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국회가 열렸다. 혐오가 쏟아진다. 

개악이 시작됐다.


이승철┃집행위원장



여야를 불문하고 요즈음 정치권의 키워드는 ‘노조 혐오’다. 석 달여 만에 다시 문을 연 국회의 출발점에서 여야가 경쟁하듯 노조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민생법안’의 성과로 노동개악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반노동 극우’로 치닫는 자유한국당


7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오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돌연 “근로기준법의 시대는 갔다”면서 “노동자유계약법”을 주장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제한 없는 노동착취를 도입하자는 그의 발언은 반노동-친자본 정서의 결정판이라 할 만했다. 나경원은 곧바로 “민(주)노총은 대한민국 최대 권력조직”이라고 비난하며 “노조의 사회적 책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경원이 ‘불균등한 노사관계’의 해결책으로 거론한 것은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전면 허용’이다. ‘자유계약’의 핵심이 결국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이에 저항하는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존재 이유임을 자백한 것과 같다.


황교안은 이에 앞선 6월 19일 부산상공회의소 간담회 중 “우리나라에 기여한 것 없는 외국인에게 똑같은 임금을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면서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 경제에 기여한 바 없다는 전제 자체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국적이나 신앙 등을 이유로 노동조건에 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규정과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내용이다.


자유한국당 핵심지도부 두 명의 발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본의 이익이 곧 국가의 이익이며,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노동자와 이주민의 권리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는 것이다.



‘오만과 결핍’ 드러낸 더불어민주당


집권여당 인사들도 다를 바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7월 8일 우정노조 파업 철회에 대해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키셨다”며 노동3권을 통째로 부정하는 발언을 내놨다.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 역시 자회사 설립 강행으로 거리에 나앉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1,500명의 투쟁에 대해 7월 9일 “댓글 달린 걸 보면 자회사로 가는 게 맞다”며 “직접고용 주장하는 게 과하다”고 말했다. 도로공사가 파견법 위반으로 1심과 2심 법원에서 각각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것은 외면한 채, ‘댓글에 내 편이 더 많다’는 이유로 직접고용 주장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의 오만과 결핍이 한심할 따름이다.


이어 오거돈 부산시장도 7월 10일 부산지하철 파업 돌입과 관련해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전국 어디보다 높은 것이 현실”이라며 “파업에 대해 시민들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까”라는 악선전에 직접 나섰다. 같은 날 부산시 산하기관인 부산교통공사 이종국 사장은 “노조의 파업은 부산시민을 상대로 전쟁을 하자는 것”이라며 “적폐를 들어내고 정상적으로 돌려놓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한국의 헌법은 단체행동권을 노동3권 중 하나인 핵심 권리로 규정하고 있으며, 권리의 행사가 ‘적폐’라는 주장 자체가 적폐다. 게다가 부산지하철노조의 파업은 인력충원을 주요 목표로 한 것으로, 임금 수준을 핵심에 두고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 ‘파업은 시민과의 전쟁’이라는 짧아도 너무 짧은 식견이 지어낸 억지 주장이었다.



최저임금 실질 삭감에 힘 모은 여야


이처럼 여야 간 다를 바 없는 친자본-반노동 경향이 불러올 결과는, 최근 최저임금 결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정한 2020년 적용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8,590원으로, 올해보다 고작 240원(2.87%) 올랐다.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며,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2.5%)와 물가상승률(1.1%)의 합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실상의 삭감이다.


최저임금 실질 삭감의 징후는 이미 이전부터 뚜렷했다. 정부여당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이인영 원내대표 등의 입을 빌려 수차례 반복해 ‘최저임금 속도 조절’ ‘동결 수준의 결정’을 되뇌어 강조했다. 국회에는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노동자의 손에서 떼어놓으려는 개악법안을 상정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시시때때로 이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문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업종-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숙소-식대 등 현물 최저임금 산입 등 개악법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심지어 실질적 삭감 수준인 2.87% 인상을 두고도 ‘작은 폭탄도 폭탄’이라며 최저임금 동결을 위한 노동부장관 재심의를 주장했다.


이와 같은 여야의 한목소리 속에 공익위원들이 선택지를 찾는 것은 손쉬웠다. 특히 올해는 공익위원 심의촉진구간 제시 없이, 노사 양측의 인상안을 두고 표결에 들어갔다. 노사 위원들이 각각 자신들의 안에 표를 던질 게 빤한 상황에서, 결국 열쇠를 쥔 것은 공익위원일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속도 조절’ 요구가 여야를 막론하고 겹겹이 제기된 가운데, 공익위원 대부분은 사용자안에 표를 던졌다.



