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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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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8.15 08:37

증세논쟁이 놓치고 있는 것들

 

송명관참세상연구소()


 

또 다시 불거진 증세논쟁, 어김없이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부자증세’ VS ‘포퓰리즘’, ‘보편증세’ vs ‘핀셋증세등등... 한쪽에선 정부의 증세 안이 솔직하지 못하다라고 비판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초고소득층만을 겨냥한 증세라며 국민 부담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둘 다 맞는 얘기다. 정부가 약속한 복지공약과 비교할 때, 턱없이 모자란 이 증세규모로는 도저히 해법을 찾을 수 없는 것도 맞는 말이고, 일단 돈 많이 버는 사람부터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맞는 얘기다. 격한 논쟁처럼 보이지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논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가재정과 세금

일단 부자증세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증세문제의 시동을 걸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전략도 일견 타당할 수 있다. 국가복지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뭔가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는 것이 상당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측은 중부담 중복지를 거론하면서 국민들에게 증세의 불가피성을 정부가 설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들어갈 양에 비해 거둬들일 양이 적다는 것이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조세저항감을 낮추면서도 어떻게 복지재정에 필요한 양을 거둬들일 것인가가 쟁점인 것이다.

그런데 이 논쟁에서 세금은 국가재정운용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모든 재정정책의 전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국가는 세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 양 묘사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국가는 세금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는 그런 존재인가? 가령 한국사회의 산업화 단계에서 벌어졌던 국가적 투자 행위가 세금을 충분히 거둬들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일이었나? 당시 가난한 서민들에게 거둬들일 세금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지 생각해본다면, 이런 세금 유일론은 허구임을 곧 알 수 있다.

국가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존재가 아니다. 필요한 재원은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10년물 국고채 금리는 미국보다도 낮을 정도로 매우 안정적이다. 이 말은 정부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드는 이자비용이 역대 최저라는 뜻이기도 하다. 해외 주식시장에 나가있는 국민연금 기금의 일부를 국채매입으로 돌리면 당장 필요한 복지재정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만약 금리 수준이 국민연금의 목표운용수익률에 못 미친다고 하면, 정부가 직접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재정을 보장하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 어차피 돈은 국가 내에서 돌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보면 손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국가는 필요한 재정을 직접 조달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권능이 실제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경제력과 생산력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화폐남발로 귀결되어 큰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과거 이런 역사적 사례가 존재하며, 현재 일부 가난한 나라의 독재자들이 부정축재를 일삼으면서 화폐를 마구 찍어내 전 국민을 경제적 고통에 몰아넣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과연 현재 우리사회가 그런 경우에 해당될까? 한국의 산업적 역량과 민주적 수준을 본다면, 기우임을 알 수 있다.

 

증세논쟁을 계급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방법을 두고 누가 가장 큰 반발을 할까? 아마도 국가파산, 미래세대의 부담을 운운하면서 국가재정의 보수적 운용을 강조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가부채 수준으로 볼 때, 국가파산은 현실성 없는 선동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인식되고 있는 말이 아마도 미래세대가 엄청난 빚더미와 세금폭탄을 맞을 것이라는 선동일 것이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도 억측이지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과연 그 부담을 떠안을 사람이 호주머니가 텅텅 빈 서민들일까? 아니면 곳간이 두둑한 재벌과 고소득 자산가들일까? 당연히 후자다. 미래세대라는 말로 우리 모두일 것이라 얘기하지만 소득과 자산이 없는데 세금을 거둘 순 없는 노릇이다. 돈 많은 재벌과 자산가들이 지금 현재 부자증세에 반발하는 것처럼, 그들은 미래에 자신 혹은 그 자식들이 부담할지 모를 세금까지도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재정 원천은 현재 눈에 보이는 세금에만 있지 않다. 미래에 거둬들일 세금에도 있다. 그런데 그 미래조세는 현재 우리사회의 재생산의 토대가 지속되는가에 달려 있다. 재생산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무슨 미래조세를 거둘 수 있겠는가? 지금은 재정의 효율성 보다 사회재생산의 토대를 복원시키는 것이 더욱 급한 일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자신의 권능으로 필요한 재정을 동원해야 한다. 만약 사회재생산의 위기가 심화되어 미래세대를 말하기조차 힘든 단절적 붕괴상황이 온다면, 그땐 정말 돈을 낼 사람은 재벌과 자산가들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그들은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자산도피를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의 증세논쟁을 좀 더 계급적 관점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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