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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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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7.02 16:18

우리의 몸이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정명호┃장애인일반노동조합 준비위원장



사회변혁노동자당 당원 여러분, <변혁정치>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장 정명호입니다. 길었던 준비모임을 거쳐 지난 6월 12일 드디어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 저는 19살 때 인천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각종 업무를 처리하면서 제 장애에 맞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빠른 업무처리를 강요하는 등의 이유로 저는 1년 만에 못 견디고 퇴사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손발을 움직이기 어려워 입으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하고, 언어장애 때문에 보완․대체 의사소통AAC프로그램으로 소통합니다. 이 글도 머리에 두른 막대로 자판을 한 자 한 자 찍어서 쓰고 있습니다.


저는 1년쯤 쉬다가 길거리 캐스팅(?)을 거쳐 인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했습니다. 2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조직 담당도 맡았고, 장애인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에 대한 연대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동광기연, 한국GM 등 인천지역 노동 현장에 연대하면 할수록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 노동권에 관심이 생겼고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에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준비모임을 하면서 ‘과연 이 작은 모임이 준비위원회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무가치한 노동이고 쓸모없는 것’으로 낙인찍고 있기에, 열심히 세미나에 참여하고 여러 노동 현장에도 연대하면서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토론했습니다.


이제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몸이 자본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의 아버지라는 칼 맑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고요. 중증장애인은 속도가 느립니다. 하지만 느리다고 해서 노동을 할 수 없는 게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빛의 속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중증장애인들이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최소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마지못해 노동자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최저임금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것이 장애인 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최저임금법 7조가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일반노조 준비위원회는 장애인노동자와 실업자 등 조합원을 모아 단결된 힘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해나가려 합니다. 장애인은 어떤 부문보다 실업자가 많습니다. 정부의 정책도 잘못됐고, 기업들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0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92%에 지나지 않습니다. 법정 고용률 3.1%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우리는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장애인 고용을 늘리라는 투쟁을 진행할 것입니다. 아울러 그나마 취업한 장애인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승진을 비롯해 일상에서 차별받는 모든 부당함에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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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장애인의 먹고살 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진행할 것입니다. 장애인의 노동 현실을 생생히 파악하고 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장애인의 활동을 정당한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자본이 요구하는 경쟁과 효율, 생산성의 기준에 따른 노동 체제를 거부하고 ‘좋은 노동’으로 바꿔낼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속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속도는 곧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니까요. 그런데 많은 중증장애인은 노동의 속도가 느리고, 아예 그 속도를 맞추기 불가능한 최중증 장애인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 중증장애인은 ‘쓸모없는 존재’로 규정되고, 사회에서 격리된 채(장애인 수용시설 또는 방구석에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노동’할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은 노동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게 자본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광화문에서 농성할 때, 중증장애인들은 1842일 동안 농성장을 사수하는 즉 경비하는 노동을 했고, 역사 측에서도 1842일 동안 역사 경비를 했습니다. 둘 다 지키는 노동을 했지만, 한쪽은 ‘의미 없는 노동’으로 취급된 반면 다른 한쪽은 ‘의미가 있는 일’, 즉 임금노동으로 인정됐습니다. 자본의 관점에서 우리의 노동은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는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틀을 깨려고 합니다. 장애인일반노조는 2006년 정부가 가입한 유엔 장애인 권리협약이 규정하듯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장애인의 노동권을 인정’하게 만들 것입니다.


장애인일반노조의 또 한 가지 중요한 목표는 소외된 모든 이들과 연대해 새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성, 성소수자, 빈민, 노점상 등 사회적 약자들은 물론이고 사회복지 노동자, 산업재해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과 긴밀히 연대할 것입니다. 또한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탄압받고 소외당하는 노동자들의 장기투쟁 사업장에도 적극적으로 연대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중증장애인들에게 노동할 기회조차 주지 않습니다. 최중증 장애인에게는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자체가 노동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원하는 노동이 아니라 우리 몸에 맞는 노동을 쟁취하려고 합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와 맞짱뜨는 긴 싸움일 될 겁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동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자본주의를 끝장냅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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