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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결과 투쟁으로 

해고자 복직 앞당기고 싶습니다

재개된 해고자 천막농성, 원하청 자본에 맞선 투쟁 거점으로 역할 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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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과잉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의 영향으로 직격탄을 맞은 조선/자동차 산업의 전반적인 퇴조세는 이들 산업과 연계고리가 강한 철강산업 자본에도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했다. 특히, 현대제철 자본은 지난 8월 당진공장 22개 사내하청업체에 대한 공정 통폐합을 추진함으로써 본색을 드러냈다. 불법파견 은폐와 노조 무력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현대제철과 함께 국내 철강산업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포스코에서도 노조파괴 정황이 포착되었다. 노조파괴 주도, 불법파견 은폐는 물론, 업체 변경·폐업 등을 통한 해고와 고용불안의 위협에 이르기까지, 원청자본의 악랄한 탄압은 어딜 가나 다르지 않았다. 이 같은 현대제철 자본의 탄압에 거리로 내몰린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있다. 충남 당진 현대제철 C지구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 중인 세 명의 해고자들을 <변혁정치>가 만났다.

 

노조활동 위축시키려 표적해고

이환태 조합원

Q 반갑습니다. 세 동지가 현대제철에 들어오고 해고된 일련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A 이환태(이하 ’) 제가 입사한 시기는 20089월이었어요. 최병률 동지와 저는 현대제철 입사 이전에 구미에 있는 금강화섬이란 곳에서 일했었는데, 2005년 폐업투쟁이 마무리되면서 이후 활동에 대한 고민을 동지들과 나누다가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입사하고 2~3년 동안은 제가 속한 현장부터 차츰차츰 바꿔나가는 작업에 매달렸어요. 그러다가 20128월경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차피 노동조합 결성을 고민하고 있던 차에 먼저 깃발을 올린 사람들이 있으니 저도 거기에 결합해서 함께하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했죠. 이듬해인 13년에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이하 지회’)에서 노조인정투쟁을 본격화했는데, 저는 당시 지회 정책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교섭 참여를 위해 휴가계를 제출한 것을 사측에서 무단결근이라며 다짜고짜 징계해고한 겁니다.

최병률(이하 ’) 이환태 동지와 마찬가지로 저 또한 금강화섬 폐업투쟁이 끝나고 앞으로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특히 2005년 금속대공장제조업 비정규직사업장 중심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걸 지켜보면서, 비정규직 운동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어쨌든 제철 현장에 들어온 20083월부터 초반에는 동료들과 열악한 현장 상황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고 친분도 쌓으면서 나름대로 잘 지냈던 것 같아요. 2010년 들어서 쇳물(철광석)을 녹이는 고로가 당진공장에 완공되는데, 이때 하청업체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앞서 말씀하셨듯 ’12년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가 설립됐을 때, 일단 저는 현장에서 조직확대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업체 동료들에게 노조 결성 소식을 알리고 집단가입을 조직하고, 나중에는 주변 업체들을 다니면서 조직확대를 이어갔죠. ’13년에는 조직화 모임이란 걸 시작했고요. 저 혼자서는 아무래도 버겁기 때문에, 모임을 꾸려서 각 업체별 현안도 취합하고 대응방안도 함께 모색하는 과정을 만들어간 거예요. 일례로 업체별 순번을 정해서 매일 연달아 관리사무실로 항의방문을 가는 식이었어요. 그러면, 업체 사장들이 놀라서 사무실 문을 걸어잠그고 달아나기도 하고... 예전에는 사장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외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13년 노조인정투쟁이 본격화될 즈음에 저는 지회로부터 집행간부 제안을 받아서 6월부터 조직2부장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그러자 사측이 업체 항의방문 투쟁을 업무방해라는 명목으로 징계해고한 거예요.

한근우(이하 ’)20129월에 대주중공업이라는 현대제철 하청업체에 입사했어요. 2차 하청업체라고 하지만 대주중공업은 현대기아차그룹의 일감을 도맡아 수주하고 연 매출이 2조에 달하는 대기업이거든요. 여기에서 덤프트럭을 운전하게 됐는데, 당시 현장에는 임금이나 복지에서 차별이 만연했어요. 예컨대, 1차 하청과 2차 하청업체의 임금 격차도 심했고 성과금은 전혀 없었고요. 특히 제가 입사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3교대 근무인데도 식권을 달랑 한 장만 준다는 거였어요. 그마저도 일이 없는 날엔 식권을 아예 지급하지도 않았고요. , 관리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현장의 불만을 가중시킨 요인이었습니다. 연차 사용도 마음껏 할 수 없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이런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서 이직률도 상당히 높았고 작업환경도 열악했어요. 그래서 좀 변화를 시켜보자는 생각에서 20134월쯤엔가, 노조인정투쟁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업체 동료 두 사람과 함께 노조에 가입했죠. 제가 해고된 시점은 작년 3월이었는데요, 이유인즉슨 회식 자리에서 업체 관리자와 쌍방 폭행이 벌어졌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지노위·중노위에서는 쌍방 폭행을 이유로 관리자는 2개월 정직 처분을 내리고 제게는 해고 통보를 한 사측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정했거든요. 실은 노조활동으로 인한 표적 탄압이 이 사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의 단결된 힘 바탕으로 해고자 복직 쟁취할 것

최병률 조합원

Q 작년 9월부터 7개월간 이어진 해고자 천막농성이 일단락되고, 다시 올해 96일부터 천막농성을 재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경위를 알고 싶습니다

