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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보복,

필요한 건 한·일 민중의 연대


장혜경┃정책선전위원장


7월 1일, 아베 정부는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처로 한국 반도체산업에 쓰이는 핵심 소재 3개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후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안보상 우호 국가)’에서 제외해 수출 규제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엄포도 놓았다.


아베는 왜?

일본은 1945년 이후 단 한 번도 타국에 대해 일본만의 독자적인 경제 제제를 취한 적이 없다. 이는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가 즉흥적 대응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된 것임을 말해준다. 실제 일본 정부는 올 1월 한국의 당정회의와 비슷한 ‘자민당 외교부회·외교조사회 긴급합동회의’를 열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대응조치를 논의했다. 그 결과는 ‘사람, 물건, 돈 등의 전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것이었고, 6개월 만에 첫 조치로 먼저 물건(반도체 관련 물질)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은 [1차 수출 규제] → [2차 화이트 리스트 제외]에 이어, [사람(일본 취업 규제), 돈(일본계 은행의 한국 여신 조건을 압박)]으로까지 확대될 여지가 크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장기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의 초강력 대응은 전후 형성된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무장국가화’와 관련이 있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식민 지배가 부당하다는 논리에 근거한 대법원 판결은, 식민 지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무장국가화를 지향하는 자신들의 행보에 큰 걸림돌이다. 따라서 아베 정부는 격렬하게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반도-동북아 정세 변화 역시 아베 정부의 강경 대응을 부추겼다. 그동안 ‘북한의 악마화’를 통해 무장국가화를 추진한 일본은 최근 한반도 정세가 긴장 완화 국면으로 전환하자 새로운 타겟을 만들 필요가 생겼다. 그 대상이 한국이다. 아베는 "한‧일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따라 종지부를 찍었"으며, "서로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세계 평화와 안정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국을 ‘평화위협세력’으로 규정하고, 일본 내 우익세력을 결집해 일본 국민 사이에 혐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통해 7월 21일 참의원(일본 상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해, 이후 개헌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즉 일본의 경제보복은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 없이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일본 지배세력 전략 구상의 표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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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6월 1일, 전북지역 노동자들과 일본 오사카 고베지역 노동자들이 노동자 차별 철폐, 위안부 문제 재협상, 사드 배치 반대 및 평화헌법 개정 반대, 핵에너지 개발 반대 등 동아시아 현안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발표했다. 사진: 참소리]



반제국주의·반전·평화 투쟁 없이 해결책 없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문재인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이미 일본 언론이 올 1월 ‘자민당 외교부회·외교조사회 긴급합동회의’ 개최를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간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허둥대고 있다.

자유한국당 같은 보수세력은 더 심각하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감상적 민족주의, 닫힌 민족주의에만 젖어 감정외교, 갈등 외교로 한일관계를 파탄냈”다며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 돌렸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한일청구권 협정과 배치되는 대법원 판결을 정부가 옹호한 것이 문제라는 태도다.

놀라운 것은 진보적 사회운동 일각에서도 이와 유사한 입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계기는 대법원 판결이다. 그런데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과, 한일청구권 협정을 외교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노무현 정부도 한일청구권 협정을 인정했다. 한일청구권 협정이라는 현실 위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사법부를 앞세워 이 협정을 부정하는 것이 문제다. 더욱이 정부는 반일민족주의를 조장해 여당 지지세력을 집결시키려 한다. 이에 사회운동은 이를 규탄해야 한다.’ 민족주의 부상을 경계하는 취지에서 썼다고 해도, 이 입장의 결론은 위험하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없이 군사화를 추진하는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즉 1965년 한일협정의 유효성을 강변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절규를 ‘현실 외교’라는 이름으로 외면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반제국주의·반전·평화의 관점 아래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시민이 연대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한국 시민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에 분노한 시민들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 운동은 일본 시민들의 혐한 감정을 더 불러일으키고, 이것을 아베 정권이 적극 활용하면서 한‧일 양국 시민 간 배타적 민족주의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한‧일 양국 시민이 연대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식민 지배 사과 -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대법원 판결 이행)’의 공동요구 아래에서 말이다. 군사대국화와 배외주의를 부추기는 아베 정권에 맞서, 나아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배타적 민족주의 강화를 막기 위해, 함께 반전-평화 투쟁을 전개하고, 이 기초 아래 새로운 한‧일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일제의 식민 지배와 1965년 한일협정 등, 과거 한‧일 지배세력이 만든 왜곡된 관계를 극복할 힘은 한‧일 양국 민중의 연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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