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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사관계를 뿌리째 뒤엎을

극단적인 노동법 개악

 

정용경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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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그가 공약했던 친기업, 친시장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파리를 비롯한 도시 곳곳에서 밤샘시위를 벌였다.


426일 엠마누엘 마크롱이 아미엥 지역의 월풀 공장을 방문했을 때,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은 마크롱은 프랑스 회사 사장들에게 신이 내린 선물입니다!”라고 목소리 높여 외쳤다. 기자와 경찰이 북적이는 현장에서 우리도 책 읽을 줄 압니다!”라는 구호도 간간히 들렸다. 마크롱이 평소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게으르고, 더럽고, 문맹률이 높아서 문화적으로는 야만인에 가깝다라는 등 줄기차게 망언을 이어온 것에 대한 거센 항의의 표시였다.
이처럼 공장 노동자와 악수한 뒤에는 꼭 손을 씻는다라고 농담하던 엠마누엘 마크롱이 프랑스 제5공화국의 8대 대통령이 되었다. 마크롱 정부가 야심차게 내보인 노동법 개정은 사실상 노동법 개악으로, 마크롱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유연화 정책의 큰 그림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서 사실상 기업들이 쉬운 해고를 가능케 하는 노동법 개악은, 마크롱이 올랑드 정부에서 재직하던 시절 적극적으로 입법 추진했던 엘 코무리 법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올랑드의 임기 내내 코무리 법에 저항하던 수천명의 프랑스 국민들은 마크롱이 당선된 날 밤에도 저항의 투지를 내비치며 밤샘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법이라는 특수행정명령으로 개악을 강행하다
마크롱 정권은 3개월 내로 노동법을 통째로 뒤집을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번 노동법 개정안의 주요 목적은 세 가지라고 명시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는 노동 시장 개혁이다. 회사법의 위계서열을 뒤집음으로써 기업 간의 협상에 우선순위를 두고, 퇴직금에 상한선을 두며, 한 회사 소속 노동자들을 대표해 협상할 수 있는 대상의 일원화를 법적으로 명시해 노사 협상 과정을 단순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둘째, 회사 측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회사가 법적으로 지불해야 할 의무를 지니는 퇴직금이나 해고수당에도 상한선이 생겼다. 셋째, 회사에서 부담하는 일터 교육의 비용이나 기존 법에서 보장하던 일터 필수 교육과정들을 대폭 축소, 국가 지원금이나 프로그램도 줄어들게 되었다. 여기에는 노동자의 생명권과 직결된 안전교육도 포함된다.

이처럼 마크롱은 노동조합들에게 등을 돌릴 각오를 하고 노동법 개악을 본격화하는 중이다. 국회도 이미 비준을 마쳤다. 이번 법안은 마크롱이 특별히 총대를 메고 나서서 대통령법, 즉 행정명령으로 (par ordonnance) 진행하겠다는 구상인데, 노동조합에는 형식적으로 3개월의 이의제기 기간이 주어질 뿐이다.


기업에게 우선권을, 노동자보다 사장을, 모회사보다 자회사를

마크롱은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업에게 우선권을 주고, 회사법의 위계를 뒤집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조건이 다양한 법과 규정에 의해 정해지는 바, 구체적인 회사법의 위계서열이 정해져 있다. 회사법의 위계를 뒤집는 것이 마크롱의 계획이다. 원래는 헌법 아래에 법이 있고, 법에는 노동법과 회사법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노동시간, 최저임금, 남녀의 직업적 평등 등에 대한 내용이 정해져 있다. 그 아래에 세부조항이 있는데, 기업들을 산업별로 분류해서 산업별 공동서약에 참여시킬 수 있는 등의 규정들이 있다. 이를 통해서는 기업마다, 산업별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자의적으로 노동시간이나 임금기준을 별도로 책정할 수 있다.
산업별 법규들 아래에는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책정하는 규정이 있다. 여기서부터 마크롱은 회사들이 경쟁력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상위법들로부터 자유롭게규정을 책정할 수 있도록 풀어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코무리 법은 이미 이 위계서열을 노동시간의 측면에서 뒤집었다. 노동법에만 저촉되지 않는다면 일개 기업 또는 자회사의 내부규정이, 그 기업 또는 자회사가 속한 산업체 혹은 모회사의 규정보다 낮은 임금을 책정할 수 있도록 풀어준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노동조건이 법적으로 유효하려면 과거에는 노동자들의 50%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사측과 협상을 진행해야 했던 데 반해, 마크롱의 코무리 법은 노동조합과 기업의 협의체(un référendum)에서 결정한 내용을 회사에서 번복할 수 있게 했다.
이번 마크롱-필립 정부에서 내건 노동법 개정안은 법적으로 보장된 최대 노동시간인 주 35시간을 넘어 기업이 유연하게업무를 늘릴 수 있도록 기업의 편을 들고 있다. 행정의 측면에서는 기업이 의도치 않은 행정적 실수를 범했을 경우 처음부터 제재를 가하지 않겠다며, “실수할 권리(son droit à l'erreur)를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결정적으로, 마크롱은 해고노동자에게 지불하는 해고수당에도 상한선을 둠으로서 고용과 이직을 원활히 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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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파리에서 있었던 '코무리법' 반대 시위.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들어라

프랑스 민간부문 대표 노동조합 CFDT 사무총장 로랑 베르거는 코무리 법이 통과되었을 당시에도 퇴직금에 상한선을 둔 조항의 즉각 취소를 요구한 바 있다. CFDT, CFE-CGC, CGT, FSU, Solidaires-SUD, l'UNSA, UNEF, UNL. FIDL 등 프랑스의 9개 조합들이 이미 2014~2016년 사이 수차례 성명을 내기도 했다.*
코무리 법에 반대한 대표적인 노동조합 CGT의 위원장 필립 마르티네즈는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법 제정의 조건인 우선순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번 노동법 개정의 절차가 정당하지 않다고 문제제기하고 있다. 또한 이번 노동법 개악은 실업, 실직, 부당해고자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않는다며, 마크롱 정부가 노동조합들과의 대화에 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소통 부재 마크롱, 노동 탄압의 대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노동자와 사측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회사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신자유주의적이고 불완전한 지향이다. 프랑스 공산주의당 의원 엘사 포시용은 이런 마크롱의 신자유주의적, 긴축재정 지향적,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지적하면서, “프랑스 좌파가 단결하여 마크롱이 무너뜨리려는 노동권익을 사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프랑스의 좌파가 노동계급뿐 아니라 빈민, 소수자, 여성, 이주민 등 폭넓은 층위의 사회적 연대와 포용을 지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러하고 있고, 마크롱은 우리를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말에, 소통 부재 마크롱이 치르게 될 노동 탄압의 대가를 조심스레 전망하게 된다.

 

* 2016.02.23. “Droit du travail : neuf syndicats réclament le retrait du plafonnement des indemnités prud’homales” (노동법: 9개 노조가 기업친화적 해고조항에 반대하다) : 기업에서 2년 이하 일했을 경우, 노동자는 심각한 해고 사유가 있을 경우 3개월 미만의 월급만을 지급받게 된다. 2년에서 5년 사이 일했을 경우 6개월 미만의 월급. 5-10년의 경우 9개월의 월급. 10-20년이면 12개월. 20년 이상 일했을 시 5개월치의 월급을 해고수당으로 지급받는다. 그러나 회사가 해고 과정에서 차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사를 했을 경우 별도의 재판을 통해서만 추가적인 해고수당을 받을 수 있게끔 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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