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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가 

쓰레기 대란에 종지부 찍을 수 있을까?

 

임용현기관지위원장



사진 : deskgram.org/p/1754758223268599847_1387818275

 

초여름 더위가 며칠간 기승을 부리더니, 낮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때마침 이 날은 파인텍 고공농성 200일을 기해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과 문재인 정부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행진 1일차 마무리 문화제 장소인 당산역 부근으로 이동하던 나는 지하철역 출입구를 서둘러 빠져나오다가 역사 내부 흥건하게 고인 빗물 때문에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다. 지상 출입구로 통하는 계단 바로 앞에는 빗물받이 통 안에서 우산을 털어주세요라는 안내 표지가 붙어있었지만, 빗물받이 통은 어디에 둔 건지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알고 보니 폐비닐 수거 대란이후 서울시가 일회용 비닐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지하철 역사에 비치했던 우산 비닐 포장기를 51일부로 일제히 치웠기 때문이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폐비닐류가 나오는 길목 한 군데를 차단했으니 일단 잘 된 일이라고 안도해도 되는 것일까?

 

폐비닐 수거 대란은 빙산의 일각

지난 한 해 동안 서울 지하철을 비롯한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서 사용된 우산 비닐 커버는 약 520만 장에 달한다. 민간부문을 포함하면 우산 비닐의 국내 총 사용량은 연간 2억 장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는 산하 공공기관부터 우산 비닐 커버 사용을 자제하는 대신 빗물제거기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사무실 빌딩이나 백화점, 은행 등 유동인구가 많은 민간 시설에서는 아직도 우산 비닐을 한 번에 수백, 수천 장씩 사용 중이다. 비닐 커버는 일회용품 규제 대상도 아닌 터라 감량에 힘을 쏟는 민간 기업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비 오는 날 한 번 쓰고 버리는 우산 비닐 커버는 야외 이동이 빈번한 사람일수록 사용하는 개수도 그만큼 늘어난다. 놀라운 점은 이처럼 다량으로 사용하는 우산 비닐 커버가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활용업체들은 비닐 안쪽에 수분이 잔류해있어 이를 완전 건조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과다하게 투여된다고 그 나름의 이유를 댄다. 수익이 나지 않아 자원순환의 연결고리에서 튕겨 나온 폐비닐들은 끝끝내 상품화되지 못하고 매립 또는 소각돼 환경오염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말하자면, 재활용되지 못한 폐비닐의 최후는 둘 중 하나인 셈이다.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을 내뿜으며 태워지거나, 자연 분해될 때까지 땅 속에서 500~1000년 동안 잠자코 기다리거나.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Susan Freinkel<플라스틱 사회>에서 비닐봉지는 방수가 되고, 깃털처럼 가볍고, 자신의 무게보다 수천 배는 더 나가는 것도 거뜬히 담을 수 있는 놀라운 물건이라고 표현했다. 무궁무진한 범용성과 편리한 사용성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 놀라운 합성수지 제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 매우 가벼우면서도 비교적 강한 탄성을 가졌기에 제품 포장이나 운반 등 일회적인 용도에 적합하지만, 또한 쉽사리 썩지 않는데다가 눈, 비 등 습기에도 강해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요컨대, 우리는 내구연한이 정해지지도 않은 불멸의 물질을 단 한 번 쓰다 버리기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엽말단적인 방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윤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일부 환경운동단체들은 주로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 행태에 대해 꼬집는다. 실제로, 한국의 비닐봉지 연간 사용량은 1인당 420개로 독일(70)6, 핀란드(4)100배에 달할 정도로 가히 압도적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플라스틱 소비량 조사결과에서도 한국은 연간 1인당 98.2을 소비해 미국(97.7)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지속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회용품 소비를 획기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그러나, ‘생산-유통-소비-배출(폐기)이라는 자원순환 과정에서 온갖 플라스틱 폐기물의 바벨탑을 쌓은 인류에게 이제부터 착한 소비를 하자고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령, 생산의 과정을 살펴보자. 현재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 소재의 1/3가량은 포장재로 사용된다. 대다수의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재활용 및 생분해(자연분해)가 가능한 포장재를 채택하려 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유통과 소비, 배출을 담당하는 기업들 역시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 즉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보다는 원가비용이나 단기 수익 등 수지타산을 먼저 따지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이윤 동기와 사회적 필요는 언제나 불화했다. 반면, 과잉생산과 자원낭비를 야기하는 구조에 맞서 필수 자원에 대한 사회적 통제 요구는 급증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결탁 때문에 땅과 물, 공기가 급속도로 오염되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민중이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자원순환 과정에서 국가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우선 폐비닐 수거 대란을 자초했던 수거 위탁계약부터 국가(지방정부) 책임으로 전면 전환할 필요가 있다. 재활용품 수거 및 선별(처리) 과정은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 여하에 달린 문제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정부가 2024년까지 피할 수 있는 모든 플라스틱 폐기물을 없앨 것이라고 선언했고, 프랑스 정부도 2020년까지 썩지 않는 일회용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한 것은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한 자원 활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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