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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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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민영 

을 질렀다

 

정연용인천

 


1995년 김영삼 정권은 당시 공기업이었던 한국통신(KT) 노동조합의 기본급 3% 인상 요구한통노조는 국가전복세력이라 매도하며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김영삼의 말 한마디에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회사도 노조와의 대화를 일절 거부하며 강경 일변도로 돌아섰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공안몰이에 한국통신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억울했고 국민들도 의아해 했지만, 그때부터 정부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통신의 공공성과 안정적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때는 맞고 어째서 지금은 틀린 걸까?


사상 초유의 통신 대란

20181124일 첫 눈이 내리는 주말. 서울지역 일부에서는 세상이 멈춘 듯한 아찔한 경험을 했다. KT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로 인해 서울 중·서부권 5개구(중구, 용산, 마포구, 서대문, 은평구)와 접경지역에서 KT ·무선 통신망이 중단되었고, 그 결과 휴대전화, 인터넷, IPTV 등이 불통된 것이다. 집 전화는 물론이요, 휴대전화도 돌연 먹통이 되었고, 인터넷과 TV도 일순간에 끊겨버렸다. 평상시에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요술방망이 스마트폰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긴 매한가지였다.

다행히 대다수 기업과 금융기관 관공서가 휴무인 주말이어서 최악의 피해는 면했지만, 사상 초유의 통신 대란으로 회자되는 이번 사고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주말 대목을 맞은 상점들은 카드 결제 장애로 손님과 주인 모두 혼선을 겪었고, 응급 환자 및 긴급 상황에 대한 구호 요청도 전화 연결이 이뤄지지 않아 크나큰 불상사가 발생되기도 했다. 또한, 당일 실시된 대학별 논술고사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등 적지 않은 불편을 겪은 시민들의 하소연이 줄지어 터져 나왔다.

화재 진압 후 지하 통신구(정확한 용어는 동도 Cable Subway’라고 해야 맞다)에서 육상으로 통신 케이블을 긴급 임시 복구하여 이동전화 및 주요 회선에 대한 일부 서비스는 간신히 정상화되었다. 통신 케이블이 지나가는 통로인 통신구 화재만으로도 피해가 이 정도였음을 감안한다면, 주요 장비가 집중돼 있는 전화국 건물에 불이 났을 경우에는 훨씬 커다란 피해가 발생했으리라 충분히 예상된다.

비단 출근길에 스마트폰을 두고 나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통신은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통신이 차지하는 비중과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화재 사고는 한국사회에 일대 파장을 일으켰고, 나아가 통신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개개인의 여가 활동에 불편을 끼친 것이 아닌, 일상의 경제·사회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고 생명과 안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난 시절 그들이 한 일들을...

화재 발생 2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한 화재 원인 및 발화 지점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의 두 차례에 걸친 현장 감식이 진행되었고 화재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 분석이 진행 중이므로, 추후 경찰의 공식적인 발표를 통해 화재 원인 등이 공개될 것이다. 다만 통신구 특성상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이기에 방화 또는 실화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재 사고 직후 많은 언론과 전문가, 그리고 KT 통신서비스를 실질적으로 담당했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할 것 없이 입 모아 질타하는 것이 이번 화재 사고는 언젠가는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또한, 그 근본적 원인은 통신 부문의 민영화에 있다는 진단이다.

민영화 이후 KT는 줄곧 국민기업임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기업 경영의 가치와 목표를 이윤 추구에만 두었다. 그 결과 국민기업을 표방하는 KT에서 통신 공공성은 사치나 다름없는 말이 되어버렸고, 대신 비용절감이 지상과제로 대두됐다. 급기야 이석채-황창규로 이어지는 정권의 낙하산 CEO들은 위성부터 주요 전화국까지 마구잡이로 팔아치웠다. , 보편적 서비스를 위한 기본 시설(특히 유선분야)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주요 업무는 분사·외주화하면서 관련 분야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등 각종 민영화의 폐해들이 누적되면서 이번 화재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더구나, 화재가 일어난 아현국사는 주요 회선과 장비가 집중되어 있는 시설임에도 KT직원 한 명과 경비노동자 한 명, 전부 합쳐 고작 두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일은 하나 더 있다. 불길이 치솟은 통신구에는 달랑 소화기 하나만 비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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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의 토대를 확고히 다져야 한다

혹자는 이번 화재 사고를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격이라며 무엇보다도 화재 예방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취약한 공공성이라는 토대 위에 지은 외양간은 언젠가 다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기반을 튼튼히 닦지 않는다면 그 어떤 조치도 효력을 갖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다음의 조치들이 신속하게 강구될 필요가 있다.

우선, 신속한 복구와 함께 이번 화재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는 합리적이고 적정한 수준의 보상이 차별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일부 제도와 정책의 보완을 넘어 민영화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대안 창출이다. 이는 다름 아닌 KT 재공영화를 필두로, 무너져 가는 통신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더불어, 매번 정권의 낙하산으로 통신 비전문가들이 회장직에 오르는 악습 역시 근절해야 한다. 지난 민영화 과정에서는 물론이요, 현재까지도 민영화·구조조정을 노사합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KT자본에 철저히 종속된 어용노조를 민주화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나가야 한다.

민영화의 폐해를 극복하고 통신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민간자본에 더 이상 경영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과거의 공기업(한국통신) 시절로 회귀하자는 주장으로 오인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 민중의 직접 참여를 통한 감시와 통제가 보장되는 재공영화(국유화) 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KT자본의 적극적인 언론플레이로 언론이 먼저 손을 떼기 시작하면, 세간의 관심도 서서히 식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고개 숙여 사과했던 정부와 KT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도를 바꿀 것이 뻔하다. KT를 비롯한 통신재벌들은 이른바 ‘5G 시대가 펼치는 장밋빛 미래를 달콤하게 속삭이며 노동자 민중의 지갑을 열게 만들 것이다. 통신 공공성 강화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려는 시도를 지금 막아내지 못한다면, 노동자 민중은 장소와 시간만을 달리한 채 또 다른 사고와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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