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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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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6.04 01:23

각다귀

 


청소년 텃밭 모임에서 상추, 치커리 따위 잎채소를 심었다. 비가 잦아 모임이 몇 주째 계속 연기되어서, 계획보다 조금 늦게 심었다. 밭이 워낙 진데다, 비까지 많이 내린 탓에 완전히 뻘밭이 됐다. 발이 쑥쑥 빠지건만 까칠하고 민감한 중학생 아이들은 군소리 한마디 없이 일을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두 해 이상 농사를 지어봐서,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들 한다. 도시 농부들이 다 되었다.

아이들이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밭에서 만나는 벌레들이다. 거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꿈실꿈실 기어가는 애벌레가 무서워 뒷걸음질 친다. 그래도 깡충깡충 뜀뛰기 잘하는 깡충거미나 몸을 접었다 폈다 마치 뼘을 재듯 기어가는 자벌레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묘기를 보여주면 몇몇 아이들은 깡충거미나 자벌레를 자기 손바닥으로 옮겨서 거리낌 없이 잘 논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벌레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떨쳐낸다.

밭 가장자리 무성하게 자라 올라온 개망초에 각다귀 한 마리가 붙어있다. 각다귀를 두 손으로 슬며시 잡아서 아이들 앞에 펴 보여 주었더니 모두 질겁을 했다. 각다귀를 보고 놀라는 것은 각다귀가 모기를 닮았기 때문이리라. 그냥 닮은 게 아니라 모기보다 몇 배는 더 크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각다귀를 왕모기라 부르지만, 사실 각다귀는 모기처럼 피를 빨지도 않고, 모기처럼 날래지도 않다.

각다귀와 모기는 다 파리목에 속한다. 파리목 곤충들은 뒷날개 한 쌍이 평균곤으로 바뀌었다. 이 평균곤을 방향키 삼아 순식간에 방향을 바꿀 수 있고, 정지비행도 잘 해낸다. 파리, 모기, 꽃등에, 파리매가 다 비행술에 뛰어나다. 그런데 몸집이 크고, 긴 다리를 가진 각다귀의 비행술은 형편없다. 몸도 연약해서 유리창에 갇혀 버둥거리다 금세 죽고 만다. 긴 다리는 손으로 잡으면 잘도 끊어진다. 각다귀를 처음 볼 땐 누구나 커다란 모기라고 여겨서 무서워하지만 알면 알수록 어리숙한 이 곤충에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앉아있는 각다귀를 가만히 보면, 뒷날개 자리에 달린 평균곤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래서 파리목 곤충의 생김새를 알려줄 땐, 꼭 각다귀를 보여준다.

각다귀는 습한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텃밭에서 각다귀를 자주 보게 되는 것은 밭이 그만큼 습하기 때문이다. 각다귀는 한살이 대부분을 물속에서 애벌레로 지낸다. 물 밖으로 나와 날개돋이를 하고 어른벌레로 사는 것은 두 주쯤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산 각다귀는 60여 종이 알려져 있는데 종마다 맑은 물, 더러운 물, 물살이 센 계곡, 물 흐름이 느린 곳, 고인 물 등 사는 곳이 다르다.

물가에서 쉽게 볼 수 있어서 그런지 각다귀는 하루살이, 깔다구와 자주 혼동된다. 하루살이는 각다귀와 달리 날개가 두 쌍이다. 깔다구는 각다귀와 같이 파리목에 속한다. 날개가 한 쌍이지만 크기는 아주 작다. 하루살이와 깔다구는 각다귀처럼 한 마리씩 날아다니기 보다 물가에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애벌레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각다귀 애벌레는 발이 없는 구더기 모양이다. 깔다구 애벌레는 실지렁이처럼 가늘고 길다. 하루살이는 못갖춘탈바꿈을 하기 때문에 애벌레의 모습과 어른벌레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리가 세 쌍 있고 허물을 벗을 때마다 애벌레 가슴 등판 끝에 조금씩 날개가 자라난다. 생김새는 달라도, 각다귀 애벌레, 하루살이 애벌레, 깔다구 애벌레는 물속 생태계에서 역할이 같다. 물속 유기물을 청소하고, 물속 육식곤충이나 물고기, 개구리의 먹이가 된다. 도시 개울들이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것은 하천 정화사업 때문이 아니라 물속에 살아가는 작은 벌레들이 이루어 낸 것이다. 도시에서 만나는 곤충들은 도시의 생태계를 잇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다.

청소년 텃밭모임에서 해마다 농사일을 다 마치고 평가를 할 때면 아이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곤충을 잡고 놀았던 것을 꼽았다. 아이들은 작은 텃밭에서 도시의 생태를 온몸으로 깨달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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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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