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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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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9.03 09:09

정세영상, 목적이 전부이다

 

토닥이(노동자뉴스제작단)서울

 



어찌 그리 되었는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여름을 넘길 즈음, 노동운동은 노무현 정부와 애증 끝에 투쟁을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이해 봄 우리는 거의 같은 비용으로 낙성대 역 인근의 제법 멀쩡한 건물 4층 사무실로 새롭게 터를 잡았다. 신발을 벗을 수 있고 바닥에는 보일러가 들어오는 안온한 가정집이었다. 봉천동 복개천 사무실에서 2년 넘게 시달리던 소음과 냄새로부터 해방됐다. 그리고, 여름께 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우리는 상당히 오랜만에 민주노총 작업을 하게 됐는데, 그것도 그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본격 정세교육물이었다. 뭔가 새롭고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 노무현 정부의 탄생과 작업실 이전 뒤 첫 정세교육물의 제작이라는, 이 새로운 기운들을 엮어내 현실화시키는 것은 이 작업의 민주노총 책임자인 (현장 영상패에서 파견한) 영상 담당자였다. 현장의 영상패가 중앙조직에서 영상패 조직화와 영상 제작을 책임지는 일을 위해 파견된 것은 당시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파견한 기아차 영상패의 영상위원 중 한 명이었다.

 

뚜렷한 목적의식이 낳은 성과

기아자동차 영상패는 가장 먼저 생긴 현장 영상패는 아니었지만, 가장 많은 준비를 하고, 가장 많은 활동을 하고,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는 영상패이다. 기아차 영상패는 영상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노동자들 몇몇의 자발적인 노력과 현장노동자와 소통을 중요시한 현장활동가의 목적의식적인 조직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영상패와 달리 영상 제작에 전혀 경험이 없고, 심지어 제작에 별 관심도 없는 노동자들도 다수 참여해 만들어졌다. 만들어지자마자 전문집단과 결합해서 나름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비는 노동조합에서 나왔고, 그 교육은 노뉴단이 진행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위원회 구조가 만들어졌고, 영상패 회원들은 여기에서 영상위원을 맡았다. 영상이 노동조합의 홍보교육선전의 도구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어느 정도 활동을 담보할 수 있게 되자, 노동조합의 방송국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영상 담당자는 영상에 상당히 관심도 있고 재능도 있고 성실하고 헌신적인 친구였다. 영상 활동을 더도 덜도 말고 딱, 노동조합 활동으로 생각하고, 실제 활동도 그것에 충실하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활동하는 친구로, 영상 하는 친구로는 좀 특이했다. 그런 그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그를 민주노총 영상 활동 담당자로까지 이끌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친구와 함께 새로운 작업실에서 첫 번째로 하는 새로운 기획, <노무현 대 노동자>*를 제작했다.

 

푯대를 향해 한 발 성큼

마야의 쿨하게노래 공연과 함께 강렬하게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이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눈 하나 깜짝 않고 쿨하게 노동자를 다 죽인다.’ 이 작품은 이제 막 반년을 넘긴 노무현 정부에 대해 당시 노동운동이, 민주노총이,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비정규직 양산에 관한 문제가 주 내용이다. 국민연금 개악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사용자의 대항권에 관한 비판도 담겨있다. 이 비판을 근거로 노무현 정부와의 투쟁 선언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이 작업은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나왔고,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정세물을 당시 유행한 대중음악을 통해 작품 안으로 들어오기 쉽게 만든다든지, 만화로 다소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시킨다든지, 여러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덕목으로 인해 당시로서는 꽤 빠른 시기에 가장 많은 테이프(1,200)가 배급됐다. 그러나 이 작업의 가장 큰 덕목은 곳곳에서 작품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완성 시기를 놓치지 않아 목적 수행을 제대로 한 점이나, 가능한 빠른 시기에 조직적 배포를 놓치지 않은 점이나, 그간 종종 우리가 실패했던 것들을 이 작업에서는 실패하지 않고 목적지에 잘 도착했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을 우리가 헤매지 않았던 것은 이 작업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책임졌던 민주노총 영상 담당자, 그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목적이 전부다.’ 이 작업, 정세영상물이 성취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이 성취는 현장노동자 영상패의 영상 활동의 시작과 끝을 어디까지나 노동조합 활동 안에서라고 생각하며 행동했던 그 친구가 없었더라면 그리 쉽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 <노무현 대 노동자> : 200310/32/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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