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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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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품에 안긴 

혁신성장 

 

이주용정책선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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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며 내세운 경제정책방향의 상징이었던 소득주도성장론을 둘러싸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발단은 경제지표의 악화다. 올 상반기 동안 전년 대비 취업자 수 증가율은 줄어들고 소득격차는 늘어났는데, 최근 발표된 7월 통계치에서는 이 지표들이 훨씬 더 나빠진 것이다. 특히 취업자 수 증가가 전년 대비 5천 명에 머무르면서 2010년 이후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자 보수야당과 언론은 소득주도성장론이 불러온 모순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시한 소득주도성장론을 폐기하고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이윤활동을 촉진하라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다.

정부 내에서도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경제부총리 김동연과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 사이에 이견이 드러나자,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김동연을 위시한 관료(출신)집단이 정부의 개혁에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경제정책방향 선회를 주도한 것은 문재인 정부 자신이다. 현재의 여야대립 구도 속에서 정부여당은 소득주도성장론을 일단 말로는 고수하고 있지만,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정부여당의 행보는 노골적인 규제완화를 앞세운 재벌-자본 친화적 노선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규제완화의 새 이름, 혁신성장

근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키워드는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혁신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는 혁신성장과 함께문재인 정부 경제정책방향의 두 축을 이룬다는 식이다. 그런데 애초 문재인 정부 집권 당시만 하더라도 혁신성장이 소득주도성장과 동등한 위상은 아니었다. 집권 직후인 지난해 7월 정부가 내놓은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 4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자임했던 것에서도 드러나듯, 집권 초기 방점은 최저임금 인상을 첫째 과제로 제시한 소득주도성장과, 고용창출·비정규직 정규직화·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존중사회를 표어로 내걸었던 일자리 중심 경제였다. 혁신성장은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정책 집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는 촛불항쟁 직후의 정세에서 저임금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대중적 열망을 일차적으로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당시 상황에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반년 만에 혁신성장은 정부 경제정책의 2대 기조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지난해 12월 말 정부가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방향3대 전략으로 일자리·소득,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제시했다. 단순히 순서를 바꾼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의 행보는 혁신성장에 무게중심을 싣는 것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당장 ‘2018년 경제정책방향발표 직후인 1월에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여 규제혁신 토론회를 개최하고 의료·서비스·정보통신기술 등 이른바 신산업 분야에서 우선허용·사후규제를 원칙으로 대대적인 규제완화 방침을 발표했다.

올 상반기를 경유하며 경제지표 악화와 더불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자본과 보수세력의 공세가 강화되자,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자제하는 한편 더욱 적극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자본에 구애를 시도하는 듯하다. 특히 6월 말 대통령은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취소하면서 정부의 준비가 미흡했다고 질타했고, 이에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산업부·보건복지부·중소벤처기업부 등 각 부처들이 일제히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규제완화 대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7월 정부는 하반기 이후 경제여건 및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은산분리·의료기기 및 서비스산업 규제완화까지 들고 나왔다. 최근에는 여야정 협의를 통해 과거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규제프리존법을 포함한 일련의 규제완화 법안을 8월 국회 안에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은산분리 완화는 대기업이 은행업에도 뛰어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고, 의료기기사업 규제완화와 규제프리존법은 의료영리화를 부추기는 내용 때문에 과거에도 강한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이라는 새 이름을 얻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재벌, 문재인 정부의 우군이 되다

지난 7월 초 대통령은 인도 방문 와중에 삼성전자 인도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이어 8월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전자를 찾아 이재용을 비롯한 경영진과 혁신성장 현장소통 간담회를 갖고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 경제의 대표주자인 삼성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치켜세웠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공범이었던 이재용이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파트너로 복권되는 순간이었다.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라는 것도, 정부가 삼성에게 투자를 구걸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것도 정부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벌개혁의 상징적 인물이라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2년차를 맞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재벌총수들에 대한 문제제기는커녕 진보진영의 조급증과 근본주의를 탓하며 비난하는 동안, 김동연은 혁신성장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지난 12월부터 LG, 현대차, SK, 신세계 등 재벌그룹 경영진과 잇따라 회동하며 투자를 요청했다.

김동연을 만난 자리에서 삼성은 바이오산업 규제완화, 노동시간 단축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탄력근무제 등을 건의했고 정부는 적극 협의하겠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는 (다음 기사에서 살펴보듯) 의료부문 규제완화를 이미 천명했으며 혁신성장의 핵심 부문 중 하나로 바이오산업을 선정한 바 있다. 탄력근무제 기간을 확대 적용해 주52시간 노동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안 역시 경총도 요구한 바 있거니와 김동연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벌의 청원사항들이 고스란히 정부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박근혜 정부가 전경련의 청부 사업이었던 노동개악을 관철했던 것을 보았고, 그보다 좀 더 전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정부정책을 제공하며 삼성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노무현 정부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 문재인 정부는 재벌과 손잡은 또 하나의 정부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 물론 취업자 수 증감 수치는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아니라 표본집단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추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오민규 정책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부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모든 노동자들을 전수조사하여 매월 발표하고 있는데, 이 통계는 악화일로인 취업자 수 지표와 반대로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가 3년간 꾸준히 비슷한 비율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통계 역시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는 있지만, 가령 전체 일자리의 수는 늘지 않았더라도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일자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취업자 수 증가율 둔화만으로 고용쇼크라고 규정하며 그 원인을 최저임금 인상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참조 : 오민규, “‘고용쇼크는 헛소리다! 다른 말 하는 취업자 통계와 고용보험 행정통계”, <프레시안>, 2018.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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