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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과 파견으로 일그러진 노동을 우리 힘으로 바로잡고 싶어요

단위 사업장을 넘어 지역 전체를 묶어세우는 공단조직화가 목표


30만 명의 노동자가 밀집한 전국 최대 규모 공단인 반월시화공단은 파견노동자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반월시화공단 입주업체의 80%100인 미만의 중소영세사업장이다. 최저임금 언저리의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일자리가 공단노동자들에게는 어느새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에는 이같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중간착취 불법노동이 판치는 공단을 바꿔보겠다는 열혈 활동가들이 많은 멋진 단체다. 변혁당 경기도당 당원이자 월담의 상근활동가인 이미숙 동지를 <변혁정치>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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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먼저 월담은 어떤 곳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A .. 이름 그대로에요. 월담이 담을 넘다는 뜻이잖아요? 공장과 공장 사이, 자본이 쳐놓은 벽을 넘어서자는 것이죠. 그 벽을 넘기 위해, 개별로 대응하기 보다는 지역으로 한데 모여 함께 투쟁하고 권리를 찾자는 의미에요. 그게 월담의 활동목표이기도 하죠. 구체적으로는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중소영세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의 삼중고에 갇힌 공단노동자들

Q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는 어떤가요?

A 이곳엔 대략 30만 명가량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데요, 그중 7~80%가 중소영세사업장에 속해 있어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크게 세 가지 문제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저임금 문제에요. 몇 년 전에 저희가 실태조사를 했었는데, 당시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전체 공단노동자의 43%에 달했어요. 반월시화공단의 경우 대구성서공단 다음으로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더라고요.

두 번째로 장시간노동의 문제가 있어요. 이렇게 낮은 임금으로는 최소한의 생계조차 꾸릴 수가 없잖아요. 부족한 생활비를 메꾸기 위해서는 잔업·특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다보니 노동시간은 계속 길어질 수밖에 없고요.

그리고 세 번째가 불안정한 노동이 만연해있던 거예요. 반월시화공단을 흔히들 파견천국 노동지옥이라고들 말해요. 전국의 파견노동자들 중 16%가 이곳에서 일한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파견업체도 많이 모여든다는 얘기죠. 이건 다시 말하면 노동자들이 한 사업장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6개월, 3개월 단위로 일감을 찾아 떠돌아 다닌다는 거예요.

이렇게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으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의 현실을 요약할 수 있어요.

 

Q 공단 내 인권침해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들었는데요.

A 작년에 월담이 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상황을 파악했었는데요, 문제가 너무 심각했어요. 사업장에서 관리자들이 반말이나 욕설하는 일은 거의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었거든요. 현장에 CCTV를 설치해서 노동자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기도 하고, 소지품 검사나 사물함 검사도 거리낌 없이 일어났다고 해요. 정말 충격적인 사례도 있었는데요. 우리가 식당에서 자주 보는 차임벨을 설치한 현장도 있더라고요. 노동자들이 작업 중에 차임벨을 누르면 반장이 와서 잠깐 교대를 해주는 거예요.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구조인 셈이죠. 그 일이 라인작업이 아닌데도 그렇다니까요? 노동자들의 복장이나 용모까지 단속하면서 군대식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사업장들이 넘쳐났어요. 차별의 문제도 굉장히 심각했는데, 정규직 노동자들과 파견노동자들의 작업복 색깔을 달리 하는 건 기본이고, 식당에서도 정규직과 파견 앉는 자리가 따로 나뉘어 있을 정도예요. 어떤 노동자가 증언한 내용 중에는 이런 사례도 있었어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입는 방진복 있잖아요? 그걸 보관하는 사물함조차 회사가 제공을 안 하더래요. 그래서 출퇴근 때나 밥 먹을 때에도 방진복을 늘 쇼핑백에 담아 들고 다녔다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인권침해들이 공단에서 정말 다양하게 나타났어요.

 

Q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A 저희는 이런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원인이 대표적으로 두 가지 문제에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우선, 원하청으로 수직계열화된 생산구조가 첫 번째 문제에요. 공단에는 2, 3차 하청업체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그러다보니 원청의 물량 압박에 못 이겨서 하청업체들이 노동자들의 군기를 잡고 쥐어짜는 방식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는 거예요. 제품의 출하량이나 공정률을 원청이 요구하는 대로 맞추려고 노동자들을 쥐 잡듯 잡는 거죠.

두 번째는 파견노동의 문제가 있어요. 아시다시피 파견노동자들은 일회용품 취급을 받잖아요. 자본이 필요할 때 고용했다가 당장 오늘이라도 쓸모없게 되면 내일부터 일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게 파견노동자의 일상이 돼 버린 거죠. 노동자들의 존엄이 인정받지 못하고 부품화 되면서 함부로 사람을 대하는 거예요. 결국 하청과 파견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사람을 하찮게 대하는 현상도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지역의 변화 추동할 수 있는 흐름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

Q 구조나 제도의 문제점도 당연히 고쳐야 하겠지만, 이런 잘못된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동자들의 노력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군요.

