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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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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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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도사 격이었던 IMF는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97년 외환위기를 빌미로 IMF가 한국정부에 요구했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했는데, 노동부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국가영역의 축소시장영역의 확대로 집약되는 신자유주의의 급속한 팽창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유연화 공세로 이어진 것이다. 정리해고의 양산으로 인한 실업 증대, 외주화-민영화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의 확산, 임금체계 개편과 맞물린 실질임금의 저하 등이 대표적이다.

 

IMF체제와 함께 물밀 듯 밀려온 노동개악 공세

IMF체제 이전, 일찍이 1990년대부터 정부가 주도했던 노동유연화 공세는 김영삼 정권에서 이른바 신경영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조직적, 의식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조직노동자운동에 대한 총자본 수준의 통제, 관리 필요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신경영전략의 핵심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하여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자본의 지배력 강화를 꾀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자본은 생산과정의 유연화(자동화와 다기능화), 고용의 유연화(비정규직의 확대), 임금의 유연화(성과급제와 연봉제), 노동시간의 유연화(변형근로시간제와 파트타임제) 등을 추진하게 된다. 그런데, 단위사업장에 대한 국가권력의 직접적인 통제 방식이 더 이상 과거처럼 자유롭지 않았기에, 정권은 기업의 자율적 통제 기능에 권한을 집중하기 위한 시스템 정비에 나섰다. 199612월에 정리해고 법제화를 주 내용으로 한 노동법 날치기 시도는 노동유연화를 강행하고자 하는 정권과 자본의 열망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 조직노동자운동은 96,97총파업으로 노동법 개악 시도를 일차 저지했지만, 이후 IMF체제에서 국가와 자본의 경제 재도약기업 경쟁력 회복논리에 종속되면서 정리해고제 도입을 끝내 막아내지 못한다.

이 시기 경제위기 국면과 맞물려 출범한 김대중 정권은 노동유연화 공세를 더욱 강력히 추진했다.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2년 유예키로 했던 정리해고제의 즉각 시행은 물론, 파견근로제까지 도입했다. 이같은 조치는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가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데 기여했다. 그로 인해, 1998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정리해고·명예퇴직·아웃소싱 등의 구조조정이 급속하게 확산하게 된다. 당시 외환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된 ‘4대 부문 구조개혁(기업·금융·공공·노동) 역시 부실 기업 퇴출과 방만 경영 쇄신 등을 구실 삼아 인적·물적 구조조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경제위기 직전인 1996년과 비교해 정리해고제가 안착화 된 2000년 들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규모가 역전되었다. 또한 포항제철(현 포스코), 한국통신(KT) 8개 공기업이 민영화된 것도 이 시기였다.

 

노동기본권 유예와 유연안정성 모델로의 귀착

이어 노무현 정권은 20039월 발표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노사관계로드맵)을 통해 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 확보한 노동유연화의 제도적 근간을 발판 삼아 조직노동자운동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노사관계로드맵은 필수공익사업장의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내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해고절차 간소화, 부당해고 판정 시 금전보상 허용 등 노동3권을 제약, 훼손하는 내용을 대폭 담았다. 노사관계로드맵은 중장기 과제로 해고요건 합리화와 관련해 변경해고제도 도입을 제시했는데, 이는 자본이 노동조건의 변동을 제시하고 노동자가 이를 거부하면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제도였다. 박근혜 정권에서 행정지침으로 마련했던 저성과자 해고제와 일맥상통하는, 사실상의 쉬운 해고절차다. 2006년에는 비정규직 확산 법안인 파견제 및 기간제 관련 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뒤이어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취임 일성으로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며 노동유연화, 노동배제 정책을 더욱 노골화했다. 기간제법의 기간 연장 추진, 파견업무의 기간 연장 및 대상업무 확대, 해고요건 완화, 고용서비스 업무 규제 완화, 공공부문 퇴출제와 상시 구조조정 체제 도입 등 고용경직성을 더욱 완화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을 연달아 제시했다. 물론 이들 정책들은 조직노동자운동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일부 시행에 그쳤지만,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정목표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됐다. 박근혜 정권 역시 이전 정권들과 마찬가지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폈다.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으로 요약되는 박근혜 노동개악도 IMF 경제위기 전후로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노동유연화 정책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

IMF 경제위기 20년째를 맞는 지금, 문재인 정권 출범이 7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20년간 역대 정부의 일관된 정책기조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을 위한 노동유연화였다. 그리고,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는 체제 모순에 대한 지배자들의 처방 역시 한결 같았다. 하향평준화를 통한 노동시장 내부 격차의 해소가 그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권이 일자리 모델의 새로운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결국,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유연성(하향평준화된 임금체계 도입)과 기능유연성(전환배치 확대 등)을 가져가겠다는 현 정권의 구상은 노동유연화의 변종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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