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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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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7.01 11:16

87년 체제와 주택금융화 (2)

 

송명관참세상연구소()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달라진 금융적 환경에서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아마도 자금수요 경향의 급격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로 심대한 타격을 입었던 기업들에게 재무건전성의 새로운 지표로서 ‘BIS 자기자본비율(총부채/위험가중자산)과 부채비율 200%’라는 금융적 척도가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결과 기업들은 부채비중을 줄이는데 주력했다. 반면 가계는 자산에 비해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 90년대 중반 20% 대에 머물던 가계 저축률은 외환위기 이후 불과 5년 만에 10분의 12%대로 급락하고 만다. 이와 반대로 기업은 10%포인트만큼 상승했다. 이로서 기업이 저축을 하고 가계가 돈을 빌리는 역전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부채-자산 경제의 등장과 내수부양의 버팀목이 된 대중

이런 현상의 원인은 경제위기에 대응해 정부가 내수를 부양시키기 위한 방법을 가계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989월의 내수진작 종합대책이다. 이것의 주요 내용은 소비자금융을 확대해 돈을 풀어 소비를 부추김으로써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것이었다. 그 방안으로 신용카드의 수수료 인하와 인출한도 확대,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이용되는 할부금융의 금리인하, 주택자금대출 확대 등이 제시된다. 특히 이 중에서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는 이미 이전부터 진행되었던 금융 개혁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여 한국은행이 98금융기관여신운용관리규정을 폐지했고, 이에 따라 가계대출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폭락한 주택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부의 주택거래활성화 정책도 주택담보대출을 확대시키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런 부양책은 단기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후 한국경제의 양상을 바꾸는 계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가계가 저축을 하여 자금을 공급하고, 기업이 그 돈을 조달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전통적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젠 가계와 기업 가릴 것이 모두 투자자로 호명되었고,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자가 되었다. 오히려 기업은 재무구조의 건전성에 집착하면서 저축을 더욱 늘렸다. 그런 가운데 은행은 기업 대출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출구로서 개인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저금리정책과 소비자금융 확대는 한국사회가 빚 권하는 사회로 변하는 정책적 계기를 만들었고, 세계적인 부동산 거품과 맞물려 한국사회는 다시 한 번 부동산투기 열풍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부동산투기 열풍의 대부분은 가구당 수억대 빚을 지면서 쌓아올린 빚더미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심지어 재테크를 넘어서 빚테크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빚 권하는 사회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어느 정부를 가릴 것 없이 진행되었다. 이것은 지난 20년 간 한국사회를 지탱했던 내수부양의 버팀목이 바로 가계부채였다는 점을 가리킨다.

  

대중의 금융화와 자산기반 복지체계의 딜레마

이런 빚테크는 기존의 자산형성 방식에 의존했던 복지체계와 결합하여 한국사회의 대중의 금융화를 만들어냈다. 노동시장 유연화나 고령화와 같은 사회구조적 변동 속에서 중산층 가계는 여전히 자산증식과 재테크를 복지체계를 대체하는 중요한 생존전략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조건의 급격한 후퇴와 고용불안 심화 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들은 크게 터져 나왔지만, 이것은 계급정치로 집단화되지 못한 채 개별화된 생존전략의 싸움터 속으로 융해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특히 내 집 마련에 성공하지 못한 이들에게 이 생존전략은 매우 절박한 문제였다. 생존수단으로서 부동산, 주로 아파트가 유일하게 안정적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가계부채 폭증을 초래했고, 이것이 다시 자산가격을 상승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시켰다. 자산형성 복지체계가 잘 기능하려면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자산가격 상승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주택가격이 상승과 하락에 따라 소유계층과 비소유계층간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만약 무주택계층이 자산기반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주택구입을 쉽게 하려면 주택가격의 유지 혹은 하락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주택소유계층의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산기반복지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산가격의 안정적 상승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무주택자들이 자신의 소득만으로 주택을 구매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과도한 빚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편향이 갖는 정치적 함의는 선거지형에서도 극적으로 나타났다. 실제 2005년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2006년 지자체 선거, 2007년 대선, ‘뉴타운개발공약이 남발됐던 2008년 총선까지 유권자들은 분배정치보다 성장개발을 선택했다. 이는 국가복지에 대한 불신과 10년을 집권한 민주화 세력에 대한 실망이 부동산에 대한 의존성을 얼마나 심화시켰는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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