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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12.01 11:24

검은말벌

 

지난 추석 연휴 즈음 부산항 감만부두 컨테이너 야적장에 살인 개미가 타나났다고 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미국에서 이 독개미에게 한 해 평균 8만 명이 쏘이고, 이 가운데 100여 명이 사망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살인 독개미 출몰을 떠들어 대서 온 나라를 불안에 떨게 했다. 살인 개미라는 검역 당국 발표나 언론의 호들갑은 인터넷에 떠도는 가짜 정보로 밝혀졌다. 이 개미 독성은 국내 꿀벌이나 말벌보다 훨씬 약해서 쏘여 죽는 사람은 한 해 전 세계에서 한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 독개미라는 이름은 붉은불개미로 바뀌었다.(곤충학자 최재천은 불개미 속에 들지 않는 이 개미 이름을 붉은불개미로 부르면 자칫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이 개미가 속하는 열마디개미속 이름을 붙여서 붉은열마디개미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붉은불개미를 없애려고 중장비를 동원해 떠들썩하게 색출 작업을 벌였으나 가장 중요한 여왕개미는 끝내 찾지 못했다. 검역 당국이 여왕개미가 방역 과정에서 이미 죽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소동은 어물어물 잦아들었다. 남미 열대우림이 고향인 붉은불개미는 미국, 중국,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태평양 연안 14개 나라에 퍼져 살아간다. 붉은불개미의 독성은 사람에게는 크게 위험하지는 않으나 농작물이나 가축에게는 엄청 큰 피해를 입히고 생태계를 교란시키기에, 세계자연보호연맹이 100대 악성 침입 외래종으로 지정한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개미다. 붉은불개미는 적응력에 뛰어나고 번식력이 강해서 일단 한 번 자리를 잡고나면 없애는 게 힘들기 때문에 처음에 잘 막아내야 한다.

10여 년 전 국내에 들어와 지금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큰 피해를 주고 있는 등검은말벌을 보면 첫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중국 남부, 동남아시아가 고향인 등검은말벌은 2003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벌집 한 개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등검은말벌이 토종 말벌보다 크지 않은 데다 아열대 기후에서 살던 곤충이라 한국의 겨울추위를 견뎌내지 못할 것으로 쉽게 생각하고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등검은말벌은 겨울을 넘기고 살아남아 10여 년 만에 전국으로 세력을 넓혔다.

등검은말벌이 토종 말벌보다 크지 않아 경쟁에서 밀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적응력이 뛰어난 등검은말벌은 토종 말벌이 집을 잘 짓지 못하는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다. 등검은말벌은 도심 녹지, 빌딩, 아파트, 주택 따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집을 짓는다. 번식력도 좋아서 한 집에 사는 벌 수가 1,000에서 1,200마리까지 불어난다.

등검은말벌이 퍼져 자라면서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양봉 농가다. 말벌은 어른벌레일 때 꽃꿀이나 과일즙, 나무수액을 먹지만 애벌레에게는 꿀벌이나 파리, 꽃등에, 거미를 잡아 먹인다. 등검은말벌이 퍼져 자라기 전에도 토종 말벌 역시 양봉 농가를 괴롭혔지만, 등검은말벌은 특히 꿀벌을 좋아해서 애벌레 먹이 70퍼센트가 꿀벌이라고 하니 그 피해가 훨씬 커진 것이다.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돕는 꿀벌이 줄어들면 양봉 농가뿐 아니라 전체 농가에 피해를 입히고 생태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등검은말벌 피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람에게도 직접 위협을 주고 있다. 꿀벌보다 성질이 사나운 말벌도 벌집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면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벌집을 건드리면 떼로 공격한다. 문제는 도시에 잘 적응해서 수가 늘어난 등검은말벌과 사람이 점점 더 자주 접촉하게 된다는 것이다.

등검은말벌 방제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성호르몬을 이용해 수컷을 꾀는 덫을 사용하는 따위 방제들이 실시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나라끼리 교류가 잦아지면서 외래종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번 자리 잡으면 없애기도 힘들다. 붉은불개미처럼 불안만 키우는 식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이고 신중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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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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