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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그리고 비정상의 상식화...

 

박인기(전국대학노조 신성대학지부 지부장)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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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학노조의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청원 접수 장면.



나는 지방에 위치한 전문대학의 노동자로서 20년째 일하고 있다. 이 대학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건립한 교원연수원을 18년 가까이 설립자인 전 이사장이 사적으로 사용하다 본인의 회사에 헐값으로 매각한 사실이 지난 6월 전국적으로 보도되면서 대학민국 사학의 문제를 다시 재조명한 곳이다. 흔히 대학의 노동환경을 일컬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한다. 방학기간 중 단축근무와 업무성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지 않은 반면, 많은 임금을 받는 곳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간의 이러한 인식과 달리 상당수 지방 사학의 노동자들은 만성적인 저임금과 재단의 갑질에 노출되어 있다. 대학자본이 학령인구의 감소를 이유로 대학의 생존을 위한 대비책으로 적립금을 축적하기 위해 구성원을 옥죄기 때문이다. 실제 가끔 접하게 되는 대학의 갑질 사례를 보면 교수가 이사장에게 멱살 잡히고 상욕을 먹는가 하면 심지어 구타까지 당한 일이 있다. 교수가 저 지경이면 직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동권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곳에서 대학의 민주화를 논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학내민주화가 요원한 곳에서 재단의 전횡과 부패를 방지할 방법을 논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다른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대학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라는 것은 개인적 생존 문제를 떠나 학내민주화의 문제, 나아가 사학비리를 근절하고 교육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라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가 일하는 이곳 또한 전형적인 부패사학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곳이며 비정상이 상식화된 지 오래이다


대학 당국의 출장비 착복·임금 갈취·강제 연봉제 실시

이 대학의 교수와 직원은 그간 대학의 공식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외부출장을 한 경우에도 출장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대학이 경비절감을 이유로 취업규칙상 명시된 출장비를 정상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런 일은 10년이 넘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때문에 구성원들은 항상 출장을 다녀온 후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고 마음이 불편했으나 취약한 노동권으로 인해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푼돈인 직원들의 출장비까지 꼼꼼히 착복한 대학은 이와 유사한 일들을 비일비재하게 저질렀다. 입사와 동시에 매달 장학기금이란 명목으로, 일 년에 수차에 걸쳐 불우이웃돕기란 명목으로 아무런 동의도 없이 원천 징수했다. 차라리 그것은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넘어갈 수 있었으나, 대학 설립 10주년, 15주년, 20주년 등 5년마다 돌아오는 개교 기념행사에 강요되는 대학발전기금은 너무나 기가 막혔다. 5년 동안 오른 임금을 다 합해야 몇 백만 원인데 이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두 토해낸 적도 있으며 어떤 이는 인상된 총액보다 더 많은 돈을 납부한 경우도 있었다. 직급에 따라 금액을 정해 놓고 거부할 수 없는 관계와 위계를 통해 약정서에 서명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임금체계를 변경하는 연봉제를 도입할 때는 더욱 기가 막혔다. 연봉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어떠한 것인지 제대로 설명도 없이 교수와 직원을 개별적으로 소환하여 서명하게 한 후 계약서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물론 이 연봉제는 임금삭감과 고용불안을 통한 구성원 통제의 목적이었고 그 결과 대다수 교수와 직원들은 심각한 저임금에 고통 받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참으로 수치스러운 고백이다.


연차수당?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이 대학에선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서 설립자의 아들인 부총장에게 직접 대면 결재를 받아야 했다. 직원들의 휴가 사용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그는 연차 사용 과정에서 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부부관계에 있는 직원에게 왜 휴가를 같이 쓰는지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고, 선임직원이 휴가를 쓰지도 않았는데 후임이 먼저 휴가를 쓴다고 버릇없다고 질타하는 등 휴가 한번 쓰는 것이 가시방석과 같았으며, 실제 연차 사용을 거부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이렇게 휴가 사용을 억제하는 한편 사용하지도 못할 휴가일정을 억지로 제출하게 했다. 이는 연차 사용을 촉진했다는 근거로 활용하여 연차보상비의 지급의무를 회피할 목적이었으며 실제 단 한 번도 연차 보상을 한 적이 없다. 이러한 파행과 갑질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곳에선 그동안 하루 8시간 근무가 이뤄진 적이 없다. 취업규칙에 하루 근무시간을 8시간 30분으로 정한 후, 마지막 30분은 체력단련 시간이란 명목으로 근무하게 했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 시간은 실제 관리자의 지휘와 통제 아래에서 자유롭지도 않았으며 체육활동 또한 없었다. 이른바 고정적인 연장근로였던 것이며 물론 이에 대한 보상 또한 없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수와 직원에게 향하는 폭언과 갑질이었다. 부총장이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나이 많은 교수나 직원을 향한 하대와 폭언은 구성원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었고 실제 이에 상처받고 퇴직한 직원도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당 직군과 무관한 기숙사 사감으로 발령한 후 직장 내 괴롭힘을 통해 결국 사직에 이르게 한 경우 또한 수차례 있다. 이 중 어떤 경우는 직장 내 괴롭힘을 버티지 못해 사직 일자를 1년 뒤로 특정한 사직서를 제출한 후 본 직군이었던 행정직으로 돌아와 1년 근무한 뒤 사직한 사례도 있다. 말 그대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정규직이라 해놓고 계약직으로 근로계약

이 대학의 이러한 갑질 행태는 채용되는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다. 정규직으로 채용공고를 낸 후 실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으며 당사자에게 근로계약서조차 지급하지 않는다. 이는 가장 최근 채용된 직원도 해당된다. 이것은 취업사기에 준하는 것이나 학교를 믿고 입사한 직원이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전 직장을 사직한 이후여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이의제기 또한 계약기간이 종료된 뒤 재고용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로선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것은 분명 취약한 노동시장을 악용한 갑질이다. 이렇듯 채용순간부터 시작되는 갑질은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2년 혹은 3년 간격으로 재계약을 강요하면서 부지불식 간 만성적인 고용불안을 야기해 결국 자신의 고용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을 조직할 권리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그 외 이 대학은 노사협의회 한 번 제대로 개최한 적이 없다. 근로자측 의원을 대학에서 낙점한 후 사측 관리자가 직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추천을 받아 지명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울뿐이었던 것마저 개최하지 않은 지도 이미 10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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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국대학노동조합]


패배... 그리고 15년의 투쟁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관행화되고 상식으로 받아들여진 가장 큰 이유는 15년 전 노동조합 투쟁의 패배였다. 패배 이후 조합은 단 몇 명이 자존심과 깃발만 지키며 버텨오던 시간의 연속이었고 그 기간 자본의 몰상식을 제어할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지난 6월 투쟁과 설립자의 사망 이후 급격히 변화되었다. 그간 축적된 현장의 분노는 조합으로 결집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의 당원들이 헌신적으로 결합해 주었다. 물론 아직 현장에선 분노만큼이나 두려움도 크고, 커가는 조합원들의 자신감만큼이나 자본의 배짱도 만만치 않다. 가야할 길은 멀지만 현장 조합원과 지역의 당원 동지들과 앞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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