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전노협 결성과 사수의 숨은 일꾼들,

전노협 상근활동가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전노협 상근활동가들이 모여 찍은 마땅한 사진이 없다.  

이 반지는 전노협 해산 시 상근활동가들에게 준 0.5돈짜리 기념반지다.  


예전에 서울대 사회학과 김진균 교수님께서(20042월 타계) 필자에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노동운동의 한 주체 전노협 상근자에 관한 글을 주문하셨다. (글은 김진균 교수 정년기념 논문집에 실렸다.) 관련 자료가 있을 턱이 없었다. 전노협에서 보관하고 있던 이력서, 자기소개서, 활동가 인터뷰, 몇몇 글에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 현황을 정리했다. 그 글은 <전국노동자신문>(1991.9.12.)에 실린 글로 시작되었다

   

전노협 소속 민주노조들이 어떠한 노조보다도 단결력을 과시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해방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고 있는 활동적인 실무자들의 피와 땀이 진득이 배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노협 사무총국 사람들

전노협 사무총국에는 늘 30여 명 정도가 상근했다. 물론 건설 당시에는 더 많은 인원이 있었다. 기록상으로 짧은 기간 활동했던 사람까지 합하면 6년 동안 전노협 사무총국 상근 활동가 수는 90여 명이 넘는다. 이력서에 기초해 보면 그들 80%가량은 학생운동 출신이었다. 그들이 전노협에서 활동하게 된 경로를 보면 위장취업자로 해고된 후 지노협이나 노동단체를 거쳐 상근활동을 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상담소·종교단체 활동 후 상근자가 되거나 비합법단체 활동을 하다가 투옥 혹은 운동 지형의 변화로 활동공간을 옮긴 경우도 있었다. 지노협 상근자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전노협 상근자 다수가 지노협 특히 수도권 지노협에서 활동하다가 중앙에서 상근한 것으로 보아 지노협 상근 역량도 학생 출신 활동가들이 많았을 것이다.

지역업종별노동조합전국회의는 지역·업종협,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유관기관, 개인추천을 받아 사무처의 심의를 거친 후 위원장이 임명하도록 규정을 둬 경험과 전국사업 능력, 성실성 등을 기준으로 상근자를 엄격하게 선발했다. 전노협은 처무규정노동현장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자, 노동운동을 장기간 수행한 자, 지노협의 추천이 있는 자로 규정하였고 제출서류는 자필이력서, ·국장 이상의 추천서, 기타 유관단체로부터의 추천서를 요했다. <전국노동자신문>(1991.8.29.) 전노협 사무총국 상근자 선발공고는 노동조합활동 2년 이상 경험이 있는 자로서, 28세 이상으로 지원자격을 적고 있다. 선발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로 서류심사를 한 후 면접을 하는 방식으로 하며, 지노협 및 업종노조연맹()에서 추천한 사람을 우대하였다. 그러나 전노협에 대한 집중 탄압으로 조직과 인력이 타격을 받은 1992년 이후에는 하는 일에 따라 선발 기준이 완화된 부서도 있었다.

전노협 상근자는 주로 26세 이상 30대 초반의 미혼이었다. 활동이 왕성한 시기, 경제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기에 전국조직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제적 문제는 상근활동가가 전노협에서 오랜 기간 활동할 수 있는지 여부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였다. 전노협 재정은 소속 노조 의무금과 후원회비로 충당되었는데 의무금은 조합원당 100원이었고 1993년 정기대의원대회 결의로 200원으로 인상하였다. 이 금액은 전액 사업비로 사용하는 데도 부족했기에 상근자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상근활동가들에게는 10만 원의 교통비가 지급되었는데 이는 전노협후원회의 후원회비와 전노협의 재정사업 수입에 의존하였으니 그마저도 불안정했다. 때문에 우유 배달 등으로 생계를 해결하며 활동하는 이들이 많았다.

 

변혁운동에 복무하고 노동해방을 이루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활동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의식적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이었을까. 자본주의 하 노동자계급의 형성에 복무하여 사회변혁을 추구한 의식적 활동가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노협은 당시 노동운동 세력의 총집결의 의미를 가지는 조직이었으며, 전노협 상근자들은 자신을 변혁운동에 복무하고 노동해방을 이루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활동가로 정의했다. 전노협의 투쟁성, 대중성, 민주성은 활동가들의 이념과 실천을 통해 실현되어 갔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그들의 공을 알리거나 지금도 그런 헌신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 시대를 일구고 조직을 만들고 사수하는 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전노협의 그런지도부나 상근활동가를 만들어낸 것 또한 운동의 산물이며 앞으로도 운동은 그런활동가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