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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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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노동법개정투쟁

노동법 개정은 노동자의 힘으로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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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 후 연세대에서 여의도로 행진하는 노동자들.



1988년에도 877, 8, 9 노동자대투쟁의 흐름이 계속되어 민주노조가 만들어지고 임금인상 투쟁이 활발했다. 특히 중소영세사업장 노조들은 자본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으로 뭉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연대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음을 알았다. 옆 사업장에 방문을 와 투쟁 지지 발언을 하거나 같이 투쟁하다가 잡혀가면 3자 개입금지조항 위반으로 구속이었다. 우리 사업장에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준비를 해 서류를 들고 가면 이미 노조가 설립되어 있어 복수노조금지조항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노동법이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가로막고 있음을 투쟁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노동자의 힘으로 악법을 개정하겠다는 움직임이 1988년 조직적으로 일었다.

 

대중투쟁의 힘으로 노동법 개정을 강제하다

1988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고 노동자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5월에, 현대엔진노조 탄압 저지 투쟁을 위해 모였던 노조탄압저지 전국노동자공동대책협의회(이하 공대협)(이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로 개편) 주도로 노동법 개정투쟁을 시작했고 63일 결성된 노동법개정 전국노동조합 특별위원회(이하 노조특위)가 서노협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노동법개정 공청회를 개최하여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729일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야3당 합동공청회가 열렸는데 여기서 만들어진 노동법 시안에는 한국노총이나 정부의 의견보다는 공대협의 요구가 반영되었다. 공대협과 노조특위는 시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전국의 노동자를 노동법개정으로 묶어세웠다. 두 조직은 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를 조직하고 109일 북한산(수도권), 화왕산(영남권), 대둔산(호남권)에서 노동법개정을 위한 등반대회를 개최했다. 여기에 1만여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이어 1113일에는 연세대에서 5만여 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및 노동악법 개정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노동자들은 피로 쓴 노동해방현수막을 앞세우고 악법철폐!”, “노동해방!”을 외치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했다. 이후 선봉대가 민주당 점거 농성을 벌여 결국 12월 정기국회에서 노동법을 개정토록 하겠다는 민주당의 약속을 받아냈다.

1988년 노동법개정투쟁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선 조직적 측면에서 전국의 노동자들이 한 곳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낸 투쟁을 만들어냈고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난 후 지역업종별노동조합전국회의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회의는 이후 전노협 건설로 매진한다. 다음, 비록 노태우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야당을 노동자의 힘으로 강제해 19893월 임시국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노동법 개정을 정당 간 협상이나 국회 논의에 맡겨두지 않고 대중투쟁으로 강제한 결과였다.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시작된 노동법개정투쟁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노동자들이 노동법개정투쟁을 시작한 것은 19877, 8, 9월이었다. 조선방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계기로 1953년에 만들어진 노동법은 이후 1963년 박정희에 의해 국가재건 최고회의에서, 1973년 유신 아래 비상국무회의에서, 1980년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입법회의에서 개정되었다. 국회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개정된 게 아니었다. 노동법은 자본과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해 개정했음을 알 수 있다. 19871128일 노동법 개정이 있었지만 이는 노동자의 요구를 전면 반영한 것이 아니라 1980년에 개악한 조항의 일부를 유신 이전으로 되돌린 수준이었다. 이때의 개정이 미봉책에 그쳤지만 자본과 정권은 이 있으되 이를 무시하고 투쟁한 노동자들에게 화들짝 놀랐다. 노동자대투쟁 기간 일어난 3천여 건이 넘는 파업투쟁 중 법에서 요구하는 절차를 밟은 쟁의는 없었다. 노동자들 머릿속에 노동법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과 정권이 휴지로 만든 법을 노동자들이 지킬 이유가 없었다.

1988년 이후 조직적으로 노동법개정투쟁을 전개하면서도 노동자들은 최우선으로 악법을 어기는 투쟁을 배치했다. 공권력이 법 조항을 들어 불법 운운하며 감옥에 잡아넣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악법을 어기는 대중투쟁이 전개되었다. 노동법을 둘러싼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그들이 만든 틀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정당이나 국회에 기대지 않고 노동법 개정 강연회, 배지 달기, 노래판굿 순회공연 등 대중들의 결집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법개정투쟁을 이어갔다. 그 조직적 결과가 민주노총이었고 그 투쟁의 경험이 96~97노동법개정투쟁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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