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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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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

그 계승과 발전을 위하여

 

백종성정책선전위원장


 

877·8·9 대투쟁 이후 노동자는 더 이상 땀과 고통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노동계급은 더 이상 종교인과 지식인, 온정적 부르주아의 자선에 의해 보호되어야할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존재로 자신을 드러냈다.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그 가능성을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 현실로 드러낸 것이다. 한 세대가 흐른 지금, 노동자 대투쟁을 돌아본다는 것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투쟁이라는 역사를 들추는 이유가 신화적 과거에 비루한 현재를 대비하고자 함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관념적 신화로서가 아니라 물질적 역사로서의 대투쟁과 그 이후를 직시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야성은 유아기의 열병일 뿐이었나?

전투적 노조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민주의자들은 87년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 급진화의 원인을, 노동운동이 자기 이해를 실현할 정치·사회적 경로의 부재에서 찾는다. 노동계급에게 산별노조와 진보정당 등 제도적 장치가 없었기에 격렬한 계급투쟁이 벌어졌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산별노조 부재의 결과 기업별 노조에서의 갈등은 과도하게 드러나게 되며, 제도정당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자신의 이해를 실현하지 못한 결과, 미시적 기업 쟁점을 둘러싼 갈등의 과잉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잘해야 지엽적 쟁점을 매개로 한 경제투쟁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사민주의자들에게 민주노조운동의 야성은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의 안착에 따라 사라질 유아기의 열병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계급투쟁은 조율되어야 할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기에 계급정치는 조합적 이해를 제도 안에서 국가·자본과 조율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계급은 계급투쟁 도상에서 스스로를 해방할 주체가 아니라, 처우개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민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라는 이념을 목적론적이라 비판하고, 민주노조운동이 형성한 전투적 노조주의를 경제주의라 비판한다. 자기해방의 이념은 물론, 자본에 대한 전투성, 총회 민주주의와 아래로부터의 지도부 통제 등 민주노조가 구현한 전통 역시 도매금으로 버려진다.

그러나 계급타협의 경험은커녕 군사독재에서 신자유주의로 이행한 이 땅에서, 사민당-산별노조를 축으로 한 서구 노사관계를 도달해야 할 이상으로 설정한 연후, 한국 노동운동을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관념이다. 또한, ‘정치를 이해관계의 제도적 조율과정으로 협소화하는 것은 자기해방과정으로서의 계급투쟁, 그 잠재력을 보지 못하는 천박함일 뿐이다. 사민주의자들에게 계급정치는 이해의 제도적 조율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제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 정당과의 연대, 그 과정을 통한 사민주의 정치의 자기해체가 그 귀결이다.

 

더욱 넓은 연대성, 더욱 강한 투쟁성이 필요했을 따름이다

독일식 산별노조의 부재등으로 민주노조 운동의 한계를 평하는 것은 그야말로 피상적이다. 노동계급 자기해방이라는 이념, 지역 연대의 성과를 모아 이룬 지노협 건설과 그에 이은 전노협 건설 등을 볼 때, 민주노조운동의 지향은 협소한 기업별 경제주의라 평할만한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극심한 반공주의와 법적 제약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대투쟁 다음해인 88, 그리고 89년 전국 민주노조운동의 중심 의제가 복수노조금지 철폐, 3자개입금지 철폐 등 국가를 상대로 한 노동악법철폐투쟁이었다는 것, 90년 출범한 전노협이 출범 직후인 4월말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에 연대파업을 벌여냈다는 점에서도 이는 명확하다.

87년을 거친 자본은 진화한다. 전문적 인사관리 부서가 설치된 기점은 87년이다. 자본은 노무관리 강화는 물론 가족이데올로기 등 문화적 공세를 펼쳤고, 투쟁의 급진화를 제어하기 위해 각종 수당, 임대주택, 장학금 등 기업 복지제도를 강화했다. 재벌독점적 경제구조 안에서 자본 간 지불능력의 격차는 컸다. 198630인 이하 사업장과 5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격차가 9%에 불과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미미했던 임금격차는 자본의 지불능력에 따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져간다. 또한, 국가는 전노협을 노동계급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혹독한 물리적 탄압은 물론 좌경용공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한다.

이런 점에서 87년 이후 민주노조 운동에 필요했던 것은, 제도적 실용주의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필요했던 것은 대중운동이 드러낸 노동해방 정치를 질적으로 강화할 사회주의 정치와의 화학적 결합과정이었다. , 더욱 깊은 연대성, 더욱 강한 투쟁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는 거대하게 성장한 대중운동을 따라잡지 못한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한계를, 또한 이념과 대중운동의 결합에 매진하기보다 보수야당과의 동맹과 상층 인민전선체 구축에 집중했던 당시 운동노선의 오류를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20161027, 노동부가 발표한 300인 이상 사업장 노조조직률은 62.9%, 100300인 미만 사업장 조직률은 12.3%, 30100인 미만 사업장 조직률은 2.7%, 30인 이하 사업장 조직률은 0.1%일 따름이다. 미조직 대중의 폭발적 결사는 결코 쉽지 않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노동자운동의 구심이 존재하는 지금, 문제는 조직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의 만남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에 있다. 이에 대한 목적의식적 실천을 주도하는 것, 그것이 정치운동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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