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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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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8.15 08:02

노동자,

역사적 진군의 거대한 서막

 

양돌규인문사회과학서점 레드북스 서점지기

 


“87789투쟁을 동지여 기억하는가! / 거제에서 구로까지 족쇄 깨고 외쳤던 날을로 시작되는 <총파업가>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젠 별로 없다. 19877,8,9월 노동자대투쟁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당시 파업농성의 현장, 거리 행진의 대열에 함께했던 이들이 하나둘 정년퇴직했다고도 하고 현재 조합원의 상당수가 1987년엔 어린이였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30년은 생각보다 간극이 크고 넓다.

만약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를 하나의 인격으로 비견해 본다면 1987년은 아마도 청년기에 접어드는 초입이었을 것이다. 팔팔하게 살아 있던 젊은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라던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꽃같이 화려했던 순간을 일컫는 말이. 그랬던 노동자는 이제 그 옛날을 잊은 것일까, 아니 잊어도 되는 것일까.

 

1987년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그해 봄부터 박종철의 죽음은 전두환 독재 정권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었다. 더구나 헌법 개정 약속을 뒤집고 기존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4·13 호헌조치가 내려지자 민중운동과 재야 진영, 제도권 야당이 국민운동본부로 뭉친다. 610일 범국민대회를 시작으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함성과 최루탄의 매캐한 연무, 그에 맞서는 돌멩이, 요란스럽게 달리던 페퍼포그가 어지럽게 뒤엉키는 뜨거운 여름이 온다. 618일 최루탄 추방 국민대회에는 전국적으로 200만에 달하는 시민, 노동자·민중이 결합했고 626일 범국민대회를 거쳐 마침내 노태우는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6월민주항쟁의 막이 내린다.

그리고 75. 울산 현대엔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린다. 노동자대투쟁의 시작이었다. 뒤이어 현대미포조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울산 현대 계열사는 신규노조를 설립하거나 어용노조 민주화를 요구하며 파업농성에 돌입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던 자본가 정주영의 현대그룹에 노조가 속속 들어서고 거대한 군중이 남목고개를 넘어 시청으로 행진하던 장관은 노동자대투쟁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노조 결성과 파업의 불길은 부산과 마산, 창원, 거제 등 경남 전역으로 번졌다. 부산 국제상사 노동자들을 비롯한 신발산업 여성노동자들의 파업농성이 이어지고, 마산의 여성 사업장과 창원의 남성 사업장이 기업의 장벽을 넘어 하나의 대오로 연대하며 싸웠다. 거제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격렬한 투쟁 가운데 경찰의 최루탄 직사로 인해 동료 이석규 열사를 잃기도 했다.

8월에 접어들면서 대투쟁의 불길은 더욱 활활 타올랐다. 대구, 구미, 포항으로 번져 나간 노동자 파업의 물결은 대전·충남, 충북을 거치며 북진했고 한편으로 광주·전남, 전북을 향해 서진했다. 바람의 방향은 모든 곳을 향해 불었다. 인천, 부천, 성남, 경기남부를 거쳐 서울을 관통해 강원 탄광 지역에까지 대투쟁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됐다.

연인원 200만 명이 참여한 노동자대투쟁은 전국 조직 없이 벌어진 사실상의 총파업이었다. 파업 건수는 전체 3,341건으로 하루 평균 44건에 달했고 특히 8월 중순 들어서는 하루 300개 이상의 사업장에서 파업농성이 벌어졌다.

 

노동자대투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노동자에게 기억도 투쟁이다. 6월항쟁을 30년 동안 독식한 세력은 노동자대투쟁을 6월항쟁의 부록처럼 취급했다. 언급하지 않거나 소략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198720여 일간의 투쟁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라 30년에 걸친 긴 시간이 필요한 투쟁이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노동자대투쟁은 6월 항쟁의 부록이 아니다, 본편이다. 이 책은 그 본편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전노협 위원장이었던 저자 양규헌은 노동자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역사전쟁의 비망록을 내놓은 셈이다.

30년이 지나 되돌아보는 6월과 7,8,9월의 긴장은 역대 민주정부와 노동자·민중 사이의 길항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노동자·민중이 6월과 싸웠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6월을 정치적으로 독식하고 이용해 왔던 이들로부터 민주주의를 구출하고 극한까지 그 민주주의를 밀어붙이기 위해 싸워 왔던 것이다. 30년간의 이 분투가 아니었다면 전두환, 노태우 일당과 양 김 씨가 졸속으로 야합해 만든 이 누더기 같은 87년 헌법 체제 하에서 이 만큼의 민주주의라도 성취할 수는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19876월과 7,8,9월의 계승자는 지금도 싸움의 전선에 서 있는 우리, 노동자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새로운 30, 순환의 출발점에서 노동자의 화양연화를 그리고 있는 유일한 책 <1987 노동자대투쟁>을 손에 쥐어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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