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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역을 전쟁으로 몰아갈 미국의 만행

 

백종성집행위원장




지난 58, 트럼프는 이란과 맺은 핵 협정 탈퇴를 발표했고 이 조치가 북한에 대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미국은 더 이상 공허한 위협을 하지 않는다. 내가 약속하면, 나는 지킨다." 그렇다면 이 행위는 단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미국의 협박인가? 양수겸장의 성격으로 볼 수는 있으나, 단지 북미 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기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후보 시절부터 이란과의 합의를 자신이 본 최악의 거래라고 칭하며 파기 의사를 숨기지 않았다


미국의 핵 협정 파기

20157월 이란과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은 '이란 핵합의'로 알려져 있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했다. UN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그리고 이란이 맺은 이 협정에 따라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과 무기급 플루토늄을 15년간 생산하지 않고, 10톤에 달했던 저농축 우라늄을 300킬로그램으로 줄이며, 19천 개에 달하던 원심분리기를 10년간 6104개로 유지하고, 중수로 노심을 제거하며, 비핵화조치 이행증명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미국 주도로 이루어지던 대 이란 금융·에너지·무역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것이 합의 골자다. 이라크 전쟁 이후, 자신이 만든 수렁에 빠진 미국은 그 수렁에서 탈출하고자 대외정책 중심축을 중동에서 태평양으로 옮겨왔고, 바로 이것이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pivot to asia였으며, 이란과의 핵 협정은 바로 그 전략적 과정의 산물이었다.

이란은 여태 합의를 잘 준수해왔다. 201835,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이란이 핵 협정 의무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발표했고, 59일에는 이란은 핵 협정 체제 아래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핵 검증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2015년 협정에는 들어있지도 않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여부 사찰, 1015년으로 한정된 핵개발 제한기간 폐지, 시리아·예멘·이라크에서의 이란세력 활동 중단이라는 요구를 들이밀었다. 이는 최소한의 명분도 없는 억지다.

51일 이스라엘은 이란이 비밀리에 핵을 개발하고 있다며 관련 자료를 발표했지만, 이는 2015년 당시 검증이 끝난 과거자료에 불과하며 이에 영국과 프랑스마저 이스라엘의 발표는 오히려 2015년 합의가 왜 준수되어야 하는지를 드러낸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프랑스·독일이 이란과의 협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핵 협상 타결 이후 유럽 기업들이 이란에 다시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유예기간이 끝나고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과 국가들 역시 제재 대상이 된다.

 

핵 협정 파기의 근저에 있는 것 : 미국-이스라엘-사우디 동맹

미국의 협정파기는 이란이 실제로 핵을 개발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란은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한 이후에도 협정을 준수할 것임을 밝혔다. 미국의 행위는 이란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함이며, 미국 역시 이를 숨기지 않는다. 다음은 미국 정부의 설명이다.

 

세계 각국은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이란 정권의 파괴적인 의도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시리아에서, 이란 정권은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으며 아사드가 시리아 국민을 상대로 자행하는 잔혹한 행위에 동참하고 있다. 예멘에서, 이란 정권은 분쟁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후티 반군을 앞세워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아파 민병대와 테러조직을 후원하고 있다. 레바논에서, 이란 정권은 헤즈볼라가 고도로 파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지역을 위협하는 무기고를 비축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행정부의 조치는 이란 정권하에서 장기간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인 이란 국민이 아니라 이란 정권의 악의적인 행동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은 시리아, 예멘과 레바논을 언급했다. 이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제국주의 열강의 대리전, 시리아 내전 판세가 아사드 정부군 승리로 일정하게 기운 상황을 미국은 좌시하지 않으려 한다. 전후 복구사업을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할 경우 미국의 중동 통제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IS 무력화 양상에 따라, 앙숙이던 러시아-사우디, 러시아-터키 관계가 정상화하는 흐름이 있다. 복잡한 구도를 단순화해보자면, 이란-시아파-러시아-중국 세력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강화해왔고, 미국은 이에 대응하고자 한다.

그 수단이 미국-이스라엘-사우디-수니파 공조다. 미국 발 셰일오일이 야기한 유가폭락으로 미국-사우디-아랍권 관계가 일정하게 악화해왔음을 감안하면, 시아파 수장인 이란과 맺은 핵협상 파기, 수니파 수장인 사우디 왕세자 쿠데타 승인 등 미국과 사우디 관계는 근래에 보다 긴밀해지고 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에게는 시아파라는 공동의 적이 있다. 201711월 이스라엘은 사우디에 군사정보 공유를 제안했고, 사우디 역시 자신의 뒷마당인 예멘에서 이란-시아파 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제어하고, 예멘 내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로 이스라엘과 공조 의사를 밝혀왔다.

트럼프 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이 이란과 함께 중동에 영향력을 확장하는 상황을 두고 보지 않으려 한다. 이란의 동쪽 국경 너머에는 아프간이 있는바, 트럼프 정부의 기존 입장을 뒤집은 아프간 추가파병 역시 러시아-중국-이란-시아파의 중동 세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중동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격화하고 있다.

 

제국주의가 있는 한 평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란의 핵개발 여부가 아니다. 이란과 맺은 핵 협정 파기의 근저에 있는 것은 미국의 대 중동정책이다. 미국-이스라엘-사우디 동맹의 강화 흐름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도 금방 확인된다.

사우디는 트럼프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방문한 국가이며, 사우디를 거쳐 두 번째로 방문한 국가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트럼프는 사우디에서 이스라엘로 직항한 바, 이는 이스라엘 건국 이후 사우디발 항공기가 제3국을 거치지 않고 이스라엘로 직항한 첫 사례였다. 동맹의 강화를 반영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미국은 20175월 사우디 순방에서 1,100억 달러(120조 원)에 달하는 무기판매계약을 체결했으며, 양국은 향후 10년간 3,500억 달러 상당의 군사장비를 거래하기로 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군사계약과 별도로, 사우디는 미국 방산·제조·정유업체와 550억 달러에 달하는 거래계약까지 맺었다.
201712, 미국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했고, 사우디는 이스라엘은 자기 땅에 살 권리가 있다고 화답했다. 이는 단지 2018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얄팍한 행보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결국 2018514,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에서 개관했고,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를 축하하는 연회장 바깥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학살이 벌어졌다. 58일 미국의 핵 협정 파기는 바로 이런 흐름 속에 있다.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평화는 없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 우리가 다시 새겨야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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