A 올해 3월 지회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해고자 천막 농성 중단과 생계비 지급 기한을 2년으로 제한하는 안건이 통과되는 사태가 있었어요. 이 때문에 저희 해고자들은 민주노조에서 해고자 생계비를 끊고 배제하는 결정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조합원들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했습니다. 이후 지회 집행부와 간담회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427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새로운 결정이 내려졌고 논란을 매듭지었어요. 당시 결정 내용을 말씀드리면, 신분보장기금 문제는 복직 시까지 지급하는 것으로 회복했고, 해고자 천막농성은 임시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존중해 잠정중단 하되 쟁의발생시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해고자들이 지회 일부 대의원들에게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던 맥락이 있었다고 봐요. 작년 지회 2대 집행부 때 저희 해고자들이 사측과의 유착 관계에 대해 선전물을 내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것이 지회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해고자들이 지회를 결과적으로 약화시켰고 이것으로 해고자 천막농성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인식이 나빠졌다는 게 당시 해고자 생계비를 끊는 결정의 주된 근거였죠. 어쨌든, 해고자들의 투쟁을 가로막는 3월 정기대대 결정에 대해서는 현장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잇따랐고, 논란 끝에 4월 말에 천막농성을 일단 접고 잘못된 신분보장기금 지급 제한 결정은 원상복구하는 것으로 정리된 겁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 해고자들도 많은 고민을 했어요. 더 이상 지회 내부가 이 사태로 인해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이길 저희 역시 원치 않았고, 지회가 민주노조답게 단결할 수 있게 해고자들도 그간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합원 동지들과 함께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96일 천막농성을 재개하게 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올해 임투 시작과 함께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해고자 복직을 쟁취한다는 지난 427일 임시대대 결정과 맞물린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Q 지회 임투 요구안에는 해고자 복직도 포함돼 있는 것이죠

A 별도요구안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예년에는 해고자 복직 요구가 크게 부각되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지회에서 많이 쟁점화하고 있어요. 반면에, 사측은 저희(이환태·최병률) 부당해고 건이 대법까지 패소했기 때문에 논의 대상도 아니라는 식으로 무시하고 있거든요. 어쨌든, 올해 임금 문제는 물론이고 해고자 복직도 교섭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려면 결국 투쟁의 힘이 있어야 자본을 강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911일에 당진, 순천 공장에서 3천여 명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하루파업을 전개하고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출정식을 했거든요. 출정식 마치고 나서는 청와대까지 행진해서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 정황들, 그리고 불법파견 은폐 증거들을 폭로하는 기자회견도 진행했어요. 단 하루만이 아니라 전 조합원의 힘이 이렇게 하나로 모아진다면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공장 담벼락-지역 울타리 넘어 투쟁 확대할 터

한근우 조합원

Q 앞으로 복직투쟁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A 관건은 조합원들과 얼마나 유기적인 관계를 맺느냐라고 봐요. 해고자들의 고립된 투쟁이 아니라 지역과 현장으로 확대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잖아요. 저희도 그 점에 주목하고 소식지든 뭐든 조합원들에게 해고자 문제를 알리는 데 지금까지 힘을 실어왔어요. 사실 천막농성도 그런 의미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고요. 하지만, 조합원들이 이 문제를 나의 문제, 혹은 조직 전체의 문제로까지 인식하기 위해서는 해고자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집행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특히 교육이나 투쟁을 통해 조합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의식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외부적으로는 <지원대책위>나 그 밖의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이 문제를 공장 담벼락 안에서만 머물지 않도록 함께 만들어나가야겠죠.

 

Q <지원대책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서 활동하고 있나요

A 작년에 천막농성에 돌입하면서 지원대책위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사회적으로 이야기되는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를 지금 당장은 지역이지만, 지역에서부터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동지들과 힘을 모아나가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작년 12월에 저희 해고자들이 직접 제안을 해서 구성이 됐는데, 한근우 동지가 지회에서 신분보장기금 문제가 정리되기 전까지 일정하게 생계 지원도 받고 농성장에서 이러저러하게 필요한 물품이나 식사 지원도 많이 받았어요. 무엇보다도 해고자 투쟁이 고립돼 있는 상황에서 지역의 동지들이 함께 연대해준 부분이 특히 힘이 됐죠.

지대위가 구성된 지는 좀 됐지만, 이번에 천막농성을 재개하면서 개입력을 좀 더 높여나가려고 합니다. 물론, 지대위의 역할이라는 것도 저희가 투쟁하는 만큼 확장되고 부여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지대위에 속한 단체들의 주도성이 발휘되고 있지는 않지만, 도움닫기를 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1024일부터 지대위 단체들이 함께하는 문화제도 시작할 예정이에요. 이런 계기를 통해서 앞으로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야죠.

문화제는 일단 격주로 진행하려고 해요. 한 주는 지회 주관으로 공장 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제로, 다음 한 주는 지대위 주관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식으로요.

 

노동자 정치, 현장에서 시작합시다


Q 끝으로 전국의 동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변혁적 현장정치를 모색하는 동지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희 해고자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나 계급투쟁 전반에 대한 고민들이 날이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는 느낌을 요즘 많이 받아요. 조금 힘들더라도 현장에서 노동자 정치를 보급하는 사업에 다같이 분투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공장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여기 현대제철 당진공장 주변에는 동부제철도 있고, 철강/제철 업종 사업장들이 꽤 넓게 분포하고 있거든요. 충남지역에도 정치운동을 하는 여러 정당들이 있는데, 실제로 현대제철 현장에는 자기 정치에 기반한 활동이란 게 거의 전무한 실정이에요. 물론 민주노조를 강화하는 투쟁도 중요하겠지만, 계급의식을 날카롭게 벼려내는 현장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도 전원복직 합의를 이뤄냈고, 그 어느 때보다 복직투쟁의 전망은 밝다고 생각합니다. 천막농성장을 거점으로 3천 조합원들과 함께, 그리고 지역과 전국의 동지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저희들 투쟁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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