이제 문제는 국회, 여야 공조로 개악법안 물밀듯


최근 주요 노동현안을 두고 여야가 본질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이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최 의원은 7월 11일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근로자는 총파업을 거론할 만큼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인식하고, 노동개혁에 적극 동참하길 촉구한다”면서 “위기의 순간에 여야-노사의 구분과 대립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노동 관련법 개악을 이뤄내겠다’는 집권여당과 정부의 의지가 짙게 배어 있다.


개악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법안은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이미 여야가 공감대를 이뤘으며, 오직 확대 기간에 대해서만 이견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사노위 합의에 기초한 6개월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1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해 노동자의 결정권한을 사실상 빼앗는 최저임금법 개악안도 도마 위에 올라있다. 정부는 지난 7월 3일 발표한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내용 중 하나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을 명시했으며, 그 방향으로 ‘부담능력, 시장 수용성 등이 종합 고려되어 합리적 수준으로 결정되도록 적극 지원’한다고 밝혔다.


노조법과 관련해선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개악안과,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이 자본가 단체의 요구를 고스란히 담아낸 개악안이 나란히 상정돼 있다. 자유한국당 개악안은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및 파업 중 제조업 등 모든 업무에 대한 근로자파견 허용 △사업장 내 모든 시설에 대한 점거 금지 △파업 찬반투표 시 파업기간 사전 공고 및 투표일로부터 4주 이내 파업 실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폐지 및 특정 노조가입 강요 등 노조 부당노동행위 신설 △위법한 단체협약 미시정 행위 처벌 강화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2년→3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용자 단체들은 지난 6월 17일 국회를 방문해 “가장 급한 것은 최저임금과 탄력근로제에 관한 문제”라고 주문했다. 최근 각종 노동관련 현안이 사용자 단체의 요구대로 관철되고 있는 형국임을 볼 때,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이 개악 전선의 최전방에 놓일 것으로 예측된다.



노동 법안만큼은 ‘더불어한국당’


앞서 살펴본 최저임금 실질삭감 과정은, 이후 국회에서 여야 공조 속에 거세게 이어질 개악 국면의 신호탄이자 절차 교본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위 “유연안정성” 개념을 내세우면서, 각종 노동법제와 현안에서 후퇴를 거듭하며 ‘반노동 친재벌 정부’임을 분명히 한 마당에, 노동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자유한국당과 백지장만큼의 차이도 없다는 것을 수차례 드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이미 지난해 11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회의에서 ‘탄력근로제 확대’와 ‘규제혁신(완화)’를 12개 합의사항 중 각각 상위 두 번째와 세 번째 의제로 놓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여야가 티격태격 다투는 가운데에서도 ‘노동개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누가 더 많이 개악하느냐’의 문제만 남은 것이다.


90_37.jpg




강온 양면책 나선 민주당…

단호한 투쟁전선 만들자


7월 19일까지를 회기로 정한 6월 임시국회가 사실상 노동개악을 위한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여야는 7월 18일에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와 위원회 전체회의를 잇달아 배치하며 개악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국회 강행의사 표명과 함께, 이인영 원내대표를 통한 온건책도 적극 구사하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7월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구속에 대한 우려 입장을 표명한 데 이어, “민주노총과 비공식-공식적으로 만나 경사노위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합의를 추진할 생각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2018.11.)”, “(김명환 위원장 구속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은 불법에 눈감는 것이 아니다(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2019.6.)” 등과 같은 당청의 강경발언과 함께, ‘경사노위를 우회한 사회적 대화’라는 유화책을 병행하는 강온 양면책이다.


하지만 강경책이든 온건책이든, 모두 ‘노동개악’으로 수렴하는 점은 변함이 없다. 즉 자칫 이와 같은 정부여당의 ‘변검술’에 발목이 잡힐 경우,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과 조선업종을 중심으로 기세가 오르고 있는 대정부 투쟁의 예봉이 꺾일 위험도 크다.


거대 여야가 함께 세운 개악 깃발은 선명하다. 보수-자유주의 세력의 노조혐오-민주노조 말살 공세에 맞서는 전선과, 노동시간-임금 등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서는 전선도 같은 곳이다. 지금 단호한 대정부 투쟁이 더욱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