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을 뒤집어 쓴 자본에 맞서
당당하게 싸우는 동래‧동명정화 노동자들
하계진┃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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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래구의 2개 정화업체(동래정화, 동명정화) 노동자 14명이 60일 가까이 파업 중이다. ‘부산지역 일반노동조합 동래동명 현장위원회’ 조합원이다. 이들은 매일같이 동래구청 앞에서 불법, 비리 사업장 동래·동명정화사업장의 민간위탁을 철회하라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17년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갱신 때문이다. 구청은 2016년 용역단가를 16% 인상했지만, 회사는 이를 최소한으로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경리직 여성조합원’ 3명 때문이다.
일상적인 감시와 차별
사측은 경리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임금협상도 단체협약도 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구청과 노동청도 사실상 사측을 편들고 있다.
회사 측은 이들 3명의 경리직 노동자를 조합원과 분리하기 위해, 경리직 노동자는 노동조합 가입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는 각하된다. 이후 구청과 노동청의 태도는 다소 변하고 있으나, 사측은 여전히 경리직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를 신문광고로 게재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회사를 폐업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편지를 조합원들의 가정에 보내고 있다. 경리직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면 다른 사업장의 경리직 노동자들도 조합에 가입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비리가 낱낱이 폭로될 것이란 불안감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정화사업장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악취와 질식할 듯한 유해가스, 근골격계 질환 등에 시달리며 받는 임금은 한 달에 300만 원이 채 안 된다. 이런 조건에도 더욱 열악한 여성노동자들의 귄리를 지켜내기 위해 2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60일 가까이 전면 파업도 불사하고 있다. 동래·동명정화 노동자들은 새로 노동조합에 가입한 여성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무노동·무임금의 불이익을 감수하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중소사업장 경리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더욱 열악하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노동자들인 이들은 사실상 최저임금을 받으며 인격적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동래정화·동명정화 3명의 여성노동자들도 이전의 사업장에서 십 년 이상 같은 업무를 해왔음에도 아무런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 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사업장 현장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상여금조차 이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사측이 사용자라 주장하는 경리직 노동자들의 월 급여는, 2018년 현재 한 달에 160~170만 원 정도. 이 임금에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게 사장의 일상적인 태도다. 사무실 현장엔 CCTV로 종일 여성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업무 특성상 민원인의 폭언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리직 노동자는 사용자가 아니다!
궂은일은 다 시켜놓고 퇴사하는 직원에겐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없었다는 사장. 수입금을 챙겨갈 때 말고는 출근조차 하지 않는 사장. 단 한 번도 출근하지 않아 얼굴도 모르는 사장의 부인과 막내딸은 매달 꼬박꼬박 임금과 상여금까지 챙겨가지만, 이들 여성노동자들에겐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보장된 상여금조차 지급하지 않았던 사장. 경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천만 원씩을 쓰면서도 최소한의 임금인상도 거절하는 사장.
억울함과 서운함을 억누르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함께 싸우고 있는 동료 조합원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당당하게 노동자로 일어서고 있다.
중소사업장 경리직 노동자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2003년 일반노조에 가입했던 여성노동자들의 하소연이다. “점심시간에 전화를 받아야하니 사무실을 비우지 못하게 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점심을 시켜 먹으면, 이제는 음식 냄새가 난다고 사장이 난리를 칩니다.”
노동조합의 동료 조합원을 지키는 일은 곧 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싸움에 일반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지역의 여성단체도 연대집회로, 성명서로, 그리고 구청 항의로 힘을 보태고 있다.
‘경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라는 자본가들의 태도에는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자본가들의 회계상 비밀이 폭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기저에 있을 터이다. 동래‧동명정화 사장을 비롯한 자본가들은 다른 건 몰라도 합법을 가장한 각종 꼼수들을 동원하는 것만큼은 교활하고 악랄하게 수완을 발휘한다. 그런데, 자신의 치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리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한다고 하니,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식이겠는가.
누가 뭐라던 경리직 노동자는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더 나아가 정화조에서 풍기는 악취보다 수천, 수만 배 지독한 자본의 탐욕을 분쇄하기 위해, 당당하게 민주노조와 함께해야 하고 우리는 이들을 지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