A 아시겠지만 반월시화공단의 노조 조직률은 전국 최저로 1%에도 못 미치고 있어요. 이런 조건에서 공단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건 사실 많지 않죠. 저희가 지난 4년 동안 함께 모여서 움직이자고 줄기차게 이야기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인데요. 월담 소식지를 통해서건 각종 선전물이나 문화제를 통해서건 그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왔어요. 재작년 초부터는 노조하자라는 모임을 해오고 있고요. 우리 권리를 찾으려면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게 노조라는 틀이라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함께 고민해 본 거죠. 솔직히 아직까지는 별다른 성과가 없어요. 물론 우리 준비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는데... 설문조사를 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와요. 상대적으로 대공장이 밀집한 창원지역공단이랑 반월시화공단을 비교한 설문조사가 있었는데요, 창원이 반월시화보다 임금도 높고 노동조건도 낫거든요. 그런데, 직업이나 임금에 대한 만족도는 반월시화공단이 더 높게 나왔어요. 이게 뭘 의미하냐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가능성에 대한 낮은 기대치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기 삶의 지표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한 거거든요. 그만큼 지금의 현장을 바꾸려는 노력 보다는, 그냥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사업장을 찾아가는 식으로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이 적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할 건가. 사실 그 고민이 컸어요. 그래서 지금 월담은 단위 사업장을 넘어서 지역투쟁·지역협약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파견이나 하청 구조로 평균 근속기간이 비교적 짧은 공단노동자들에게는 개별 사업장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바꾸는 것 보다는, 지역 차원에서 변화를 추동해내는 게 더 유의미하겠다는 판단에서죠. 그래서 월담의 조직화 방향으로 지역 전체를 묶어 내는 기획을 주로 고민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지역 사용자 단체나 지자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들을 요구안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도 있어요. 건설노조의 사례만 봐도 이게 전혀 불가능한 그림은 아니겠구나, 한 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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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성과에 집착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

Q 월담 활동을 통해 공단노동자들과 인사 나누고 소통한 지 벌써 4년이 지났는데요. 어떠세요. 변화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나요?

A 저희가 선전전이나 문화제를 하더라도 이 지역이 워낙 넓어서 지역 전체를 다 아우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몇 군데만 파자! 선전전이나 문화제는 항상 한 자리에서 고정적으로 진행했어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우리 존재를 알아주더라고요. 많진 않지만 현장회원으로도 가입하거나 월담 활동을 후원해주시기도 하고요. 사실 변화라는 게 그렇게 급작스럽게 일어나진 않는 것 같아요. “사람을 얼마나 모았냐?”, “가입은 얼마나 받았냐?” 전략조직화 사업을 하다 보면, 그해에 몇 명이나 조합원으로 가입했는지 이것을 평가하고 목표치에 미달했을 경우엔 사업이 축소되거나 폐기되곤 하거든요. 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봐요. 10년이든 얼마든 꾸준히 하다 보면 일정한 계기가 마련돼서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시기가 어느 순간 열린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거든요. 덤프노동자들이나 마트노동자들처럼 조직화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서 성공한 사례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당장의 성과에 매몰되거나 연연하다가 공단조직화 사업의 스텝이 꼬여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긴 안목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게 지금은 중요할 것 같아요.

 

최저임금 1만원, 공단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

Q 지난 531일 안산 만원행동이 발족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 부탁드려요.

A 방금 말씀드렸지만 공단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가장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게 곧 자기 사업장의 임금인상으로 반영되는 구조인 거라... 그렇다고 별도의 임금인상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노사협의회조차 없는 사업장이 태반이에요. 그래서 이 최저임금 투쟁은 공단노동자들이 아무래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죠. 그런데 지역이라는 특성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저임금투쟁이란 게 별로 많지 않거든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해서 결정되면 올해는 얼마가 올랐나 보다”, 이렇게 무기력한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임위의 결정구조나 이런 문제들을 차치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거예요. 안산 만원행동이 출범한 것도 공단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내고, 또 지역사회로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해하시면 편할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공단조직화 사업은 오래됐잖아요. 변혁당이 공단조직화 사업에 함께 한 지도 오래 됐잖아요. 월담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당원들과 함께 고민했던 부분들이 많았어요. 당에서도 추진위 시절에 중소영세노동자조직화사업단 <꿈틀>도 만들어서 공단조직화 사업을 해보려던 시도들이 있었고요. 그런데 이게 지속적으로 되지 못하고 사업이 중단되거나 유실되는 일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아요. 당원 개개인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게 당으로 잘 모아지지 않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업적으로 어떻게 모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좀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공단에서 뭔가 시혜적인 활동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제대로 된 변화를 공단에서 이끌어내기 위해 활동하는 것인 만큼, 변혁당도 공단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또 당원으로도 조직할 수 있도록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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