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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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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7.17 19:04

매미나방2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숲정이 숲길을 걸었다. 작은 숲길은 늘 다른 걸 보여준다. 그런데 그게 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거뭇한 나방 여러 마리가 발밑을 어지럽게 날아다녔지만, 그저 산딸기 찾기에 바빴다. 함께 걷는 이는 계속 나타나서 파닥거리는 나방들이 거슬렸던지 무슨 나방인지를 물었다. 산딸기에 정신이 팔려서 별생각 없이 ‘나방같이 생겼지만, 낮에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니까 팔랑나비 종류 아니겠냐’고 말했다.


며칠 뒤 저녁 뉴스에 한 시청자가 북한산에서 찍었다며 제보한 매미나방 동영상을 봤다. 그런데 뉴스진행자의 얘기는 오류투성이다. 토박이 곤충인 매미나방을 외래종이라 하고 몸통이 흰 나방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고 했는데,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은 매미나방 수컷이고 수컷색깔은 거무죽죽하다. 수컷과 달리 몸통이 흰 매미나방 암컷은 거의 움직이질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떼 지어 출몰하면 무조건 외래종으로 보는 편견을 탓하다가, 문득 며칠 전 산책하며 보았던 게 팔랑나비 종류가 아니라 매미나방 수컷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낮에 날아다니면 무조건 나비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지난겨울 여느 해보다 별나게 많은 매미나방 알집이 마을 공원 구석구석에 붙어있는 걸 보았고, 지난봄 숲에 떼로 나타난 매미나방 애벌레를 보았다. 그런데도 산책길에서 본 나방 떼와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편견은 빤히 보이는 것도 눈을 가려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매미나방은 순식간에 전국 여기저기 떼 지어 출몰했고 계속 방송을 타며 악명을 떨쳤다. 단양 시내를 뒤덮어버린 듯한 장면은 방송 표현대로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렇게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해놓고 이후 대응방식은 늘 그랬던 것과 똑같았다. 첫 단계, 방송은 ‘매미나방 떼가 습격했다’고 떠든다. 2단계, 지자체는 매미나방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3단계, 총력방제를 외치며 살충제를 뿌려댄다. 4단계, 방송에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 ‘때 이른 무더위와 기후변화 탓’이라고 한다. 어떤 전단지 수준의 방송에선 교수를 앞세워 그 원인이 더위 탓이라고 설명했다. “기온이 올라가면 곤충 성장이 빨라져서 알에서 성충에 이르는 기간이 짧아지니 곱으로 발생하게 된다.” 매미나방은 1년에 한 번 발생하는데, 그 교수의 말대로라면 올해는 매미나방이 두 번 발생했다는 얘기다.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다.


어디에서도 차분하게 원인을 따져 제대로 대처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매미나방은 이전에도 가끔 개체 수가 늘어나 산림과 과수 농가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변혁정치> 37호 참고). 매미나방이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나뭇잎을 먹는 애벌레 시기다. 매미나방 애벌레는 산림의 나무나 농가의 과수를 가리지 않고 100종이 넘는 나뭇잎을 먹는다. 매미나방 어른벌레는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매미나방 어른벌레는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도 알을 낳고 곧 죽는다. 매미나방 어른벌레가 갑자기 떼로 출몰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큰 피해를 주지 않고 무사히 애벌레시기를 넘겼으니까 말이다. 매미나방으로 뒤덮인 장면을 선정적으로 보여주며 두려움과 혐오를 키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낸다. 매미나방은 알로 지내는 시기가 길다.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알로 지낸다. 무턱대고 살충제를 뿌리기보다, 그 동안 꾸준히 알집을 제거하면 된다.


지난 2013년 충주에 매미나방이 크게 발생했을 때 충주시 관계자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과수원의 잦은 소독으로 천적이 사라지면서 폭발적으로 매미나방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매미나방 대발생은 도가 지나친 참나무시들음병 방제 탓이 커 보인다. 방제를 위해 온 숲에 끈끈이 트랩을 둘렀는데, 자세히 보면 참나무시들음병을 옮기는 광릉긴나무좀보다 작은 기생벌들이 훨씬 더 많이 붙어있다. 지나친 방제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해충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편견, 그런 해충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생태계 속에서 씨를 말려야 하는 해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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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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