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9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7.17 19:19

마음의 빚(負債)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가 제작한 결과물을 통해 모든 비용을 해결하려고 했다. 일상적인 촬영, 사무실 운영, 작업자들의 활동, 다음 제작비 등 그 모든 비용을 우리는 작품을 만들어 판매‧배급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노력해왔다.


아주 초기 몇 년 동안에는 한 작품을 제작하면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우리가 직접 배급하면서 제작비와 사무실 운영비를 마련했다. 지금처럼 비교적 쉽게 홍보할 수 있는 매체가 있던 것도 아니고 다양한 상영방식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노조에 전화하거나 직접 방문해서 영상물을 소개하고 판매했다. 물론 이런 직접 배급으로는 제작비가 나올 리 없었다. 전화비와 차비도 안 나올 판이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제작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자 회비를 내 부족한 비용을 메웠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같은 중앙 대중조직이 만들어지면서, 교육‧선전에 영상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규모가 큰 민주노조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제작비를 주고 작업을 의뢰했다. 이제 우리는 사무실을 운영하기 위해 더 이상 회비를 갹출하지 않아도 됐다. 많든 적든, 우리는 의뢰받은 제작비로 사무실 임대료도 내고 일상적인 촬영활동도 하면서, 말도 안 되게 적은 돈이었지만, 1995년부터는 작업자들의 활동비(급여)도 고정적으로 주기 시작했다. 물론 언제나 조금씩, 때로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1년 활동이 끝나면 제법 큰돈이 빚(負債)으로 남는다.


매년 빚이 쌓이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제작비에 맞춰’ 작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제작비로 받은 돈이 2백만 원인데 정작 제작을 끝내고 비용을 계산해보면 실제 제작비가 250만 원 정도, 혹은 그 2배에 달하는 4백만 원이 되는 식이었다. 물론 제작비를 주는 쪽에서 너무 적은 돈을 줘서 그랬을 수도 있다. 다큐라는 작업이 극영화와 달라서, 계획대로 되지 않는 변수가 많아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문제가 더 컸을 것이다. 작품 하나에 대한 우리의 ‘오바’스러운 태도, 요령은 없는데 뭔가 잘해보려는 우리의 욕심이 제작비 ‘오바’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나의 작업에서 우리는 매번 ‘요람에서 무덤까지’ 식으로, 다루는 주제나 소재에 관한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고 덤빈다. 이런 태도는 종종 시청자를 질리게 해서 자거나 도망가게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작업자의 넘치는 진정성 때문에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는 것이다. 2백만 원의 제작비로 작업을 한 달에 끝내면 괜찮다. 두 달이 걸리면 제작비가 부족해진다. 석 달까지 늘어나면 빚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한번 지급하기 시작한 활동비를 끊을 수는 없고, 제작비에 맞게 작업을 할 수도 없다. 여기에다 제작 의뢰가 줄어들자, 한 작품에 드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90_45_1_수정.jpg

[후원회원 팸플릿]



90_45_2_수정.jpg

[故 김진균 교수님과 함께한 후원회 밤]



결국 지난 2011년, 우리는 노뉴단이 생긴 지 23년 만에 후원회라는 것을 조직했다. 제작 이외의 경로로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목표는 사무실 임대료 해결이었다. 이미 우리는 1995년에도 후원회를 만든 적이 있었다. 우리 힘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노뉴단이라면 무조건’이었던, 노뉴단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었던 김진균 교수님이 후원회장을 자처하시면서 노뉴단 후원회가 만들어졌다. 후원회는 김진균 교수님 때문에 후원회원이 된 교수 몇 명과 우리 주변에 아는 사람들로 구성됐는데, 그마저도 몇 년 지나고 나서 흐지부지 없어졌다. 우리가 제대로 못 한 탓이다. 우리는 활동의 90% 이상을 많든 적든 제작비를 통해 꾸준히 재생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작품 제작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돈을 만드는 일에 낯설었고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노뉴단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던 김진균 교수님 없이, 우리는 쭈뼛거리고 터덜거리면서 후원회원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실제로 그 돈으로 사무실 임대료를 해결했다. 임대료가 올라 후원회비만으로 벅찰 때에는 이사를 했다. 지금은 딱 후원회비에 맞는 사무실을 구했다. 후원회비로 유지하는 그 공간에서 우리는 대본도 쓰고, 편집도 하고, 동료와 점심도 먹고, 소파에 누워 지친 몸을 달래기도 한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의 상쾌한 바람에, 창문에 머문 따스한 햇볕에, 그리고 동료와 떠드는 수다에, 우리들의 지친 마음도 달래고 있다. 우리는 후원회원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후원회원들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는 일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