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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의 사례로 본 화학사고 대응체계의 문제점과

노동자시민 중심의 

화학물질 통제력 확장의 필요성

 

이백윤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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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에는 LG화학, 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 4사가 위치해 있다. 여수산단에 이어 연간 생산량이 두 번째로 높다. 또 당진, 태안, 보령, 서천의 화력발전소로 둘러싸여 있고 내륙 쪽으로 바람이 불면 오염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지역이 바로 서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미세먼지 농도가 전국 최고 농도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고, 벤젠, 부타디엔 등 대기 중 유독성 화학물질 농도 또한 수도권의 수십 배에 달한다.

 

지방정부와 관계기관의 미흡한 대응체계

올해 화력발전소 주변 환경역학조사가 이뤄지고 있고, 대기환경특별대책지역 지정을 위해 대기환경영향평가도 진행되고 있지만, 관계기관의 전반적인 대응은 본질적으로 매우 큰 한계를 갖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첫째, 서산시청의 2018년 주요업무계획 어디에도 석유화학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거나 안전대책을 강화할 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후설비로 인한 롯데케미칼 벤젠누출사고, 설비용량의 처리능력을 넘어선 생산으로 인해 한계에 다다르자 고의로 물질을 태워서 배출했던 두 번의 플래어스택 화재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시청은 기업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통한 예방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주민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홍보하는 수준의 대비책들을 주로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정책적 방향은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계로부터 비롯한다.

둘째, 자연정화능력을 이미 초과한 환경 현실에 대한 대책은 없고 오히려 석유화학산업 확장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 10조 원 규모의 대산 첨단화학 특화단지 조성을 위한 MOU 체결이 진행되었고, 산업단지의 신규 확장을 보조하여 2,200억 원이 투여되는 해수담수화 사업, 80억 원의 물류도로 확충 등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석유화학기업과 주민 주거지 사이에서 최소한의 경계 역할을 했던 완충 녹지를 싼 값에 정유사에 팔고, 땅을 사들인 정유사는 그 토지를 신규사업에 쓰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셋째, 화학사고 예방과 대처에 가장 큰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서산 화학재난방재센터가 부여된 위상과 달리 전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전국에는 화학산업이 발달한 지역을 중심으로 6개의 화학재난방재센터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고, 충북에서 유해화학물질 취급허가 사업장의 51%가 밀집해 있는 충주에도 2021년에 새로 방제센터가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사고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능동적이고 신속한 대응력을 갖추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파견되어 있는 충남도, 환경부, 노동부, 서산시, 소방방재청 등이 한 곳에 모여 각자 자기 업무를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41월 개소 이후 컨트롤센터 역할을 해야 하는 센터장 보직도 아직 명확치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서산 방재센터는 화학사고와 화재를 포함한 안전사고를 구분하여 업무 범위를 축소해 대응하는 등 소극적 업무형태를 지속하고 있고, 다른 기관들은 사고 대응에 대해 방재센터의 권한이니 거기 가서 따지라고 회피하고 있는 현실이다.

 

제정보다 더 어려운 조례 운영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서산 시민사회단체와 산업폐기물매립장, 광역쓰레기소각장 인근 주민대책위를 중심으로 화학물질 안전관리 조례를 제안하고 올해 3월 시의회를 통해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화학물질 안전관리 조례에는 지역에서 취급되는 주요 화학물질과 유독물질 소량 취급 사업장을 포함한 정보공개와 조사,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대한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노동시민사회가 포함된 관리위원회 구성, 주민감시체계의 구성과 운영 등이 명시되어 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조례를 앞두고 화학사고의 피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며, 화학물질 안전관리 조례가 내실 있게 시행되기 위해 각종 강좌를 열고, 화학물질 감시운동에 참여를 제안하는 등의 홍보활동도 벌이고 있다. 조례에서 지금까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던 기본적인 정보의 공개와 공유, 화학사고 시 대피요령 등의 상세화, 정책 입안과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와 시민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점 등에 주요하게 착목하고 있다.

하지만 화학물질 조례는 명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조례에서 표현하고 있는 각종 강제조항을 기업이 거부하더라도 조례로는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의 출입이나 화학사고 현장에 대한 조사 등도 지자체장의 의지가 높다 하더라도 기업이 거부하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며 이는 조례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갖고 있다.

또 만들기보다 제대로 가동되기 더 어려운 조례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서산시에만 414개의 조례가 있지만 실제 주요하게 활용되거나 시민들이 알고 있는 조례는 극히 일부분이다. 조례의 조항에 근거해 103개의 각종 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식사비와 회의참가비 지급을 위해 1년에 한두 번 형식적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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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시민사회환경협의회  


지역 주체들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

이러한 과제를 안고 지난 4월 화학사업장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주민대책위가 모여 <서산시민사회환경협의회>를 결성했다. 최근 일어난 크고작은 화학사고의 실제 내용을 공유했고 우리가 그동안 너무 모르고 있음, 인근 주민들은 고사하고 사업장 내 노동자들에게도 정보가 차단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편 관계기관을 견제하고 견인하기 위해 서산 화학재난방재센터와 면담을 진행하였고, 형식적 사고조사와 사고 내용 파악의 부실함을 비판했다.

무엇보다 지역 내 주체들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되는 과제라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사고 발생 시 건강역학조사 규정 등 산안법 상의 최소한의 보장을 받고 있지만, 퇴근 후 시민이 되면 아무런 보장도 되어있지 않는 현실을 점차 깨닫고 있다. 화학단지 인근 주민들이 느끼는 상상 이상의 공포감도 함께 공감하고 있다. 공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아봐야 잠이 온다는 분들, 저녁 무렵이면 낮에 안 보이던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굴뚝과 이따금씩 치솟는 불길을 보며 살아야 하는 인근 주민들이 이제는 자체적으로 폐질환 사례를 수집하고 있는 상황을 공유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과 주민단체, 그리고 지역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과제 해결을 위해 첫 발을 떼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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