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매력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노동조합은 빨갱이나 하는 불경스럽고 강압적이고 부담스런 어떤 것으로 알고 있거나 아예 노조가 뭔지 전혀 모르던 노동자들이, 1987년 여름에, 바로 옆 사업장에서, 또는 몇 만 명이나 되는 멀고 큰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장이 너무한 것 같고, 관리자가 나쁜 놈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끝내는 두려운 마음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업장에도 노동조합을 준비한다. 남몰래. 그리고 그것이 공개되면서부터는 회사와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민주노조들의 모습이다. 얼마나 눈물, 콧물 빼는 이야기가 많았겠나? 얼마나 뿌듯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았겠나? 얼마나 회사의 탄압에 분노하고, 탄압을 물리친 통쾌한 이야기가 많았겠나? 노조를 만들던 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세월의 때도 묻고 나이도 제법 들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도, 많은 노동자들이 그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때로 기억한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야기, 거기에는 생각보다 매력적인 이야기를 꽤 많이 품고 있다.
53년 어용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몸부림
<철로 위의 사람들>은 3중 간선제로 53년간 유지해 온 어용노조를 뒤엎는 직선제 쟁취투쟁을 전개한 2000년 2월에 시작해서 다음 해 5월, 첫 번째 직선제 노조위원장이 나올 때까지의 철도노동자 투쟁을 담았다. 그러나 이 1년간의 투쟁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의 꼭대기에 불과하다. 꼭대기를 떠받치고 있는 바다 밑 거대한 빙산 속에는 더 많은 얘깃거리들이 숨어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1989년 당시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없이 파업투쟁을 했고, 이후 어떤 노동조건이나 기본권도 쟁취해내지 못한 때부터 이야기는 이미 시작됐다. 이 패배의 경험으로 노동자들은 1994년에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기관사들을 중심으로 ‘노민추’를 결성한다. 이 조직을 통해 조합비 인상 반대 투쟁, 조합 총선거 투쟁, 부산지방본부 사수투쟁, 99년도 철도 민영화 저지 투쟁까지, 크고 작은 노동자 대중투쟁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그런 시간들 끝에,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다. 2000년 1월 대법원은 “철도노조의 3중 간선제는 위법”이라고 판결한다. 노동자는 즉각 민주노조건설을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를 건설하고, 어용노조 사무실에 대한 점거 농성에 돌입한다. 이미 노동자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용노조가 다시 노조를 탈환하고, 공투본 소속 노동자들은 어용노조의 대의원 선거를 저지하고, 언론에 철도노동조합의 어용성을 폭로하고, 이쯤에서 뒷짐 지고 있던 철도청이 나와서 공투본 활동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징계한다. 공투본 노동자 투쟁은 점차 힘들어진다. 부당징계자가 자살을 하고, 철탑으로 올라가 농성을 하고, 사슬투쟁을, 단식투쟁을 한다. 투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투쟁은 서서히 끝을 향해 간다. 선거 시기가 다가오고, 공투본은 선거 투쟁에 돌입한다. 물론, 끝을 코앞에 두고 위기가 찾아온다. 부정선거로 비화한 분산 투표와 개표의 문제. 그러나 공투본 후보들이 지부장에 당선되고, 끝내는 공투본 후보가 노조위원장에 당선된다.
‘민주노조 건설’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다
* <철로 위의 사람들> : 2001년 8월/70분/전국철도노동조합-노동자뉴스제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