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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업체에 내맡긴 가스 공급, 

성폭력에 노출되는 여성 노동자

2인 1조 근무제 당장 실시하라


정원현┃울산



지역마다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업체는 다 다르다. 울산의 경우에는 “경동도시가스”라는 회사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안전점검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이(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분회) 2019년 5월 20일 울산시청 본관 앞에서 무기한 파업과 농성에 돌입했다. 벌써 40여일이 지났다.


이들은 왜 처음부터 무기한 전면파업과 시청 앞 농성을 선택했을까?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 5월 17일 오후,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여성 노동자 단체카톡방에 한 노동자가 “언니들 나 정말 힘들었어요. 언니들은 편안했으면...”이라는 문자를 남기고 착화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앞서 4월 초 안전점검을 나갔다가 원룸에 혼자 거주하는 남성에 의해 방에 감금된 채 추행을 당할 뻔했고, 사건 이후 지속적인 후유증에 시달렸다. 담당 의사는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고했지만, 사측은 치료 중인 피해자를 2주 만에 현장 업무로 복귀시켰다. 며칠 뒤, 안전점검을 나갔던 피해자는 또다시 원치 않는 상황을 마주한다.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며 개선책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피해 여성 노동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가스 안전, 시민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점검원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는가’ 하는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그러나 사측은 한 달이 넘도록 “2인 1조 근무제도가 성범죄 위험에 대한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사회적 비용/편익 분석관점에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그런데 경동도시가스 스스로 마련한 ‘성폭력 예방을 위한 지침’에는 “동료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며 2인 1조를 규정하고 있다. 즉, 사측은 자신이 만든 지침마저 부정하는 기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38년간의 결탁, 울산시-경동도시가스


가스는 전기, 물과 더불어 국민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공재다. 당연히 이윤이 아니라 공공의 안녕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그런데 도시가스는 지역별 업체들이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특혜를 누리면서도 민간기업으로 운영된다. 비록 산업자원부 지침에 따라 광역단체장이 고객서비스 노동자 인건비와 처우를 포함해 적정 공급 비용을 산정하고 도시가스 요금을 결정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이 매번 성폭력 위험에 내몰리는데도 공적인 대책 마련과 통제는 전무하다.


울산광역시는 경동도시가스와 무려 38년간(이 가운데 35년은 자유한국당 계열이 집권했고, 최근 1년을 포함해 3년간은 민주당 계열이 집권) 독점계약을 해왔지만, 가스 안전점검원의 2인 1조 근무 도입은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고객서비스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실제 사용자는 경동도시가스라기보다 울산광역시임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안전점검원 노동자들이 무기한 전면파업과 동시에 울산시청 앞 농성에 돌입한 것도 실제 책임자인 울산시장이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무기한 파업과 농성 한 달 만에 송철호 시장과 면담을 했지만, 20분 만에 성과 없이 끝났다. 현 사태에 대해 다 알고 있다던 송철호 시장의 인식은 사측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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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조짐


경동도시가스 여성 노동자들은 심리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시청 앞 농성과 지역 선전전은 물론이거니와, 현대중공업과 화물연대 등 지역의 투쟁사업장에 연대하는 한편 다양한 연대세력과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적 공분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 결과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박병석 의원(민주당)조차 노동조합의 입장에 동의해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경동도시가스는 2017년 270억, 2018년 340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시민들과 기업들에게 가스요금을 받아 운영하는데 이렇게 많은 흑자를 낼 수 있는 것은, 가스요금 원가 산정에서 과도한 이윤을 책정했거나, 회사가 노동자의 노동을 과도하게 착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인 1조로 운영에 드는 추가 비용은 연간 20억 정도로 2018년 순이익의 7%, 1조 6천억에 달하는 매출에 비하면 0.15% 수준이다. 가스요금을 인상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당기순이익 수백억 원의 회사가 여성 노동자의 성폭력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인력충원을 거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명분도 잃고 코너로 몰린 사측도 지난 6월 28일 교섭에서 본사 1인을 짝으로 하는 2인 1조 근무 형태를 시범 운영해 보자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이제 승리의 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방심하지 말고 투쟁의 고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가스 안전점검원의 2인 1조 근무를 요구하는 싸움은 구의역 고 김군, 태안화력의 고 김용균 투쟁처럼 이윤보다 안전을, 이윤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투쟁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가스요금과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까지 통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업체들과 결탁해 이들에게 가스 공급을 내맡겨 노동자들이 상시적인 성폭력 위협에 노출된 현실도 방기해왔다. 진정 노동자와 시민 모두가 안전한 도시가스를 원한다면, 공공재인 가스 공급을 국가가 책임지고 공영화해 노동자들과 함께 공적으로 통제하도록 싸워야 할 것이다.





* 아랫글은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분회 여성부장 김정희 동지가 6월 18일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고객 집이 아닌 시청으로 출근한 지 한 달이 되어 갑니다.


지난 5월 17일, 동료의 갑작스런 자살 시도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가며 ‘제발! 살아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응급실에서 응급처치 후 실려 나오는 동료가 살아있음에 감사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을 못 했기에 무력감과 동시에 화가 났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저희 점검원들은 1인당 1,200건 점검 중 실점검 97% 달성을 위해 (실적 수당 20만 원과 회사의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서) 고객 집을 한 달 내내 쫒아 다녀야 합니다. 경동도시가스는 ‘고객이 없는 시간에 쉬고, 고객이 많은 시간에 일하라’고 말합니다. 결국 저녁과 밤 시간에 일하라는 말밖엔 안 됩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밥 먹을 시간 쪼개가며 일했습니다.


‘낮에 오지 않고 왜 밤에 오느냐’, ‘밥 먹고 있으니 다음에 오라’, ‘우리 집 강아지가 놀라니 초인종 누르지 마라’, ‘우리 집 강아지가 생리 중이니 다음에 오라’, ‘아이들만 있으니 점검 안 된다’, ‘야근 마치고 자고 있으니 다음에 오라’, ‘점검 안 해도 된다는데 왜 자꾸 오느냐’, ‘당신 말고 다른 사람 보내라는데 왜 자꾸 문자하느냐’ 등 별별 소리를 다 들어도 “네 고객님, 원하는 시간대를 알려 주시면 그때 재방문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화를 누르며 다음 집으로 다음 집으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도, 싫은 소리를 해도, 야한 농담을 던져도 못 들은 척 일해야 했습니다.


회사는 4년간 성추행, 성폭력 사건이 3건밖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정말 3건밖에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정말 화가 나는 건 어느 누구도 점검원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울산시는 ‘노사문제니 회사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하고, 경동도시가스는 ‘당신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무단침입했다고 경찰 부르고, 징계하겠다는 협박성 문자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울산시민의 가스 안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정작 우리의 안전은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곳이 없었습니다. 정말 점검 중 칼이라도 맞고 누군가 죽어야만 책임을 질까요?


우리 점검원들의 요구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것뿐입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뒷짐 지고 구경만 하지 말고 당장 적극 해결하십시오. 경동도시가스 사장은 변명만 하지 말고 원칙대로 매뉴얼에 있는 2인 1조 점검 당장 시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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