터 11월 민중총궐기 달려가자고 준비하면서 기운이 많이 올라왔었는데, 2018~19년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확실히 어떻게 투쟁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이 달라지고, 그래서 계속 관심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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