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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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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분할을 양산하는 

정부의 정규직화 대책 

 

김철식(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서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정책은 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당선 이후에도 강조하며 추진해온 정책 중의 하나이다. 대선 직후 대통령이 직접 인천공항을 방문하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도록 지시하면서 정규직화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규직화 계획에 대해 노동계 일각에서는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제기되었다. 정규직화의 말만 무성할 뿐 실제 전환이 추진되는 형식을 보면 자회사 고용 등 소위 무늬만 정규직을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화 원칙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일선 교육현장에서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기간제 교사와 강사를 전환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적용제외 대상이 지나치게 많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있다는 비판 등이 잇따랐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보다는 보다 논의를 추상화시켜 비정규직과 관련하여 짚어야 할 핵심적인 쟁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와 관련하여 현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이 노동운동과 노동환경에 어떤 함의를 갖는 것인지와 관련한 몇 가지 생각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중구조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서는 비정규직화, 비정규직의 차별적 처우가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까지 진행되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노동구조는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화되는 이중구조로 개념화되었다. 이중구조 하에서 정부와 자본은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와 차별을 근거로 정규직 양보론, 귀족노동자 담론을 유포하게 된다. 학계와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이같은 담론에 상당히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인식에서는 이중구조를 유발하는, 즉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와 차별을 유발하는 핵심 원인이 되는 자본의 전략과 정부정책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노동이 안고가야 할 외적 조건, 주어진 조건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문제해결의 방안은 노동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즉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의 양보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에 주어진 파이는 제한된 가운데 그것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비교적 공평하게나눠먹을 수 있도록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는 담론이 성립한다. 정규직 양보를 위해 정규직 고용의 유연화, 불안정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논의는 다시 정규직 기성세대와 비정규직 청년세대의 대립으로 구조화되면서 세대 간 갈등 담론을 양산한다.

 

노동의 파편화와 분할통제

한편, 정규직-비정규직 대립구조에서 비정규직은 단일한 것으로 가정된다. 그렇지만 사실 비정규직도 내부를 들여다보면 매우 존재조건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촉탁직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조건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 인력소개소나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다양한 양태로 존재한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정규직이라고 하지만 중소영세업체에 있으면서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여기에 실질적으로 고용안정을 보장받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급기야 자본과의 고용관계 형식 자체가 은폐되고 모호해지는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있다. 특히 최근 ‘4차 산업혁명운운하며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에서는 자본의 고용의 책임 또한 생략되어 있다. 이렇게 노자간의 고용관계의 직접성, 가시성이 흐릿해지는 현상이 존재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새롭게 자본주의적 노자관계로 편입되는 층위도 확대되고 있다. 편의점이나 음식숙박업 등의 영역에서 프랜차이즈의 형태로 대자본의 골목상권 장악이 진행되면서 자영업자들이 사업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이른바 자영업자의 자본-노동관계로의 포섭이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노동현실은 단순히 정규직-비정규직 분할을 넘어 무수히 다양한 고용형태로 노동이 파편화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한 자본의 분할통제 전략이 유력한 노동통제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실 자본이 노동을 분할하고 이를 통해 노동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노동통제전략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으로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의 분할은 다양한 지점과 차원에서 관철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노동의 개별화로 이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양산 자체가 노동자간 차별과 위계를 정립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분할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한편,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집합성을 바탕으로 건설되었고 조직적으로 활동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의 분할과 개별화는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노동분할 방식의 변화

국가와 자본이 노동을 위계화하고 분할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변화해왔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인데, 노동을 분할하고 차별화하는 정책은 보다 중첩적이면서도 세련된 형태로 관철되고 있다. 노동을 분할하는 기본적인 형태는 인적속성에 따른 위계와 분할이다. 대표적으로 성별에 따른 노동자들의 차별은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일노동 동일임금주장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국에서도 성별에 따른 노동의 차별과 분할은 고전적인 노동의 분할선으로 작용해왔고, 그에 대한 비판이 전개되면서 그것은 다른 형태의 분할선과 결합되어 작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새로 등장하는 주목할 만한 분할선이 바로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과 분할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특히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그리고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회적 차별과 노동의 분할선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됨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서 이제 자본은 새로운 방식의 분할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차별의 비교대상이 되는 노동자 집단에 대해 노동과정과 직무를 분리하여 배치함으로써 기존의 인적속성이나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서로 다른 직무에 따른 차이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최근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이 사회적 쟁점이 되자 자본이 분리직군, 무기계약직 등을 활용하여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다른 직무들 간의 차이로 전환시킨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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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분할과 위계를 창출하는 정규직화(?)

이러한 노동의 세분화된 분할과 개별화라는 현재의 조건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사고해보자. 이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의 핵심은 이상과 같이 파편화되고 개별화되고 있는 노동의 분할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 단초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놓여야 한다. 정규직화는 노동자들 내부의 차별과 위계, 분할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정규직화를 통한 노동자 분할의 극복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상당히 실망스럽다. 오히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규직화 정책은 분할을 유발하고 기존의 분할선을 새로운 분할선으로 대체,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규직화가 분할을 해소하기보다는 고용형태에 따른 분할을 업무에 따른, 직무에 따른 차별과 분할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전 정부들에서 정규직화의 방편으로 널리 활용되었던 무기계약직과 더불어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 방안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최근의 직무급 논의가 이러한 분할을 뒷받침한다. 정규직 전환에 소요되는 비용문제,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 등을 고려할 때, 기존의 정규직 임금체계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직무에 맞는 독자적인 임금 및 승급체계를 설계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규직 전환의 현실적인 유력한 방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서 (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 고용 등의 형식으로) 새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무들은 기존의 정규직 직무와 구분되는 직무로 간주되고 그에 따라 기존 정규직과 다른 임금 및 승급체계가 적용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서 볼 때 새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직무들은 기존 정규직 직무와 다른 노동다른 직무이기 때문에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임금을 제공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정부들에서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널리 활용되었던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이라기보다는 중규직으로서 새로운 차별을 낳았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 된다. 여기에서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개선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차별과 분할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된다. 비정규직화에 따른 분할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지지 못함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준다면, 새로운 직무에 따른 분할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른 분할이 된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오늘날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차별로 사람들에게 공감되고 있는 것에 반해 직무에 따른 차별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른 정당한 차별로 드러날 것이고 노동의 분할은 보다 세련된 외양을 취하게 될 것이다.

정규직 전환 정책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의 분할을 세분화하고 개별화하는 데 일조하는 고용 관행 자체에 대한 변화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위계와 분할을 다른 형식의 위계와 분할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위계와 분할 그 자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정규직화 정책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 현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로드맵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비판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2017),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발표에 부쳐,”<질라라비>20179(통권 169) 참조.

** 김철식(2015), “표준화된 사업모델과 자영업자의 자본-노동관계로의 포섭: 편의점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경제와사회>2015년 봄호(통권105) ; 장귀연(2015), “자본의 노동 포섭 형태 변화와 자영노동의 실질적 종속” <경제와사회> 2015년 가을호(통권107)

*** 민주노총정책연구원 편, 2016, <노동분할시대, 노동조합의 임금전략>, 민주노총총서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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