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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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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자본에 맞선 

노동자 투쟁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일본 본사 원정 투쟁을 벌이는 수미다 노조 조합원들.


1960년대 이후 한국은 외국 자본에 기대 해외시장 수출 편중 산업으로 경제성장을 이어왔다. 대표적인 외국 자본은 미국 자본과 일본 자본이었다. 이들 자본은 에너지 위기와 자국의 임금 상승에 따른 이윤감소를 돌파할 방안이 필요했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자동차, 전기, 전자, 철강 등에서 경쟁력을 상실하자 생산공정의 분할을 추진하였고, 한국으로 자본을 진출시켜 경쟁력을 회복하고자 했다. 일본 자본도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양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한국으로 진출하였다.

 

국경 없는 자본과 이를 비호하는 한국 정권

한국의 외국 자본 직접 유치를 통한 성장정책은 외국 자본에 매력적이었다. 수출자유지역 지정(19701월 제정된 수출자유지역설치법에 따라 마산시와 익산시(이리)에 지정개발) 등 적극적인 지원과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통한 이윤 확보는 기본이요, 노동자들의 저항을 국가가 확실히 통제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유인책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한국의 사정은 달라졌다. 제조업 고정자본 투자를 통한 이윤 창출이 언제까지고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임금인상·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져 예전과 같은 이윤이 보장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자본은 산업구조조정과 금융자본 민영화 등으로 경제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외국 자본도 설비투자와 고부가가치 생산으로의 업종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했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외국투자기업에서 노동자투쟁은 한층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투자기업은 자본 규모가 대부분 영세하였고, 국내에 투자한 자본 규모도 소규모여서 20년 이상 된 노후 설비에 투자하거나 업종 전환을 꾀하기보다는, 노동강도를 더욱 강화하고 저임금을 유지해 이윤을 확보하려 했다. 외국투자기업에서의 노동조합 탄압이 무자비했던 이유다. 그리고 이마저도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쳐 쉽지 않을 때 서슴없이 폐업을 자행했다.

이때 정권은 노동자들을 탄압하여 외국 자본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대표적 사례가 한국TC전자와 한국스타였다. 농성투쟁 중이던 한국TC전자 노동자들이 198912월 말 법인 청산 과정에서 청산대리인으로 지정된 삼일회계법인 문택곤과의 협상으로 타결 직전까지 갔으나, 바로 전날 검찰의 지휘 아래 경찰은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간부들을 대거 구속했다. 또한 19909월 수출단지 내에서 투쟁 중이던 한국스타 조합원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수출공단 내에 들어간 현대정공 조합원 3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외국기업 노동자들의 단결과 국경을 넘는 원정·연대 투쟁

외국 자본은 자본 철수, 감원, 자본 이동, 외주 확대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요구도 다르고 노조의 투쟁 전략도 달라 하나로 뭉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198941외국기업 부당 철수 저지 및 노조탄압분쇄 공동투쟁위원회(외자공투위) 결성으로 공동투쟁이 시작되었다. 피코, 지멘스, US마그네틱, 슈어프로덕츠, 알리코, TC전자, 한스제약, 에프코아코리아, 톰버스전자, 수미다, TND, 아세아스와니, 금산전자, 동경전자 등이 참여했다. 노동자들은 국내에서 투쟁하는 것은 물론 본국 원정투쟁을 벌이며 외국자본의 횡포를 폭로했다. 수미다, TND, 아세아스와니 노동자들의 일본 원정 투쟁, 피코 노동자들의 미국 원정 투쟁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원정 간 노동자들은 홍보와 여론 활동, 외국 자본 본사 앞 집회, 대주주와 거래업체 방문은 물론이고 후원회 조직과 연대 투쟁 및 단식 투쟁을 전개했다. 외국기업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을 제정하고, 소송을 벌이는 투쟁도 모색했다.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89년부터 실시되기는 했으나 노동자들이 원정 투쟁을 벌이겠다는 발상과 결의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본 수출국 노동운동, 사회운동 진영의 지지와 지원을 이끌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목숨 건 투쟁을 벌여 한일 노동자 연대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외국 자본이 내세운 기술이전, 고용창출은 겉치레였다.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넘어 먹튀하기 좋은 나라였다. 지금도 그렇다. 쌍용자동차,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죽음으로 내몰렸다.

당시 공장 재가동이라는 목표를 따내지는 못했으나 해외 원정 투쟁, 연대 투쟁으로 회사 측의 사과, 퇴직금과 미지급 임금 지급, 학비 보장 등의 요구를 관철한 아세아스와니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투쟁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노동자에게는 국경이 없으며 노동자의 단결이야말로 무엇보다 큰 힘이다.

 

[참조 및 인용]

-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 <전노협백서3>, 2003

* <첫사랑-1989, 수미다의 기억>, <스와니-1989 아세아스와니 원정투쟁의 기록>, 구술집 <언니들에게 듣는다> 등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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