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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7.17 20:48

집배원,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


이나래┃인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101명의 삶이 무너졌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집배원 101명이 세상을 떠났다. 죽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집배 노동자는 어느새 과로사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지난 5월 12~13일엔 집배원 3명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2명은 심정지, 1명은 백혈병으로 각각 숨졌고, 이에 앞서 4월에도 집배원 2명이 심장마비와 뇌출혈로 사망했다. 올해만 벌써 9명이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뇌‧심혈관 질환 등으로 사망한 집배원은 25명으로, 2010년 이후 최다 인원이다. 이들의 삶은 위태롭다.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2017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집배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에 이른다. 국내 임금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이 2,025시간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평균 87일을 더 일한 셈이다. 장시간 노동은 결국 죽음으로 더 빨리 가는 급행열차를 탄 것과 다를 바 없다.



우체국을 잠식하는 외주위탁


우정사업본부는 비용절감을 위해 노동자들의 죽음을 택했다. 집배원들은 매년 인력 충원을 요구해왔다. 노동강도와 직결되는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요구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지난 7월 1일 국회 토론회에서 우정사업본부 우편집배과장은 “정규직 2,000명 증원을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다”고 발언하면서 정규직 증원 원칙을 깨고 비정규직(위탁) 증원 계획을 밝혔다. 2년 전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한 고 원영호 집배원 사망 후 노·사·전문가들이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을 출범시켜 작년 10월 인력충원, 토요근무 폐지 등을 포함한 7대 권고안을 발표했지만, 지금에 와서 우정사업본부는 ‘합의를 지킨다고 한 적이 없다’며 발뺌한다.


당연히 비정규직 집배원의 노동조건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 우편·등기·택배 업무를 함께 하는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원과 달리, 비정규직인 ‘소포위탁배달원’은 우체국 물류지원단을 통해 위탁 택배 업무만 전담한다. 이들은 월급 대신 건당 수수료 1,166원을 받고, 하루 물량은 180개로 제한돼 있다. 만약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해당 우체국에서 물량을 줄이면, 위탁배달원이 받는 임금은 삭감된다. 게다가 ‘위탁’이라는 이유로 우정사업본부가 고용 유지 의무를 회피하기 때문에,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 공공기관이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5월 우정사업본부는 교섭대표노조인 한국노총 우정노조와 올해 7월 1일부터 집배원 토요근무를 폐지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우편사업 적자 폭이 최대’라며 약속 이행을 거부했다. 계속되는 죽음을 막기 위해 지난 6월 10일 민주노총 소속 집배노조는 한국노총 우정노조 측에 총파업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를 제안했다. 총파업 성사를 위해선 무엇보다 모든 교섭참여노조의 결의와 투쟁 의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토요근무 폐지와 인력충원을 위해 두 노조가 공동투쟁 전선을 꾸린 것이다. 그 염원이 통한 걸까. 93%의 높은 파업찬성률에다 파업지지 여론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지난 7월 9일, 우정사업본부 역사상 최초의 총파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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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집배노조]



우정사업 재공영화


하지만 총파업 돌입 직전인 7월 8일, 한국노총 우정노조는 우정사업본부와 비정규직 집배원(위탁 집배원)을 늘리는 합의를 맺고 파업 결정을 철회했다. 이는 우정사업본부의 비정규직 증원, 토요택배 유지 계획에 더욱 힘을 실어준 꼴이다. 이미 국가기관 중 우체국의 비정규직 인원 비중은 무려 20%에 달한다.


게다가 한국노총 우정노조 파업 철회를 두고 국무총리 이낙연은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키셨다”고 본인 SNS에 글을 남겼다. 단결권과 파업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가지는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다. 이낙연 총리의 발언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노동권 인식이 얼마나 바닥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집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원인은 우정사업본부의 비용절감과 외주위탁에 있다. 우편법 제2조는 “우편사업은 국가가 경영”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타인을 위한 신서의 송달행위”를 그에 해당하는 사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조항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우편사업의 일부를 개인, 법인 또는 단체 등으로 하여금 경영하게 할 수” 있다고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즉, 마땅히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해야 할 우편사업을 민간에 위탁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것이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우정사업본부의 비용절감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 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선 즉각 온전한 정규직 인력 충원과 함께 그간의 외주화·민영화를 중단해야 한다. 우정사업본부의 존재 이유는 이윤 창출이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이 필요로 하는 우편업무의 수행이다. 공공성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선 우정 업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고용과 재공영화로 나아가야 한다.


공동 총파업이 무산되긴 했지만, 민주노총 집배노조는 토요택배 폐지와 인력충원 쟁취 투쟁을 다시금 결의했다. 집배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연대하고, 나아가 우정사업의 재공영화를 요구해야 할 때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과로사 행렬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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